"어이쿠, 작은 아가씨, 조심하십시요. 다치십니다요."

빈청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다급하게 뛰어들던 사도연의 몸이 순간 휘청거렸다. 천진한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사도연도 잠시 발이 꼬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어느 틈에 나타난 두자성이 휘청이는 사도연을 부축하고 있었다. 이전의 산적 두자성을 생각하면 가히 눈부신 발전이었다. 이형환위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지켜 보고 있던 청진 도사를 비롯한 무인들의 눈이 이채를 발할 정도로 뛰어난 신법이었던 것이다.

"괜찮으십니까요?"
"헤헤, 고마워요. 아저씨"
"아닙니다요."

"요녀석! 무슨 다급한 일이 있길래 그리 야단법석이냐?"
"응? 아! 초혜 언니, 설아 봐봐, 아주 예쁘게 변했어"
"어라? 어떻게 된거니? 설지 언니?"

넘어질뻔했던 사도연이 다시 몸을 추슬러 초혜와 중인들에게 자신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설아를 손으로 가리켰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사도연의 어깨 위에는 황금빛의 작은 용 한마리가 앉아 있었다.

"응? 연아, 어떻게 된거니? 설아, 이리 와 봐"

황금빛으로 변한 설아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던 설지가 오른 손을 들어 손바닥을 내밀자 사도연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설아가 스르르 날아 올라 사뿐히 설지의 손바닥 위에 내려 앉았다.

"어디보자, 응?"
"설지 언니, 왜 그래?"
"호호, 이제보니 설아가 완전한 탈각을 해서 용이 되었구나, 설아 축하애"

설아의 작은 코를 톡치면서 설지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기분 좋은 기음을 토해내는 설아였다.

"캬오!"
"호호호"
"용이 되다니? 설지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잘봐, 설아 녀석의 외형이 완전히 용아랑 똑 같잖아"
"어! 정말이네, 그럼 정말 설아 녀석이 용이 된거야?"
"캬오!"

초혜가 정말이냐고 되묻자 대답은 설지가 아닌 설아의 입에서 튀어 나오고 있었다.

"호호, 정말인가 보네. 설아 축하해, 늘 설지 언니 잡낭 속에서 게으름만 피우길래 저 놈이 언제 용이 되나 했더니, 응? 가만... 연아 무슨 일이 있었던거니?"

설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호들갑을 떨던 초혜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사도연을 보며 질문했다. 어떤 식으로든지 설아에게 기연이 닿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듣고 있던 사도연이 신이 나서 잠시 전에 자신이 보고 겪었던 일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설명 중간에 사도연이 삼각번을 펼쳐 보였을 때 순간적으로 삼각번이 무언가와 공명을 하듯이 작은 떨림을 보였다. 하지만 너무도 짧은 순간에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진 일이기에 사도연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중인들은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

"헤헤, 그렇게 된거야"
"호호, 그랬구나. 어디보자, 그럼 이제 부터 설아는 설아가 아닌게 되는데 어쩌지?"
"응? 설지 언니,그게 무슨 말이야? 설아가 설아가 아니라니?"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반문하는 사도연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설지가 대답을 하려는 순간 초혜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야, 워낙에 작명 실력이 형편없는 설지 언니가 설아에게 이름을 지어줄 때 몸 색깔이 눈 처럼 희다고 해서 설아라고 했거든, 그러니 이제 설아는 설아가 아니라... 금아? 맞지? 금아라고 할려고 했지?"

장난기 가득한 초혜의 눈에는 '어때 내 말이 맞지?' 하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싫어! 그냥 설아라고 할래, 설아 너도 설아가 좋지?"
"캬오!"
"호호호, 그렇다는데? 설지 언니, 금아가 다시 설아가 되어 버렸네, 호호호"

"이것들이..."
"호호호"
"헤헤헤"

초혜와 사도연의 웃음과 함께 설아의 환골탈태(?) 축하를 끝낸 설지가 사도연이 설명 중에 내밀었던 삼각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희미하지만 가운데 부분에 흰색으로 마라는 글자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분명 천마신교와 관련이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무슨 용도인지는 알길이 없어 곁에 있는 천마신교의 흑룡대원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번은 본교의 교도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집마기라 불리는 것이외다."
"집마기라고요?"
"그렇소이다. 본교의 집법사자가 본교의 충실한 교도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주로 마공을 익히지 않은 특정 인물에게 지급하는 신분패의 일종이외다."

"설아가 사기를 흡수했다는 것으로 보아 단순히 전달만 하는 것은 아니겠군요"
"그렇소이다. 그 번에는 본교의 성화에 깃들은 순수한 사기가 담겨 있소이다. 해서 집마기를 전달하는 과정에 반드시 본교의 성수를 함께 복용하게 하고 있소이다. 그렇게 되면 성수가 단전에 자리잡게 되고 집마기와 가까이 하는 순간 서로 공명하여 집마기의 주인을 알 수 있는 것이외다"
"성수라... 신기하군요. 허면 집마기에 신분을 증명하는 것 외에 다른 기능도 있나요?"

"물론이외다. 집마기는 말 그대로 마인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도 하고 있소이다. 주루나 객잔의 지붕 위에 집마기가 내걸리면 이를 발견한 인근의 모든 마인들이 집결하게 되어 있소이다"
"그렇다면 집마기의 소유자는 천마신교 내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를 보장받고 있겠군요"
"당연하외다. 평교도 보다 높은 지위는 물론이고 집마기를 내건 순간 부터 본교의 지시 사항을 받아 임시지만 마인들을 지휘, 통솔할 수 있는 지위 까지 보장받고 있소이다.


어쩌면 천마신교의 극비라고도 할 수 있는 집마기의 정체가 세상에 온전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천마신교의 성세가 예전과 같았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초대 천마의 재림과 함께 두 개로 쪼개진 천마신교였기에 이렇듯 대외비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천마신교의 흑룡대원이 정파 무인들에게 직접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설명이 모두 끝나자 흑룡대원으로 부터 시선을 거둔 설지가 다시 남일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현령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뭐가 말씀이시온지요?"
"집마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묻는거예요."

"신,신기한 일이라고 생각되옵니다"
"그렇죠? 참으로 신기해요. 성수의 성분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복용 후에 체외로 배출되지 않고 단전에 자리잡는 걸까요?"
"글,글쎄 올습니다. 소신을 잘..."

"그래요? 헌데 왜 나는 현령의 단전에 성수가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까요?"
"아,아니옵니다.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그래요? 설아, 잠깐 이리 오렴"

설지의 잡낭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여전히 사도연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설아가 설지를 향해 날아갔다. 같은 순간 지풍을 날려 남일영의 마혈을 제압한 설지가 다가온 설아에게 물었다.

"사기를 흡수할 수 있으니 반대로 사기를 토해낼 수도 있지?"
"캬오!"
"그래, 그럼 집마기에 사기를 조금만 불어 넣어줘"
"캬오!"

설지가 내려 놓은 집마기에 다가간 설아가 입을 벌려 집마기의 한쪽을 베어 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볼 수 있었다. 지극히 순수한 사기가 뭉클거리며 설아의 입에서 빠져 나와 집마기로 스며드는 것을... 그리고 잠시 후 설아가 입을 떼는 것과 동시에 집마기와 현령의 몸이 동시에 부르르 떨리다 멈춰졌다. 흑룡대원이 설명한대로 집마기와 성수를 복용한 이가 서로 공명한 것이다.

"허! 저런..."
"무량수불"
"아미타불"
"어머"
"우왓"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입에서 실로 다양한 반응이 흘러 나왔다. 대부분은 믿기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고관대작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엄연히 나라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인 현령이 집마기의 주인이라는 것은 상황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자신의 정체가 발각된 남일영은 잠시 주저하는 듯 하다가 광소를 터트리더니 이내 고개를 푹 꺾었다.

"흡, 독!"

그랬다. 자신의 정체가 발각난 남일영이 독단을 깨물고 자결을 선택한 것이다. 얼마나 지독한 독이었던지 삼키는 것과 동시에 절명한 듯 보였다. 눈 앞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음에도 설지는 의외로 담담했다. 쓰러져 절명한 남일영에게 다가가 맥을 짚어 본 후 고개를 끄덕이더니 몇군데의 혈을 짚은 후 잡낭 속에서 침통을 꺼내 들었다.

"초록이 아저씨, 혜아, 나 좀 도와줘"
'예. 아가씨"
"응! 바로 누이면 돼?"
"그래"

두자성과 초혜의 도움을 받아 절명한 남일영의 시신을 바로 눞힌 설지는 꺼내 든 침통을 열고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거무튀튀한 크고 작은 침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아 올라 남일영에게 날아 갔다. 한 호흡만 남아 있다면 죽은 사람도 잠시 되살린다는 성수의가 비전의 생사귀혼 금침 대법이 펼쳐진 것이다. 백여개에 이르는 침이 한꺼번에 날아 올라 시신으로 날아가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었다. 아마도 소실된 사천당가의 만천화우가 펼쳐진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퓨~ 끄응"

백여개의 침들이 순식간에 시신의 몸속으로 파고들자 잠시후 남일영의 입에서는 김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힘겨운 신음 한토막이 흘러 나왔다.

"내 말이 들리나요?"
"어,어떻게, 분명... 크,크윽"
"맞아요. 분명 현령은 독단을 물고 자결을 택했었죠. 하지만 우리 의가에는 생사귀혼 금침 대법이라는 비전이 있답니다. 지금 상당히 고통스러울거예요. 편히 보내드릴테니까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세요. 아니면 그 고통이 영원히 멈춰지지않을 수도 있을거예요"

사실 지금 남일영은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독단에 의해 내부 장기가 이미 다 녹아 버렸으니 그 고통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몸부림을 치지도 그렇다고 큰 비명을 내지를 수도 없는 것이 지금 남일영의 상태였다. 대법을 펼치면서 설지가 남일영의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성대 마저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고통스러울테니 짧게 물을게요, 아! 물론 대답하지 않으셔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답니다. 묻겠어요. 당신 처럼 집마기를 받은 사람이 황궁에도 있나요?"

설지의 입에서 뜻밖의 질문이 흘러나오자 일순 장내의 공기가 팽창하는 듯 했다. 황궁이라니?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크크크, 그,그렇다. 이,이제 대,대업의 완성이...얼마 남지 아,않았..."
"그만하면 되었어요. 이제 편히 쉬세요"

지풍을 날려 광기에 물든 눈으로 힙겹게 말하는 남일영의 호흡을 완전히 차단한 설지가 침을 회수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되뇌었다.

"황궁이라... 황궁으로 가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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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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