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언니!"

설지가 황궁행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소매를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사도연이 놀란 음성을 토해내며 설지의 옷소매를 잡아 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아차 싶었던 설지가 따뜻한 미소를 얼굴에 그리며 사도연을 바라 봤다.

"놀랐느냐?"
"으응! 저 아저씨 왜 그래?"
"독단을 삼켜서 그런거야. 연이가 못볼 것을 봤구나. 미안해"
"으응, 아니야, 근데 언니가 펼쳤던 그 대법이란거 죽은 사람도 살리는거야?"

자뭇 진지하게 질문하는 사도연을 보며 설지의 표정도 심각하게 변해갔다. 사도연이 무엇 때문에 이런 질문을 하는지 짐작이 갔던 것이다. 아마도 지금 사도연의 머리 속에는 흉수들에 의해 비명횡사한 부모님과 가문의 식솔들을 떠올리고 있을게 분명했다.

"그게 궁금했구나. 음... 그러니까 언니가 조금전에 펼쳤던 대법은 우리 의가의 비전인 생사귀혼 금침대법이란거야. 연이도 들어서 알고 있지?"
"응!"
"그래, 알고 있구나. 그 대법에는 분명 죽은 사람의 혼을 다시 불러와서 소생케하는 힘이 있단다. 하지만 숨이 끊어진지 이미 일각이 지났거나 혹은 저 아저씨 처럼 오장육부가 녹아내린 사람들을 소생시킬 수는 없단다. 단지 망자의 혼이 저승으로 가는 길을 조금 늧출 수 있을 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응!"

설지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도연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설지에게 안겨들며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한동안 잊고 지냈다 싶었던 엄마, 아빠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그런 사도연을 다독이는 설지의 눈에서도 눈물 한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려 복사꽃 같은 뺨에 가느다란 골을 만들고 있었다.

한편 두 사람의 갑작스러운 눈물바람에 잔뜩 무거워졌던 장내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지는 듯 했다. 이에 사도연을 안내하여 따라왔던 위병은 눈둘 곳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돌아서 나갈 수도 그렇다고 게속 남아 있기에도 뭐한 상황에 직면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식은땀이 절로 났던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위병을 구해주는 목소리가 있었다.

"설지 언니! 안되겠다. 연이 데리고 먼저 돌아가 여기 뒷정리는 내가 마저하고 갈계"
"그렇게 해주겠니? 그럼 부탁해"
"염려말고 어서 가. 위병 아저씨 가셔서 주부 아저씨 좀 뵙잔다고 전해주세요"

"예? 예! 아,알겠습니다"
"뭐해? 설지 언니."

"알았어. 그럼 먼저 갈게"

설지가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사도연을 다독이며 걸음을 옮기자 청진 도사와 화산파 무인 몇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두자성과 남은 무인들은 초혜을 도와서 현청의 주부와 함께 뒷정리를 한 후 뒤늦게 숙영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초록이 아저씨!"
"예! 막내 아가씨. 말씀하십쇼"
"혹시 황궁가보셨어요?"

"예? 황궁이라굽쇼?"
"예. 황궁이요. 바로 그 황궁"
"하하, 천만에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산적질을 하던 놈이 황궁이라니 가당키나 합니까요"

"호호, 그럼 이번 기회에 황궁을 제대로 구경하시면 되겠네요"
"정말 황궁에 가신답니까요?"
"음, 아마 설지 언니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면 십중팔구는 황궁으로 향하게 될거예요."

"이거, 이거 잘하면 염치없게도 산적 놈이 설지 아가씨 덕분에 황궁 구경가게 생겼습니다요. 하하"
"음, 근데 아무래도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아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생각해 보세요. 천산신응에다 집마기 그리고 관인 까지...."
"아!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설마 이놈들이 페하를 노리는..."
"쉿! 말 조심하세요."
"죄,죄송합니다. 소인도 모르게 그만..."

"됐어요."
"헌데 막내 아가씨. 혹시 이 일을 혁련 교주께서도 알고 계실까요?"
"교주 할아버지요? 음 글쎄요?"

두자성과 초혜가 서로를 바라보며 같은 의문점을 발할 때 그들의 옆으로 인영 하나가 스르르 나타났다. 늦게 까지 남아 있던 천마신교의 흑룡대원 중 하나였다.

"그렇지 않소이다"
"그렇지 않다고요?"
"예. 소저, 교주님을 비롯한 우리 신교는 정공법을 택하지 얕은 수를 쓰지 않소이다. 강자지존이 바로 우리 신교의 원칙이 아니외까? 하물며 관과 대척점에 있는 우리 신교에서 관인을 회유할 수 있을리가 없지 않소이까?"
"그런가?"
"그럼 이번 집마기는 또 다른 마교의 짓이라는거요?"

두자성의 질문을 받은 흑룡대원이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지 않겠소? 천산신응 뿐 아니라 집마기 역시도 본교에서는 챙기지 못했소"
"허, 그것 참, 그놈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이러다 정말 황궁에서 뭔 일이 생기는거 아냐?"

두자성의 혼잣말을 들으며 흑룡대원은 물론 초혜 까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두자성의 짐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편 사도연을 안고 숙영지로 돌아온 설지는 잠이 든 사도연을 침상에 눞이고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붓을 들었다. 그리고 흰 백지에 뭔가를 빼곡히 적어 넣은 후에 먹물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고이 접은 후 비아를 불렀다.


"비아! 황궁 알지?"
"삐익!"
"그래, 그럼 황제 폐하와 대장군 할아버지도 기억나니?'
"삑!"

"호호, 녀석, 그래 그럼 이 서찰을 가지고 황궁에 가서 폐하나 대장군께 전하렴. 다른 사람은 절대 안돼. 내 말 알았지"
"삑"
"그래. 부탁해"

비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설지가 곱게 적은 서찰을 가죽 주머니에 넣은 후 비아의 발에 단단히 붙들어 맸다. 출발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이다. 하지만 왠일인지 비아는 꼼짝도 하지 않고 두 눈을 굴려가며 설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언가 할말이 있다는 듯한 비아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린 설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응? 왜 그러니?"
"삐익!"

날카로운 고성과 함께 비아가 한쪽 날개를 들어 올리더니 앞뒤로 휘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비아가 날개를 이용해서 누군가를 후려치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응? 호호호. 심하게 하면 안돼. 알았지?"
"삑!"

그랬다. 지금 비아는 누군가가 서찰을 전하려는 자신을 방해하면 날개를 이용한 물리력 햏사를 해도 되냐고 묻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설지가 교성을 터트리며 즐거워하자 비아도 즐겁다는 듯 날카로운 고성으로 응답한 후 몸을 돌려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까마득한 창공으로 날아 오른 비아의 모습은 잠시 후 황궁이 있는 북쪽을 향하여 빠른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가씨! 비아 녀석이 어디가는거예요?"
"아! 청청 언니. 황궁에 가는거야"
"황궁이라고요?"
"응, 사실은..."

설지로 부터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진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보셔야죠. 어차피 우리가 향하는 목적지가 소림사이니 소림사에 들렀다 곧바로 황궁으로 가면 되겠군요"
"응, 내 생각도 그래, 오랜만에 할바마마께 문안도 드리고 겸사겸사 황궁에 들러야 할 것 같애"
"폐하께서는 여전히 강녕하시겠죠?"

"그러시겠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의가에 그 소식이 전해졌을 테니까. 가만 우리가 할바마마를 뵌지 몇해가 지났지?"
"음... 올해로 칠년이 되었네요"
"벌써? 세월 참 빠르다" 

"예? 호호호"
"응? 아니 왜 웃어?"
"호호호. 아,아니예요. 마치 노인 처럼 말씀하셔서 그만, 죄송해요"

"응? 내가 그랬어?"
"예. 호호"
"크하하, 소청이 웃음 소리가 이리도 크게 들리는걸 보니 뭔가 재밌는 일이 생겼나 보구나"

큰 소리로 웃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 진소청이 모처럼만에 활짝 웃음을 터트리자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철무륵이 대소를 터트리며 일성도장과 함께 다가왔다. 

"그래, 무슨 일이더냐?"
"응? 아, 다른게 아니고 황궁에 가야할 것 같아"
"뭐? 방금 황궁이라고 했느냐?"

"응! 황궁"
"무량수불! 갑자기 황궁이라니 현청에 갔던 일과 연관이 있는 것이더냐?"
"예. 도사 할아버지, 실은..."

설지의 설명을 듣는 철무륵과 일성도장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어갔다. 사안이 결코 간단치 않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논의을 거쳐 마화이송단의 향후 행로를 결정하는 것도 그리 쉬운 아닐 것이었다. 성수의가의 황궁행이야 아무런 문제가 없다지만 구파일방을 중심으로 한 무인들의 황궁행은 자칫하면 분란을 야기할 소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설지의 설명을 끝가지 들은 일성도장과 철무륵은 곧바로 자리를 뜬 후 구파일방의 수뇌들과 얼굴을 맞대고 숙의에 들어갔다. 다음 날 새벽 까지 이어진 기나긴 숙의의 시작이었다.

"싫어!"
"너 거기 안서"
"으아악!"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모두 끝낸 설지의 천막 안이 부산스러워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작은 인영 하나가 쏜살 같이 천막 밖으로 튀어 나왔다. 때 마침 지난 밤의 숙의 결과를 알려주려고 천막 쪽으로 향하던 철무륵의 눈에 그 모습이 들어 왔다.

"응? 저 녀석들이 아침 부터 또 왜 저래?"
"철숙부, 그녀석 잡아!"

무슨 일인가 싶어 성큼 걸음을 옮기는 철무륵의 귀로 설지의 음성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천막을 빠져 나왔던 작은 인영은 철무륵에게 달랑 붙잡히고 말았다.

"으악! 대숙 놔줘요"
"하하, 싫은데. 요 녀석아 또 무슨 사고를 친게냐?"
"그,그게 아니예요?"
"잡았어?"

철무륵에게 붙잡혀 공중에서 대롱거리고 있는 작은 인영은 바로 사도연이었다. 제딴에는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무공을 익힌 철무륵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결국 몇차례 버둥거리던 사도연이 포기한 듯 고개를 푹 숙이는 순간 천막의 입구를 가린 천을 젖히며 설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 아침 부터 이리 소란인게냐?"
"호호, 별일 나야. 그 녀석이 아침 수련을 빼먹을려고 해서 말야"
"응? 아침 수련? 그 뭣이냐 흐느적거리는 그거?"

"어허! 흐느적거리는거라니. 무당의 태극권이야, 태극권"
"응? 태극권? 크하하하, 그래, 그래, 크하하"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리던 철무륵이 달랑 들고 있던 사도연을 설지 앞에 내려 놓았다. 그러자 입을 삐죽이며 사도연이 철무륵을 향해 눈을 흘겼다. 하기 싫은 아침 수련을 피해 무사히 빠져 나갈 수 있었는데 철무륵 때문에 실패했다는 표정이 그 얼굴에 역력히 드러나고 있었다.

"호호. 요 녀석, 어딜 도망갈려고, 얼른 해"
"힝! 알았어. 한번만 하면 되는거지?"
"왜? 두번 하고 싶어?"
"아,아냐? 지금 할거야"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사도연이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품세는 분명 어디선가 본듯한 모습이었지만 철무륵의 말대로 흐느적거리며 이어지는 것이 무공 수련인지 춤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을 만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헛갈리게 만들었다.

"크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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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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