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청이는 어떻게 된 것이냐?"
"청이? 청청 언니 말이예요? 저기 있잖아요"
"아니, 이것아. 소청이 말고 청이 말이다. 청이, 에잉"

"아! 호호호, 사도 소협 말씀이군요"
"그래, 그 청이, 그 놈은 언제 쯤 출관하는 것이냐?"

"글쎄요. 거지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목이 빠져라 기디리시니 조만간 나오지 않겠어요?"


"쯧, 폐관중인 녀석을 찾아가서 언제 나오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에잉"
"호호호, 걱정 마세요. 잘 하고 있을거예요"
"그 녀석이 가전 무공을 제대로 수습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말하는 호걸개의 시선이 한쪽에 세워져 있는 마차 하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마차의 주위로는 녹림이십사절객이 마치 마차를 보호하기라도 하는 듯이 마차를 중심으로 주변 경계를 하며 넓게 포진해 있었다. 언뜻 보기에 녹림이십사절객이 대충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실은 마차를 보호하기에 가장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물샐틈 없는 호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르신, 그리 걱정하지 마십시요. 설지 녀석이 따로 비급 하나를 만들어 챙겨 주기 까지 했으니 잘 하고 있을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어디 그 뿐입니까. 연이 오래비라고 설지 저 놈이 보령환 까지 몇알 챙겨서 넣어 주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하네만 어쩐지 시일이 너무 걸리는 것 같아서 말이네"
"크하하, 어르신도 참, 욕심이 너무 과하십니다."
"그런가? 켈켈"

설지, 그리고 철무륵과 함께 대화를 나누던 호걸개가 고개를 돌려 지긋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마차는 사실 급조한 느낌이 없지 않은 이동식 연공실이었다. 이동중에는 마땅히 폐관을 할만한 여건이 주어지지 않기에 설지가 임시방편으로 진법을 설치하여 마차 한대를 아예 연공실로 개조한 것이었다. 그런데 임시방편이라고 하나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기사도 그런 기사가 없었다.

왜냐하면 작은 마차 한대에 기문진을 설치해서 만든 연공실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마차에는 십여명 정도가 한꺼번에 들어가서 폐관을 해도 될 정도로 넉넉한 공간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법의 힘을 빌렸다고는 하나 좁디 좁은 마차에 어찌 그런 넓은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만큼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처음 마차를 이용해서 연공실을 만든다고 했을 때 호걸개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쉽게 믿지 못했었다. 하지만 설지가 초혜의 도움을 받아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한시진만에 뚝딱거려 완성한 진법이 펼쳐진 마차 내부의 공간을 확인하고 나서는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믿지 못할 관경을 목도한 끝에 다들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때문에 설지가 양손바닥을 탁탁 털며 '어때요?'라고 질문 했을 때 아무도 대답하는 이가 없었다. 대신 반신반의했던 일성 도장이 나직하게 터트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웃음 소리만이 새로 생긴 연공실의 곳곳을 파고들며 눈 앞의 광경이 사실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이처럼 호걸개의 상념이 처음 연공실이 생겼을 때로 돌아가 있던 그 순간이었다. 갑자가 저 멀리서 뾰족한 비명 하나가 울려 퍼져 중인들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으아아아아악! 비켜욧, 비켜"
"응? 연이 아니냐?"
"그러게요. 저 녀석이 왜 저래?"

비명이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린 호걸개와 설지의 눈에 부리나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사도연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꼬리에 현진 도사를 달고 곧 숨이 넘어갈 것 처럼 비명을 터트리는 사도연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좌우로 훤하게 갈라진 사람들을 뚫고 마침내 숨을 헐떡이며 사도연이 설지 앞에 당도했다.

"헉헉, 언니, 큰일났어, 큰일!"
"응? 큰일이라니? 왜? 호랑이라도 따라오니?"

도대체 무슨 큰일인가 싶어서 사도연의 뒤를 바라보았지만 호랑이는 커녕 비명을 들은 밍밍이 녀석만 무슨 일인가 싶어 졸래졸래 걸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대관절 무슨 일이야?"

"설지 누님, 이 녀석 때문입니다"
"응? 그건..."

숨을 헐떡이는 사도연 대신 앞으로 나선 현진 도사가 품에 안고 있던 작은 생명체를 설지에게 내밀었다. 현진 도사가 내민 손에서 겨우 숨만 붙어있다시피한 작고 검은 토끼 한마리를 발견한 설지가 이채를 발하며 조심스러운 손길로 토끼를 받아 들었다.

"어디보자. 이 녀석이 왜 이럴까... 음"

조심스럽게 토끼를 품에 안은 설지가 그보다 더욱 조심스러운 손길로 토끼를 쓰다듬으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언니, 어때?"
"음...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이니?"

"아! 그게 덫에 걸린 엄마 곁에서 발견했어. 엄마랑 형제들은 다 죽었고 그 녀석만 살아 있었어. 어때? 살수 있어?"

"그랬구나. 그럼, 살 수 있지. 아직 젖을 떼지 않은 녀석인데 제대로 먹지 못해 탈진한거야. 젖을 먹이고 나면 괜찮아질거야"
"우와! 진짜지? 그렇지?"
"호호호. 그럼 진짜지"

"헤헤, 다행이다. 그런데 젖은 누가 먹여줘, 엄마는 이미 죽었는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총관 아저씨께 가서 젖이 잘 나오는 염소 한마리 구해오라고... 아! 마침 저기 오시는구나. 총관 아저씨!"

숙영지를 쩌렁쩌렁 울렸던 사도연의 비명성은 의가의 품목 정리를 하던 경촌관의 귀에 까지 전달되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경총관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정리를 뒤로 미루고 걸음을 재촉하여 다가오던 모습을 설지가 때마침 발견한 것이다.

"예!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마침 잘 오셨어요. 가셔서 젖이 잘 나오는 염소 한마리만 구해오세요."
"염소를요?"

"예. 보시다시피 이 녀석이 굶주려서 말이죠"
"아! 그렇군요. 허면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예. 부탁해요. 어서 다녀오세요"
'예. 아가씨"


설지가 품에 안고 있던 작은 토끼를 보여주며 말하자 그제서야 저간의 사정을 짐작한 경총관이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아마도 숙영지 근처에 있는 어떤 집의 염소는 오늘 후한 돈을 받고 거처를 옮기게 될 것이다.

"헤헤. 그럼 이제 염소 젖만 먹이면 괜찮아지는거야?"
"욘석이, 그렇다니까."
"헤헤헤. 아! 그리고 이 녀석이 기운을 차리면 나랑 살아도 되는거지?"
"응? 그러고 싶니?"
"응!응!"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답하는 사도연의 모습을 보아하니 안된다고 하면 한바탕 눈물을 쏟아낼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물론 젖도 떼지 않은 토끼를 숲으로 돌려보내봤자 얼마지나지 않아 죽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기에 누군가가 보살피기는 해야 했다. 설지의 품에 안긴 토끼를 쓰다듬으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던 사도연이 설지의 고개가 마침내 끄덕여지자 그 자리에서 폴짝 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이야! 신난다. 언니 고마워"
"호호호. 녀석 그렇게 좋니?"
"응! 그럼 이제 이름 지어 줘"

"이름?"

"응! 예쁜 이름"
"그래? 어디보자..."

설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어라고 입을 떼려는 순간 두군데서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뜻을 가진 음성이 또렷이 흘러나왔다.

"안돼"
"안된다"


초혜와 철무륵이 음성의 주인공들이었다.

"응? 왜들 그래?"
"설지 언니 안돼. 절대 안돼"
"안된다니 뭐가?"

"이름 말이야. 이름, 보자... 설마 토야라고 붙이려는건 아니지?"
"응?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휴! 내 그럴 줄 알았어"

"왜 그러냐니까?"
"아이 참, 몰라서 물어, 좋은 이름 다 놔두고 기껏 토야가 뭐야 토야가?"
"왜? 예쁘기만 하구먼"

"설지 언니, 저기 봐봐, 청청 언니도 고개를 가로젓고 있잖아"
"응?"

초혜의 말은 사실이었다. 토야라는 말을 들은 진소청 마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단호하게 반대 의사를 보내오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곁의 철무륵 역시 절대 안된다는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뭐,뭐야?"
"연아, 링링 어때?"

설지의 당황한 음성을 가볍게 무시한 초혜가 사도연을 보며 하는 말이었다.

"링링?"
"그래! 링링, 어때? 예쁘지, 밍밍이랑도 비슷하고"

"링링, 링링, 헤헤, 좋아"
"좋았어, 그럼 오늘 부터 저 녀석 이름 링링이다. 이상 끄읕"

"링링, 링링, 헤헤헤"

링링이라는 이름을 되뇌이며 좋아하는 사도연의 표정과 다르게 흥! 칫! 핏! 삼단계의 삐침 신공을 시전하는 설지의 표정이 대조되었던 어느 여름날 숲에서 구조된 작고 검은 토끼는 토야라는 이름 대신에 링링이라는 예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성수의가>의 2014년 연재는 200회를 끝으로 마감하며 201회는 새해인 2015년 1월 4일 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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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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