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모르게 자신의 양볼에 도토리 열매 하나씩을 살짝 감춰두고 가지 사이에 앉아서 침입자들의 하는 양을 관찰하던 다람쥐는 지금 신기한 광경을 눈으로 보고 있었다. 자신의 볼 속에 감춰진 조금 덜 익은 도토리 열매에게 따스한 햇살의 기운을 걸러서 나눠주는 역할을 하는 나뭇잎과 같은 색인 녹색의 그림자가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녹색의 기운이 스쳐간 자리 마다에는 어김없이 침입자 하나가 나뒹굴고 있었다. 맹세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 같은 광경에 다람쥐는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움찔움찔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녹색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순간 또 다른 침입들에게 뭔가 안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작고 귀여운 다람쥐의 그런 깨달음은 사실이었다.

뭔가를 세게 가격할 때 나는 퍽퍽퍽 하는 소리와 함께 두자성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한 사람씩의 마적들이 쓰러져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마적들이 함께 타고 온 말들이 자신들의 등 위에서 사람이 굴러 떨어져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낙에 순식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말들이 미처 깨달을 사이도 없이 마적들이 제압되고 있던 까닭이다.

한편 작은 토인들이 펼쳐 놓는 신기한 세상을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던 사도연은 백여명에 이르는 마적들의 태반 정도가 제압되는 순간에 마침내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들고 있었다. 토인들이 만들어나가는 팔방진의 순서를 모두 외운 것이다.

"이야야! 됐다"
"호호, 다 외웠니?"
"응! 응! 다 외웠어, 나도 이제 팔방진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

"호호, 잘 됐구나"
"헤헤, 응?! 설지 언니, 저 아저씨들은 누구야?"
"글쎄? 아마 마적인가 봐"
"꺅, 마적? 그,그럼 어떡해? 도망가야 하는거 아냐?"

팔방진을 들여다 보느라 미처 마적들이 가까이 접근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사도연이 뒤늦게 마적들의 정체를 알고 기함을 했다. 사실 불필요한 기함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도연의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보고 있던 초혜가 낭랑한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응? 초혜 언니, 왜 그래? 도망가야 하는거 아냐?"
"호호, 도망을 왜 가? 저길 봐봐"

그렇게 말하며 초혜가 가리키는 곳에는 연신 매타작하는 소리와 함께 그에 따라 나뒹구는 마적들의 모습이 생겨나고 있었다.

"응? 저건... 초록이 아저씨야?"
"초록이 아저씨 맞아, 어때 저런데도 우리가 도망가야 할까?"
"헤헤, 안가도 되겠네. 링링, 저기 봐봐, 저 아저씨들이 그 무서운 마적들이래, 너도 무섭지? 그치?"

두자성이 마적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그제서야 안심을 하는 사도연이었다. 한편 뭔가가 휙휙하고 지나가면 어김없이 수하 하나가 나뒹구는 바람에 고소평은 지금 미치고 폴짝 뛸 노릇이라는 말을 절감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느낌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무척이나 오랜만에 다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소평과 마적들을 바라 보고 있던 설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자신의 팔목에 채워진 성수지환이 미세한 떨림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성수지환이 반응할 만큼 강력한 마기를 지닌 자가 마적들 사이에 숨어 있다는 이이야기였다.

"보표 아저씨!"
"무량수불! 말씀하시지요. 신녀"
"사람들에게 지금 곧바로 외곽을 포위하라고 하세요"

"예? 그게 무슨?"
"여기 마적들 사이에 마인이 포함되어 있어요"
"알겠소이다"

설지에게서 마적들 사이에 마인이 포홤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청진 도사는 곧바로 전음을 펼쳐 소림과 화산파 그리고 천마신교의 흑룡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자신은 무당십이검과 함께 조용히 걸음을 옮겨 매타작이 벌어지고 있는 마적들의 외곽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는 다른 세 문파의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는 고수들의 은밀한 움직임은 숙영지의 분위기를 곧바로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처럼 만들었다. 그 같은 움직임을 깨달은 초혜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설지 언니, 무슨 일이야?"
"마인이야"
"응? 마인?"

"그래 저들 속에 마인이 섞여 있어"
"또? 제길"
"혜아, 청청 언니, 조심해, 그리고 연이는 내 곁에 꼭 붙어 있고, 알았지?"
"응!"

고개 까지 주억거리며 야무지게 대답하는 사도연이었다. 한편 무려 네 개 문파의 절정 고수들이 은밀하게 주변을 포위하는 사이에 백여명에 이르는 마적들 가운데 마상에 올라 앉아 있는 이는 이제 채 십여명도 남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십여명도 두자성의 신형이 다시 한번 번쩍하는 사이에 모조리 제압당해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짜식들, 겁대가리 없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치뜨고 달려 들어, 확 그냥 막!"

마지막 한사람의 마적 까지 모조리 제압한 두자성이 손을 탁탁 털며 좌우를 둘러 보았다. 확실히 모두 제압당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쓰러진 마적들 가운데 두 사람의 기운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애써 감춰두었던 마기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뭐,뭐야?"
"초록이 아저씨, 조심하세요. 마인들입니다"
"으헥! 마인이요? 아이고, 나 살려"

마인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후다닥 그 자리에서 물러나와 순식간에 설지 옆으로 다가오는 두자성이었다. 마인이 등장했을 때는 설지의 옆자리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완전히 터득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두자성을 바라보는 설지의 얼굴에는 언뜻 보면 장난기가 느껴질 정도로 묘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호호, 무서우세요?"
"그러문입쇼. 저 놈들 저거 변신하면 거의 무적 아닙니까요, 아! 물론 아가씨한테는 무적이 아니지만 말입니다요"
"호호호, 그러지 말고 가셔서 제압해보세요"
"예? 소인이요? 안됩니다요, 절대 안됩니다요, 암! 안되고 말고"

그 순간 두자성의 뒤통수를 향해 손바닥 하나가 날아들면서 경쾌한 타격음을 동반했다.
딱!

 

"누,누구야? 헉! 총표파자님"
"이 자식이 겁은 왜 이리 많아, 이 놈아 설지가 나가서 제압하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게 아니더냐. 어서 나가지 못해?"
"초,총표파자님, 아가씨..."
 
오만상을 쓰며 뒷걸음질치는 두자성의 머리통을 한대 더 갈기려던 철무륵의 손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두자성이 휙하더니 설지의 뒤로 가서 숨어 버렸던 것이다.

"허, 저 놈 저거"
"호호, 초록이 아저씨 그러지 말고 나가 보세요. 저런 정도의 마인은 아저씨라면 충분히 제압이 가능할거예요."
"저,정말이십니까요?"
"그렇다니까요. 이번 기회에 박투술을 완벽히 깨우치세요."

"알겠습니다요. 아가씨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믿고 나가겠습니다요"
"호호호, 아! 그리고 혜아도 나가서 하나를 맡아."
"좋았어, 이번에는 내가 아주 떡을 만들어주지. 가요, 초록이 아저씨"
"옙, 막내 아가씨"

두자성과 초혜가 막 기괴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는 마인들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순간 주변에 있던 마적들은 마인들의 모습에 깜짝 놀라서 분분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자연스럽게 마적들의 가운데로는 둥그렇게 비무장 비슷한 것이 생겨났다. 그리고 지금 그 자리에는 투기를 불태우고 있는 두자성과 그와는 반대로 주먹을 쓰다듬으며 얼굴에 미소 까지 드리우고 있는 초혜가 마인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오호! 이것들 보게, 재미있겠는데"

그렇게 말한 초헤가 먼저 달려나가 마인 하나와 접전을 치열한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 초혜를 멍하니 바라보던 두자성도 이내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투기를 불싸르며 나머지 마인 하나에게 달려 들었다. 그리고 그때 부터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초혜와 두자성이 보여 주는 거의 완벽한 박투술에도 마인들은 쉽사리 제압당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끔씩은 두 사람을 위기에 빠트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주먹대장은 역시 주먹대장이었다. 두자성 보다 먼저 완벽하게 마인 하나를 제압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쓰러진 마인의 다리 하나를 잡은 초혜는 아직도 공방중인 두자성에게 손 하나를 들어 올려 힘내라고 흔들어준 후 쓰러진 마인을 질질 끌면서 설지에게로 향하였다.

"설지 언니, 임무 완료"
"수고했어, 다친데 없지?"
"그럼, 이깟 마인 하나 때려 잡는데 다치면 어떡해"

"우와, 초혜 언니 멋있다"
"응? 호호호, 그치? 이 언니가 멋있긴 멋있지?"
"응! 정말 멋져"

"호호호, 그래서 말인데, 연아, 여기서 누가 제일 멋져? 역시 이 초혜 언니지? 그렇지?"
"응? 아닌데?"
"아,아냐? 그럼 누가 제일 멋져?"

"그야, 청청 언니가 제일 멋지지"
"그럼 청청 언니 다음은?"
"당연히 설지 언니지"
"호호, 그럼 그 다음이 바로 나구나 그렇지?"

기대를 잔뜩 안은 초혜의 질문은 사도연의 도리질에 의해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아냐!"
"아니라고? 그럼 누군데?"
"음, 설지 언니 다음은 대숙 그리고 그 다음은 현진 오라버니..."
"캬악! 이럴 수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이야기하는 사도연의 행태에 초혜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크하하, 이 숙부가 세 번째라고? 크하하, 이거, 초혜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그러게 말입니다. 초사저보다 졔가 멋지다니 의외군요"

철무륵의 호탕한 웃음 소리와 현진 도사의 맞장구가 비수가 되어 초혜의 가슴을 콕콕 쑤셔대기 시작했다.

"그,그럼 꼬맹이 다음은 나 맞지? 그렇지?"

그렇게 말하는 초혜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도연이 마지 못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더라도 사도연이 '에라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라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크윽, 그나마 다섯 번째가 어디야"
"크하하"
"허허허"
"켈켈켈, 그럼 연아, 이 할애비는 몇 번째냐?"
"음음, 거지 할아버지는요..."

사도연의 손가락을 꼽는 횟수가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수가 무려 열이 넘어갈 때 까지도 사도연의 입에서 호걸개의 이름은 거명되지 않고 있었다.

"그,그만, 에잉, 이래서 딸 자식은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는게야"
"무량수불, 그보다는 거지더러 멋지다고 할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것이 정답일게야"
"뭐,뭐라고? 이런 말코가"

"허허허"
"크하하"
"호호호"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잦아들 무렵 마인 하나와 치열한 공방을 펼치던 두자성도 마침내 마인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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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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