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스스로도 만족한다는 듯 쓰러진 마인을 내려다 보며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그 모습을 바라보는 철무륵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철숙부! 대견한가 봐?"
"응? 크하하, 암, 대견하지, 그렇고 말고, 크하하"
"호호호"
"허허허"

사실이 그랬다. 녹림의 본산도 아니고 대현채라는 이름을 가진 녹림 소속의 작은 산채에서 그것도 채주나 조장도 아닌 일개 조원에 불과했던 두자성이 어느 사이엔가 역혈마공을 익힌 무서운 마인을 제압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지금의 두자성이 보여주는 모습만을 놓고 본다면 불과 얼마전 까지만 하더라도 관도를 오가는 행인들로 부터 통행세나 받던 녹림의 말단 산적이 바로 두자성이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쉽게 짐작하지 못할 것이었다.

"아가씨! 소인 임무 완성했습니다요"

마인을 제압한 두자성이 초혜와 마찬가지로 마인의 다리 하나를 붙잡고 질질 끌고 오면서 호탕하게 이야기했다. 그 모습에 설지의 입가에도 미소가 피어 올랐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철무륵은 조금 전과 달리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녹림의 총표파자를 번연히 눈 앞에 두고도 설지에게 먼저 보고하는 두자성의 태도가 마음에 썩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를 내색하면 설지를 비롯한 아이들에게 속좁은 인간으로 비칠까 저어한 철무륵은 내심으로 이를 부득 갈며 두자성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런 철무륵의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두자성은 실실 웃으며 설지 다음으로 철무륵에게 보고하기 위해 입을 열려다 흠칫했다. 자신을 노려보는 철무륵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왜 그러십니까요?"
"아니다, 이 놈아, 그보다 다친데는 없느냐?"
"옙, 소인, 설지 아가씨 덕택에 멀쩡합니다요."
"멀쩡하면 되었다. 제압한 그 두 놈은 설지에게 맡기고 저 놈들 두목이라는 놈이나 데려와 보거라"
"옙, 알겠습니다요."

빠르게 대답한 두자성이 대답 처럼 재빠른 동작으로 두려운 표정을 얼굴에 떠올리고 있는 마적들에게 다가갔다.

"철숙부"
"응? 왜 그러느냐?"
"심통났어?"

"뭐? 흠흠, 아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
"에이, 맞는 것 같은데요. 청청 언니도 그렇지?"

설지의 말에 맞장구친 초혜가 진소청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러지 진소청의 고개가 아래 위로 끄덕여졌다.

"보세요. 청청 언니도 그렇다잖아요"

"흠흠, 아니라니까, 인석들이"
"호호호, 초록이 아저씨가 내게 먼저 이야기해서 그런가 보네"

"맞는 것 같아, 연아도 그렇지?"
"응! 응!"

 

초혜의 질문에 별다른 고민도 없이 즉각 대답하는 사도연이었다. 그 바람에 주위로는 따뜻한 훈풍이 한차례 지나갔다.


"호호호"
"헤헤헤"
"허허허"

바로 그 순간 훈풍을 뚫고 날카로운 시선 하나가 저만치 걸어가는 두자성의 뒷통수를 후려 갈겼다. 훈풍 속에서 드러난 시선의 주인공은 얼굴이 벌겋게 변한 철무륵이었다.

"끙! 내 저 놈을 그냥"

한편 마적단의 두목으로 보이는 놈을 향해 빠르게 걸어가던 두자성은 갑자기 뭔가 날카로운 물체 하나가 날아와 자신의 뒷통수를 강하게 가격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에 걸음을 옮기면서 뒷통수를 문질러 보았으나 머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한 두자성이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서 고개를 돌려 자신이 걸어온 방향을 바라보았으나 별다른 이상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철무륵의 시선이 자신의 뒷통수에서 거둬진 후였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두자성은 애초의 목적지인 마적단의 두목을 향해 다시 걸음을 옮기면서도 고개를 연신 갸우뚱거려야 했다. 뭔가 자신을 자극하는 일이 방금 벌어진 것 같은데 그것이 정확히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어 왠지 찝찝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뭔가 찝찝하다는 것을 느꼈을 때 수하들을 뒤로 물리지 않았던 자신을 탓하며 고소평은 다가오는 두자성을 두려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수하에 괴물들이 두 놈이나 있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런 괴물 두 놈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제압해버린 두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녹색의 저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진짜 무인이었다. 전갈단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몰려다니고 있긴 하지만 무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그저 그런 무명소졸들이 한데 뭉쳐서 몰려다니며 힘없는 소수의 양민들을 약탈하는 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자신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이들이 바로 눈 앞의 녹색 무인 처럼 진짜 무인들인 것이다.

"네 놈이 두목이냐?"

그 무인이 자신을 향해 입을 열고 있었다.

"예? 예. 그렇습니다요"
"아휴, 내 이것들을 그냥"

주먹을 불끈 쥐는 두자성을 바라 보던 고소평이 그 자리에서 넙죽 엎드리며 입을 열었다.

"주,죽여 주십시요. 아,아니 사,살려 주십시오"
"뭐라는거야? 죽여달라는거야? 살려달라는거야?"
"사,살려주십시요. 대인"
"대인? 하하하, 미친 놈"

녹림의 산적이 언제 대인 소리를 들어 봤겠는가? 근자에 이르러 자신과 꿍짝이 잘맞는 흑룡대원들이 대협이라고 불러 주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전부 설지 때문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두자성이었다. 그렇기에 고소평의 입에서 대인이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내심으로는 기분이 좋았던 두자성이 가타부타 말없이 그저 호탕한 웃음과 가벼운 핀잔으로 자신의 기분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두자성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뒤에서 철무륵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초록아! 뭐하냐?"
"엡, 지금 갑니다요. 네 놈은 나를 따라 오너라, 네 놈들을 어떻게 할지는 저기 계신 아가씨께서 결정하실테니"

그러게 말하면서 두자성이 돌아서자 엉거주춤 일어선 고소평이 두자성의 뒤를 따라 힘겨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들의 심정이 지금의 자신과 같지 않았을까 짐작하면서...

"총표파자님, 아가씨, 데려왔습니다요. 이 놈이 저 놈들의 두목이라고 합니다요"
"수고하셨어요"
"이 놈이 두목이라고?"
"엡, 총표파자님"

한편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두자성을 따라온 고소평은 지금 충격에 휘말려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총표파자라니? 여기서 갑자기 총표파자가 왜 나오느냐 그 말이다. 자신은 분명 저기 괴물로 변했던 두 놈의 꼬드김에 따라서 표국을 기습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 기습이 기습이긴 했는지 의심이 가긴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분명 표국이라고 했건만 그렇다면 총포두나 대포두 뭐 그런 직책의 이름이 먼저 나와야 하지 않느냐 이 말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총표파자라니. 자신이 알기로 총표파자라는 직책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은 중원 천지에 단 한사람 뿐이었다. 녹림칠십이채의 총채주를 가리켜 총표파자라고 하지 않던가? 거기 까지 생각이 미친 고소평은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걸 느껴야만 했다.

잠자는 호랑이의 콧털을 제대로 건드린 것이다. 일개 마적단에 불과한 자신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녹림을 대적한단 말인가? 눈 앞이 노래지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며 고소평의 시선은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두 놈에게로 고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는 불같은 분노가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고소평은 뒷통수에 가해지는 상당한 충격을 오롯이 감내해야만 했다.

딱!

"이 자식이! 뭔 생각하는거야?"
"예?"
"허참, 이 자식이, 이 놈아 총표파자님께서 네 놈들이 뭣 때문에 우리를 공격하려 했는지 묻고 계시잖아"

"아! 예, 예, 그것이 저기 저 쓰러진 두 놈이 먹음직한 대표국이 지나간다고 꼬드겨서 그랬습니다"
"대표국? 표국이라고? 너희들 글자 못 읽냐?"

그렇게 말하면서 철무륵이 마차 위에서 휘날리는 성수의가의 표기를 가리켰다.

"그,그것이"
"응? 정말 글자를 모르는게야? 허면 네 놈은 그렇다치고 저기 있는 네 놈 수하들 중에 글자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게야?"
"그,그렇습니다. 하온데 표기에 뭐라고 쓰여 있는지요?"
"응? 지금에 와서야 그게 궁금하냐? 미친 놈, 야! 초록아 네가 이야기해줘라"

그렇게 말하면서 철무륵이 한걸음 물러났다.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두자성이 상대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허, 나 참, 마적들 중에 미친 놈들이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이제 보니 제대로 미친 놈들이로군. 이 놈아, 귀 씻고 똑똑히 듣거라, 내 특별히 한자 한자 또박또박 끊어서 잘 들리게 읽어줄테니"
"예. 대인!"

"미친 놈! 저기 뭐라고 적혀있느냐 하면 성, 수, 의, 가 이렇게 네 글자가 적혀있다. 됐지?"
"예? 성 수 의 가라고요? 성수의가, 헉! 서,성수의가"
"그래 이 놈아 성수의가, 바로 그 성수의가란 말이다."

"사,살려주십시요, 소인들은 진짜 몰랐습니다요"
"초록이 아저씨 잠시만요"
"아! 예, 아가씨, 이 놈아 아가씨 께서 물어보실 말씀이 있으시다니까 한치의 거짓도 있어서는 아니된다. 알겠느냐?'


"예! 예, 물론입니다. 하온데 뉘신지?"
"허, 그 놈 참 궁금한 것도 많다. 그러니 먹고 싶은 것도 많았겠구만, 이 놈아 이 분 아가씨 께서 바로 사람들이 성수신녀라고 부르는 바로 그 분이시다"
"서,성수신녀? 아이고, 소인이 아둔하여 눈 앞에 하늘을 두고도 미처 몰라뵈었습니다. 살려주십시요"

"되었어요. 그보다 물어볼 것이 있어요"
"하,하문하시지요. 소인이 아는대로 말씀 올리겠습니다"
"그래요. 조금 전에 저기 마인들이 우리를 공격하라고 부추겼다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가요?"
"무,물론입니다요. 그 뿐만아니라 저 두 놈들이 얼마나 악독한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그 얘긴 잠시 뒤에 듣죠, 비아!"

고소평과 이야기를 나누던 설지가 갑자기 비아를 찾자 사람들의 이목이 동시에 집중되었다. 갑작스럽게 비아를 찾을 일이 무엇일까 궁금했던 것이다. 한편 도토리 나무 가지 위에서 일정 거리를 두고 터줏대감격인 다람쥐와 서로를 노려보며 잠시 눈 싸움을 하고 있던 비아는 설지가 자신을 찾자 못다한 승부가 아쉬웠지만 패배를 자인하고 훌쩍 나무에서 날아내렸다. 그리고 그런 비아의 뒤로는 황금색의 깃털을 가진 천산신응이 그림자 처럼 따르고 있었다.

"삑!"
"그래, 지금 여기 주위를 오가는 전서구들이 있을거야. 모두 데려와, 할수 있지?"
"삑!"

"그래, 알았어, 빨리 다녀와"
"설지야! 갑자기 무슨 일이냐? 전서구는 또 뭐고?"
"그게 말이야, 기감을 넓혀 봐도 특별하게 느껴지는건 없지만 아무래도 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것 같아"

"감시라고?"
"응! 마적단이 우리를 공격하려던 것도 뭔가를 노리고 한 일 같아"
"그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겠지만 이 숙부가 보기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만"

"아닙니다요. 총표파자님"
"뭐? 아니라고?"
"예. 저 두 놈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우리를 습격하라고 마적단을 부추겼다면 아마도 뭔가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요"

"그래? 그러니까 네 말은 성수의가의 의행에서 저들이 그 물건이 아니라 따로 노리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그런 말이냐?"
"예.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어떠냐? 설지 네 생각은?"
"나도 초록이 아저씨 생각이랑 같아, 비아가 전서구들을 데려오면 보다 확실히 알 수 있겠지"

"흠..."
"무량수불!"
"아미타불!'
"원시천존!'

마적단의 출현에도 동요가 전혀없던 사람들의 입에서 저마다 침중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만큼 사안이 간단하지 않다고 모두가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자신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갑자기 주변 분위기가 한층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느낀 고소평은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좌불안석에 빠져들고 말았다.

'창작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협 연재] 성수의가 206  (0) 2015.02.08
[무협 연재] 성수의가 205  (0) 2015.02.01
[무협 연재] 성수의가 204  (0) 2015.01.25
[무협 연재] 성수의가 203  (0) 2015.01.18
[무협 연재] 성수의가 202  (0) 2015.01.11
[무협 연재] 성수의가 201  (0) 2015.01.04
Posted by 까만자전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