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천공 저 편에서 부터 상념에 잠긴 사람들을 깨우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천산신응과 함께 전서구를 찾으러 날아갔던 비아가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는 소리였다. 아니 좀더 정확히는 비아와 천산신응이 십여마리의 전서구들을 앞세우고 그 뒤를 따르며 위협을 하는 바람에 놀란 전서구들이 필사적으로 날개짓을 하는 소리였다.

"허! 근방에 무슨 전서구들이 저렇게 많아?"
"그러게 말입니다요"

소리가 들려온 천공을 향해 시선을 주던 사람들이 보기에도 철무륵과 두자성의 말 처럼 유난히 많은 전서구가 비아와 천신신응의 호위(?)를 받으며 다급한 날개짓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헤! 설지 언니, 저게 전부 전서구들이야?"
"그런가 봐"
"우와, 무지하게 많다. 원래 전서구들이 저렇게 많이 날아 다녀?"

"아마 아닐걸, 근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게 아니라면 우연일거야"
"그런가? 어쨌든 금아 저 녀석도 잘 하는데, 헤헤"
"금아? 이름을 금아라고 지었니?"

"응! 예쁘지?"
"호호, 그렇구나"
"그렇긴 뭐가 그래, 청청 언니랑 내가 결사 반대해도 한사코 금아라고 부른다나 어쩐다나, 칫"

그랬다. 천마신교의 교주인 혁련필로 부터 천산신응을 선물로 받은 사도연이 원래는 설아에게 가려던 이름인 금아를 신응에게 이름으로 준 것이다.물론 그 과정에서 진소청과 초혜가 금아라는 촌스러운 이름은 절대 안된다며 극구 반대했지만 결국 사도연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단지 황금빛의 깃털을 가지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를 들어 신응의 이름이 금아가 되어 버린 것이다.

"크하하! 금아라고? 그것 참 귀여운 이름이구나, 크하하"
"헤헤, 그렇죠?"

철무륵의 호탕한 웃음 소리가 사라질 즈음 마침내 다급한 날개짓을 해대던 전서구들이 모조리 설지 앞으로 내려 앉았다. 물론 전서구들의 자의가 아닌 비아와 금아의 무시무시한 부리와 발톱 앞에 굴복당한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삑!"
"호호, 비아 수고했어, 금아도"

전서구들이 얌전하게 줄지어 자리하는 것을 확인한 비아가 날카로운 고성으로 임무 완수를 알리며 설지에게 다가왔다. 그런 비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 설지가 전서구들이 지니고 있는 서신들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설지의 예상과 달리 서신들에서 특이한 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단으로 가는 서신과 안부를 묻는 서신 그리고 표국으로 향하는 듯한 서신 등 평범한 내용으로 이루어진 서신들만이 확인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떠냐?"
"음... 특별한 건 없어, 안부가 적힌 서신이 있는가 하면... 이건 여아홍을 개봉할 준비가 되었다며 꼭 들러주십사 하는 내용이네"
"여아홍을 개봉하다니?"
"대숙! 그 말은 딸 자식을 성혼시킨다는 말이잖아요"
"응? 아! 그렇구나, 크하하"

초혜의 핀잔을 듣고 머쓱해진 철무륵이 호탕한 웃음으로 난처함을 타파해보려 했지만 그런 시도는 사도연의 한마디로 불발되고 말았다.

"헤헤, 그건 나도 아는데"
"호호, 우리 연이가 철숙부 보다 똑똑하구나"
"정말?"
"그럼! 호호호"

설지의 칭찬에 기분 좋은 미소를 작은 얼굴 가득 피워 무는 사도연이었다.

"응? 이건..."
"왜 그러느냐?"
"신교의 밀어야"
"밀어?"

한 마리만 남겨두고 전서구들의 서신을 전부 확인할 때 까지도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하던 설지가 마지막 전서구의 서신을 확인하는 순간 표정이 급변했다. 일전에 본 기억이 있던 밀어가 서신에서 다시 등장한 것이다. 밀어가 적힌 서신을 흑룡대주인 추자의에게 전한 설지가 그 내용을 기다리는 사이 갑자기 얌전히 있던 금아가 힘찬 날개짓으로 날아 올랐다.

"응? 금아 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래?"

금아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던 사도연의 시선에 멀리서 날아오는 작은 물체 하나가 보였다. 금아가 날아가고 있는 방향에서 이쪽을 향해 작은 물체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라? 저 녀석은"
"크하하, 곧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지겠구나'
"대숙 무슨 일이예요?"
"궁금하거든 금아 녀석을 잘 보고 있거라. 그럼 알게 될거다"
"예?"

어리둥절해 하는 사도연과 달리 철무륵을 위시해서 설지와 진소청, 그리고 초혜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도연이 더욱 의아해할 즈음 철무륵이 이야기했던 재미있는 광경이 사람들 눈 앞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뭐,뭐야?"
"저,저런"
"어아쿠!"

"허!"
"하하하"
"총표파자님 저게 어찌 된 일입니까요?"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과 웃음이 교차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기세 좋게 날아 올았던 천산신응이 무언가에 화들짝 놀란 듯 꽁지가 빠져라 도망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이리저리 도망다니고 있는 천산신응을 쫓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던 한 마리 비둘기였다. 특이한 점이라면 천산신응을 쫓고 있는 비둘기가 다른 일반 비둘기 보다 몸집이 두 배 정도 크다는 것이었다.

"오늘 금아가 임자를 제대로 만났구나. 크하하"
"호호호"
"총표파자님 지금 제 눈으로 보고 있는게 사실입니까요? 신응이 한낱 비둘기에게 쫓겨 다니다니..."
"크하하, 저 놈이 한낱 비둘기가 아니란 것이 문제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두자성이 궁금함을 참지 못해 철무륵에게 계속 질문을 하는 사이에 천마신교 흑룡대원들의 얼굴은 똥 씹은 표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천산신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신응에 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천마신교의 흑룡대원들이었기에 눈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고 할말을 잃고 만 것이다.

"크하하, 저 놈은 좀 특이한 비둘기라고 할 수  있지, 설지 녀석이 성수의가의 전서구는 튼튼해야 한다며 온갖 영초를 죄다 먹여 가며 키운 녀석이다. 그러니 비아 만큼은 아니더라도 신응이 감당해낼 수 가 없는게지"
"아! 그런겁니까요,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요, 아가씨 께서 키우셨다면 무리도 아니지요"

"크하하, 그래서 저 놈의 이름이 구왕이니라. 구왕!"
"구왕이요? 비둘기 왕이라... 하하하 정말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요"
"아휴! 말씀도 마세요"

철무륵과 두자성의 대화를 듣고 있던 초혜가 불쑥 끼어들었다.

"막내 아가씨,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요"

"그러니까 청청 언니랑 내가 우린 반댈세라고 악착같이 우겨서 그나마 구왕이라도 된거예요"
"예? 허면... 혹시?"
"예, 맞아요. 짐작하시는 것 처럼 저 녀석의 이름이 구아가 될뻔 했죠"
"아! 하하하"

세 여인이 비둘기 이름을 가지고 다투었을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두자성이었다. 한편 사람들의 신기한 시선과 달리 한 사람만은 불안한 시선으로 구왕이라는 비둘기에게 쫓겨 다니고 있는 천산신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의 주인공은 바로 사도연이었다. 혹시라도 금아가 다칠세라 노심초사하는 사도연의 표정을 얼핏 살핀 설지가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사도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금아가 다칠까봐 그러니?"
"응! 언니가 말려줘"
"호호, 그러자꾸나, 구왕! 이제 그만하고 이리 내려 오너라"

맹렬한 기세로 금아의 뒤를 쫓던 구왕이 그제서야 속도를 줄이더니 설지의 근처로 날아왔다. 그리고 마치 정찰이라도 하는 듯 한바퀴 크게 선회하더니 곧바로 설지의 앞으로 날아 내렸다.

"구구구"
"호호, 나도 반가워, 그래 무슨 일이니?"
"설지 언니! 구왕 녀석이 직접 온걸 보니 중요한 서신인가 본데?"
"그렇겠지? 어디 보자"

구왕의 다리에  달린 작은 통에서 돌돌 말린 서신을 꺼낸 설지가 조심스럽게 섬섬옥수를 놀려 서신을 펼치기 시작했다. 말려있던 서신이 펼쳐지자 가볍게 한번 툭 털어서 완전히 펼쳐지게 한 설지가 막 내용을 읽어 내려가려던 순간 하던 동작을 멈추게 하는 이가 있었다. 밀어를 해독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났던 흑룡대주 추자의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신녀! 밀어를 해독했소이다."
"벌써요?"
"그렇소이다. 불필요한 밀어를 잔뜩 적어 놓아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긴 하지만 중요한 말은 진행중이라는 짧은 말 뿐이었소"

"진행중이라고요?"
"그렇소이다"
"진행중이라? 무슨 말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행중이란 말의 의미를 곱씹던 설지가 시선을 아래로 내려 들고 있던 서신에 고정했다. 그리고 서신을 읽어내려가던 설지는 잠시 후 진행중이라는 말의 의미를 확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읽어내려가는 서신에 그 의미를 짐작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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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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