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성 정현에서 숭산이 있는 등봉현으로 향하는 잘 닦인 관도를 뜨거운 태양이 불태울 것 처럼 내리쬐는 어느 여름 날의 오시(정오) 무렵이었다. 먹이 사냥을 나섰던 새들 마저 더위에 지친 듯 잠시 날개를 접고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꾸벅거리며 졸던 그 시각에 저 멀리 나즈막한 언덕 뒤편 관도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움이 일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졸고 있던 새들 마저 하나둘 잠에서 깨어 평온하던 숲속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움에 깨어난 녀석들 중에는 날개를 쫙 펼쳐서 기지개를 켜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등뒤로 돌려 자신의 부리를 이용하여 날개를 분주히 손질하는 녀석들 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까? 더위에 지쳐 시들어가는 것만 같던 숲속이 갑자기 생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한편 새들의 그런 소란스러움이 별로 낯설지 않았던 숲속 식구인 다람쥐 한마리는 자신의 텃밭인 도토리 나무에서 가지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놀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다람쥐가 한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관도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양쪽 볼이 불룩하게 튀어 나오도록 나무 열매를 입 속에 감춘 그 녀석의 눈에 신기하면서도 두려운 광경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들 쪽을 향해 다가오는 소란스러움을 선두에서 이끄는 이가 바로 당나귀 한마리와 무섭게 생긴 매 한마리였던 것이다. 흔히 관도를 오가는 비루먹은 당나귀들과 다르게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피부와 털을 가지고 있는 당나귀와 그런 당나귀의 등 위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자신의 천적인 매 한마리를 발견한 다람쥐가 흠칫하며 시선을 고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당나귀와 매의 뒤로는 긴 마차 행렬이 따르고 있었다. 소란스러움의 정체는 바로 마차 바퀴가 관도 위를 굴러가며 내는 소리였던 것이다. 긴 세월을 살아 왔다고 할 순 없지만 다람쥐 나이 두 살이면 제법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할 수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관도에서 시선을 뗄줄 모르는 다람쥐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람쥐 녀석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처럼 긴 마차 행렬을 보고 있는 것이다.

온통 검은색을 칠한 탓에 상당히 육중하게 보이는 마차 한 대를 선두로 하여 십여대의 마차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으며 또 그 뒤로는 짐을 잔뜩 실은 우차 십여대가 한가로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처럼 우차와 마차의 합이 도합 이십여대가 넝머가는 긴 행렬은 대상단이나 대표국에서도 연출하기 힘든 광경이었다. 때문에 관도 옆에 자리한 도토리 나무가 텃밭인 다람쥐 녀석도 이처럼 긴 행렬은 난생 처음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긴 우마차들 가운데 하나의 마차에서는 지금 웃음꽃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꺄르르"
'호호호"
"호호호"
"링링, 다시 아~ 꺄르르"

바로 그 때! 웃음꽃이 피어나는 마차 곁을 말을 타고 따르던 위맹한 모습의 청년 하나가 웃음 소리에 이끌려 마차를 향해 다가 가는 모습이 다람쥐의 시선에 들어 왔다. 그런데 그 청년의 모습이 조금 기이했다. 처음 다람쥐가 그를 발견했을 때는 분명 이십대의 청년 처럼 보였는데 다시 보니 그보다는 훨씬 나이가 많은 장년으로 보였던 것이다. 다람쥐 시각의 한계 탓이었을까?

아니었다. 그가 바로 두 번의 환골탈태를 거치며 청년 아닌 청년의 모습으로 변신한 철무륵이었기 때문이다. 웃음꽃이 만발하는 마차의 창가로 다가간 철무륵이 안을 들여다 보며 입을 열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게냐?"
"호호호, 별일 아냐. 링링이 녀석이 하는 행동이 우스워서 그래"
"링링이가?"

"헤헤, 대숙도 보실래요?"
"그래. 한번 보자꾸나"
"헤헤. 잘 보세요. 링링, 아~"

마차 안은 다시 한번 웃음꽃으로 채워졌다. 그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사도연이 작은 당근 조각 하나를 링링의 머리 위로 가져가자 그 손을 좇아서 자리에서 일어섰던 링링이 그만 뒤로 발랑 나딩구는 모습을 철무륵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크하하, 조그만 녀석이 식탐 때문에 몸이 고생하는구나."
"호호호"
"헤헤, 웃기죠?"

"그래. 그렇구나. 헌데 그러다 링링이 그 녀석이 다치는건 아니냐?'
"헤헤, 설지 언니가 괜찮다고 했어요"
"하긴, 어련하겠냐만은, 그나저나 설지야, 좀 쉬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응? 벌써?"


"벌써는 인석아, 해가 중천이다. 며칠간 강행군을 했으니 오늘은 여기 어디쯤에서 점심도 해결하고 아예 하루 숙영을 하면서 쉬어가자꾸나. 네 생각은 어떠냐?"
"숙부 마음대로 해"
"그래, 그럼 터 좋은 곳을 골라서 쉬어가자꾸나. 내 그리 알고 전달하마"
"응!"

철무륵이 말을 몰아서 뒤로 사라져 가자 마차 안은 다시 웃음꽃으로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한편 도토리 나무 위에서 지켜보던 다람쥐에게는 거의 악몽과도 같은 일이 잠시 후 관도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잘가던 행렬이 갑자기 속도를 늦추기 시작하더니 자신이 있는 도토리 나무 근처에 이르러서는 아예 움직임을 멈춰버린 것이다. 그리고 곧바로 사람들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다람쥐가 앉아 있던 도토리 나무 근처에서 부터 눈이 탁 트이는 개활지가 펼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머지 않은 곳에 작은 개울 까지 흐르고 있으니 성수의가의 의행으로 위장하고 있는 마화이송단의 하룻밤 숙영지로는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물론 도토리 나무를 텃밭삼아 잘살고 있던 다람쥐에게는 난데없는 불청객들의 침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우와! 여기 멋진데"
"초혜 언니, 나도, 나도 내려줘"
"응? 호호호, 자 손 잡아"
"헤헤. 고마워, 끙차"

초혜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뛰어 내린 사도연도 주위를 휘둘러 보더니 품에 안은 링링을 바라보며 곧바로 감탄성을 토해냈다.

"우와! 진짜 멋져"
"그렇지?"

"응!"

"그렇게 좋아?'
"응! 설지 언니도 빨리 내려"
"알았어. 청청 언니 우리도 내려"
"예! 아가씨"

멀리서 누군가가 지금의 광경을 보았다면 침어낙안의 미녀들을 마구 토해내는 신기한 마차라고 탄성을 발했을 것이다. 그만큼 마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는 설지와 초혜, 그리고 진소청의 미모는 뜨거운 태양빛이 무색하리만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가끔 가다 행렬에 포함된 각 문파의 후기지수들이 가까이 접근하지는 못하고 멀리서 그녀들을 바라보며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아가씨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요?"
"아! 초록이 아저씨, 우리 괜찮아요"
"헤헤. 다행입니다요, 설지 아가씨. 그럼 장소 부터 고르십시요"


"장소요?"
"천막 칠 장소 말입니다요. 아가씨들 천막 위치를 먼저 정해야 다른 분들 천막도 자리를 정하니까 말입니다요"
"아! 어디 보자. 음, 저기가 좋겠네, 다들 어때?"


"나도 좋아"
"나도"
"저도 좋습니다. 아가씨"

"어디 말입니까요? 저기 도토리 나무 아래 말입니까요?"

"예. 그쪽에 우리 거처를 마련해주세요"
"알겠습니다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후딱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설지 일행이 묵을 천막 위치를 정한 두자성이 빠른 걸음을 옮겨 짐수레를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도연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설지 언니, 그런데 왜 도토리 나무 아래야?"
"호호, 그건 말이야, 이 언니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에 답이 있단다"
"응? 손가락 끝?"
"그래 잘 보렴"

그렇게 말하면서 섬섬옥수를 들어올린 설지가 도토리 나무의 중간 쯤을 가리키기 시작했다.

"어때? 보이니?"
"음음... 아! 다람쥐다"
"호호, 찾았구나. 그래 다람쥐, 바로 저 녀석 때문이야"


"응? 다람쥐가 왜?" 
"그건 저녀석이 지금 골이 잔뜩 나 있거든"
"골이 났다고? 왜?"

"그야.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들 때문이지'
"아!"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보다 우리가 저 아래에 머물면 녀석도 조금은 안심이 될거야"
"그렇구나. 헤헤"


사도연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설지가 이렇게 말하는 순간 갑자기 사도연의 얼굴 옆으로 철무륵이 얼굴을 불쑥 들이밀며 입을 열었다.

"뭐가 안심이 된다는게냐?"
"꺅!"
"크하하, 놀랐느냐?'

"대숙!"
"크하하"
"놀랐짆아요"
"놀라라고 그랬는데? 크하하"

갑자기 등 뒤에서 불쑥 커다란 얼굴이 나타나자 기겁한 사도연과 달리 자신 때문에 놀란 사도연의 모습이 귀여줘 죽겠다는 듯 대소를 터트리는 철무륵이었다.

"철숙부, 애 놀라게 무슨 장난이야"
"크하하, 미안, 미안, 아! 그보다 설지 네게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려느냐?"
"응? 부탁이라고, 갑자기 무슨 부탁"

철무륵의 부탁이라는 말에 진소청과 초혜는 물론 사도연의 눈까지 철무륵의 입술을 향해 일시에 고정되었다.

"이 녀석들이 왜 이렇게 봐? 다른게 아니고 이건 당분간 비밀이다만 초록이 저 녀석을 우리 녹림의 군사로 쓰려고 한다. 어떻게들 생각하느냐?"
"우와, 군사라고요?
"그래, 어떠냐 초혜 네 생각은?"

"음, 저야 뭐... 좋은 생각 같아요"
"그렇지? 저 녀석이 제법 머리도 빠르게 돌아가고 일처리도 깔끔해서 녹림의 군사감으로는 제격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헌데 말이다. 군사가 될려면 잡다한 것들도 알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그야. 그렇죠"

"해서 말인데 오늘 부터 설지 네가 저 녀석 군사 교육을 제대로 좀 시켜다오"
"내가?'
"그래! 군사라면 적어도 왠만한 진법은 통달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꿰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설지 네가 진법을 포함해서 필요한 것들을 오늘 부터라도 좀 알려주었으면 한다."

"음, 알았어, 그렇게 해"
"크하하, 내 승낙할 줄 알았다. 고맙다. 고마워, 아 참! 아직 저 녀석에게는 비밀이다"
"알았어"

사도연을 향해 눈을 찡긋해 보인 후 돌아서 가는 철무륵의 발걸음이 유달리 가벼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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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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