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평소 자신의 먹잇감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비둘기에게 혼쭐이 날대로 난 금아는 구왕이 설지에게로 날아들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하며 빠른 날개짓으로 사도연의 품에 안겨 들었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사도연의 품 속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는 듯이. 그런 금아의 몸 여기저기를 살피며 부산을 떠는 사도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고 잇던 철무륵이 이윽고 시선을 돌려 설지를 바라 보았다.

성수의가에서 온 서신의 내용이 궁금했던 것이다. 헌데 서신을 읽어 내려가는 설지의 표정이 점차 심각하게 변하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꿈쩍 않을 것 같던 설지의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자 마냥 기다리기엔 참을성이 그리 많지 않았던 철무륵이 급기야 설지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며 서신으로 눈길을 주었다.

"무슨 일이냐?"
"응? 아! 철숙부도 읽어봐, 여기"

자신에게 서신을 건네주면서도 심각한 표정을 풀지 않는 설지의 모습을 잠시 의아하게 바라보던 철무륵이 고개를 숙여 손에 들린 서신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신읋 읽어 내려가는 철무륵의 표정도 조금 전의 설지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뭔가 심각한 내용이 서신에 적혀 있다는 것을 지켜 보는 사람들이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무량수불! 그래, 무슨 일인가?"
"아! 예, 어르신, 운학 아우에게서 온 서신인데 귀양에서 성수의가를 둘러싸고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인가?"
"그게 말입니다..."
"제가 설명드릴게요."

일성도장과 철무륵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설지가 중간에 끼어 들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설명하는게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그래, 설지 네가 한번 이야기해보거라"
'예, 도사 할아버지, 그러니까 본가를 둘러싼 괴이한 소문이 귀양 일원에서 포착되었다고 해요"
'괴이한 소문?"

"예! 숙부의 말씀에 따르면 본가에서 치료받고 돌아간 병자 여럿이 돌연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음에 이르렀다고 해요. 헌데 죽은 사람들의 외견에서 별다른 특이한 점이 발견되지 않아 성수의가에서 고의로 사람들을 죽게 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졌다고 하네요. 그 바람에 민심이 들썩이자 귀주성의 성주님께서 직접 본가를 방문하여 자초지종을 살피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무량수불! 어찌 그런 일이..."
"헌데 심각한 일은 따로 있어요"

"응? 그게 무슨 말이더냐? 따로 있다니"
"숙부 께서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은밀히 조사한 결과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고 해요."
"이상한 점?"

"예. 죽은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무인에게 당한 흔적이 발견되었다는거예요"

"무량수불! 허! 어찌 그런?"
"아미타불!"
"원시천존!"

"자세히 설명해보거라"
"예, 죽은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장기가 괴사한 현상이 발견되었는데 독랄한 무공에 의한 것으로 여겨진다는거에요"
"독랄한 무공?"

"예. 양강지공의 일종으로 보이는데 숙부가 모르는 양강지공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장기를 괴사케하는 양강지공임에도 성수신의가 모를 정도라면... 가만! 혼쇄혈마장... 유장문인! 장문인 생각은 어떠시오?"
"원시천존! 빈도가 생각하기에도 혼쇄혈마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혼쇄혈마장이라고요?"
"그래, 설지 넌 잘 모르겠지만 혼쇄혈마장은 양강지기를 이용한 일종의 내가중수법으로 격중당하면 장기가 서서히 괴사하는 특징이 있다. 그 때문에 장법에 당한 이는 상당히 고통스러워하다가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악독한 장법이지. 전전대의 사파 고수인 사검귀랑의 독문장법이기도 하단다. 헌데 절전된지 이미 이백년은 된 듯 한데 어찌..."
"켈켈켈,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는게야? 어떤 놈이 장법을 되살렸으니 다시 등장한게지"

"그게, 그렇게 되는건가? 허허"
"켈켈, 그렇게 되는거지, 헌데 말이다. 누가 그처럼 은밀하게 양민들을 죽인건지 짐작이 가는가? 그렇게해서 뭘 얻겠다는건지 대관절 알 수가 없구만"
"아!"

바로 그때였다. 호걸개와 일성도장의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일시에 잡아끄는 탄성이 장내에 울려 퍼진 것은.

"응? 저 놈은 왜 또 저러는거야? 무슨 일이냐?"

자신도 모르게 불쑥 탄성을 토해냈던 두자성은 철무륵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황급히 사방으로 포권하며 입을 열었다.

"옙! 그게 말입니다요. 그러니까 그 전에 먼저 설지 아가씨께 하나만 여쭙겠습니다요"
"말씀하세요"
"예. 아가씨, 혹시 서신에 민심이반을 노린 것 같다는 이야기는 없습니까요?"

"응? 호호, 있어요. 그런 점 때문에 조심하라고 숙부께서 서신을 보내신거예요."
"역시 그렇군요"
"초록아! 우선 한대 맞고 시작할래?"

"옙! 아,아닙니다요. 말씀 올리겠습니다요. 그러니까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혼쇄혈마장인가 뭔가로 양민들을 주살한 것이 성수의가와 백성들을 떼놓기 위함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 우리를 공격했던 저 놈들의 행동도 그에 따른 것으로 귀결되는 것입지요."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어떤 놈들이 양민들을 이용해서 성수의가의 발을 묶을려고 시도하고 있다는게냐?"

"역시 총표파자님이십니다요. 맞습니다요. 성수의가를 향한 민심이 돌아서게 된다면 아무래도 성수의가의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줄어들테니까 말입니다요"
"그렇다면 전갈단인가 새우단인가 하는 저 놈들은?"
"예, 저도 그게 좀 이상합니다요. 뭔가 아귀에 맞지않는 듯 하단 말입지요. 지금부터 알아보겠습니다요. 야 고소평!"
"예? 옛!"

 
갑자기 지목당한 전갈단의 고소평이 화들짝 놀라며 엉겁결에 대답했다.

"너희들이 요즘 소문이 자자한 그 악독한 전갈단이 맞긴 맞느냐?"
"예? 예, 그것이..."
"어허, 이 자식이 한대 맞고 시작하랴?"

그렇게 말하면서 주먹을 살살 문지르는 두자성의 눈은 곁눈질로 철무륵을 힐끗 살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설지가 웃음을 속으로 삼키는 순간 고소평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아,아닙니다. 맞습니다. 저희들이 전갈단이 맞긴 맞는데..."
"맞긴 맞는데?"
"예. 저희도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지만 소문에 전해지는 전갈단의 악독한 행동은 저희가 한게 아닙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니까 소문에 들려오는 그 악독함은 모두 저기 저 두 놈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 두 놈이 전갈단의 이름으로 그처럼 악독한 짓을 저지르고 소문을 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네 놈 말은 너희들은 잘못이 없고 전부 저 두 놈들 책임이다?"

"그렇습니다."
"허! 이 자식봐라, 네 놈이 전갈단 두목이라면서?"
"그렇긴합니다만 우린 입에 풀칠을 면해 보고자 마적 아닌 마적이 된 것이지 누구를 헤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헌데 어느 날 문득 합류한 저 두 놈의 강권에 의해서 마지 못해 따라다녔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마지 못해서 따라다녔을 뿐이지 마적질은 하지 않았다?"
"아,아니, 그게 아니라 마적질을 하긴 했지만 생사람의 목숨을 빼앗거나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모두 저 두 놈 짓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아가씨! 어떻습니까요?"

"차도살인지계로군요"
"맞습니다요. 아마도 누군가가 저 두 놈을 이용해서 고의로 전갈단의 악명을 높인 후 우리에게 먹잇감으로 던져준 듯 합니다요"
"그게 무슨 말이냐? 먹잇감이라니?"

"엡, 총표파자님. 그러니까 두목이라는 저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갈단의 악명을 전해들은 우리가 저 놈들을 처리하기를 바랬던 것입지요. 그리고 그렇게 우리 손에 저 놈들이 제거되고나면 먹고 살기 위해 어쩔수 없이 마적이 된 선량한 백성들을 성수의가에서 모두 참했다라는 소문을 퍼트렸을 테고 말입지요"
"그런 식으로 성수의가와 백성들을 분리한다? 그래서 진행중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던 것이로군"

"그렇습니다요. 헌데 배후가 누군지 몰라도 그 놈들이 실수한 것은 누구의 목숨이라도 귀히 여기는 설지 아가씨의 성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지요. 제거되는 대신 모조리 제압당할 줄 알았다면 아마 다른 방법을 동원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요" 
"배후는 짐작이 간다만... 그렇지 않습니까 어르신"
"자네 말대로 일세, 아마도 마교겠지"

"소인도 그렇게 생각합니다요,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면밀히 살펴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요"
"무량수불! 허허, 그동안 녹림에 좋은 인재가 숨어 있었구만"
"크하하, 제법이지 않습니까? 크하하"

"철숙부! 입에 먼지 들어가, 그만 웃어"
"응? 크하하"
"헌데 고 아저씨라고 하셨죠?"

"예? 옛"
"아까 어쩔 수 없이 마적이 되었다고 하셨죠?"
"그,그렇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세요"
"예. 그러니까 저희들은 모두 평저현 부근에서 열심히 땅을 일구던 농군들이었습니다."
"농부셨다고요?'

"예. 헌데 오년여 전 현령이 새로 부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어떻게요?"
"쉽게 말해서 수탈이 시작된 것이지요. 갖은 명목으로 과다한 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는데 집에서 기르던 똥개에게 까지 세가 부과되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한 농군들은 평생을 가꾼 터전을 버리고 야반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를 제때에 내지 못하면 곤장을 맞다가 죽어나가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어떻게든 견디어 보려던 이들도 결국 땅까지 빼앗긴 후 쫓겨나거나 노예 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허! 무량수불!"
"아미타불!"
"에잇! 도대체 현령이 어떤 자식이야"

고소평의 말을 듣던 초혜가 분통을 터트리며 자신의 주먹을 문질렀다. 아마도 그 현령이라는 자가 눈 앞에 있었다면 온 몸의 뼈라는 뼈는 모두 다 부숴버렸을 기세였다.

"계속하세요"
'예. 그러니까 그렇게 도망친 우리들은 멀리가지 못하고 인근 산으로 들어가서 화전을 일구며 근근히 입에 풀칠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토벌대가 들이닥치더니 화전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끌려간 이들에게는 노예 처럼 족쇄를 채운 후 빼앗긴 땅에서 농사를 짓게 했지요. 결국 관군의 손에서 무사히 벗어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적질 뿐이었습니다"

길지 않은 설명이었지만 그 속에서 민초들의 고통을 발견한 사람들은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며 깊은 침묵 속으로 잠겨 들었다.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

"아우! 짜증나. 이 자식을 그냥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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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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