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화가 난 표정을 한 채 씩씩거리면서 양손의 옷자락을 걷어 올리는 이는 당연히 초혜였다. 하지만...

 

딱!

"크윽! 언닛!"
"어허, 조신!"
"흥!"

초혜의 머리에 알밤을 한 대 먹이는 가벼운 동작으로 자칫 무거워지려는 분위기를 일신한 설지가 다시 고소평을 향해서 입을 열었다.

"설명은 잘 들었어요. 허나 그렇다고 해서 마적단을 결성하여 또 다른 무고한 이들을 핍박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거예요."
"예. 물론 저희도 그 같은 사실을 잘 알고는 있습니다. 허나 마땅한 생계 방편이 없었습니다."
"휴~ 그렇군요. 평저현 현령이라고 하셨죠?"

"그렇습니다"
"거지 할아버지!"
"켈켈, 무슨 일이냐?"

"평저현의 사정을 알 수 있을까요?"
"켈켈,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을 통해서 지금 막 확인해 보니 평저현은 말이 현이지 눈 닿는 곳 모두가 비옥한 토지로 이루어져 부에 버금가는 규모의 금싸라기 현이라는구나. 때문에 예로 부터 평저현은 풍족한 살림살이로 인심 좋기로 소문난 고장이었다. 그러니 재물에 눈이 먼 탐관오리 한 놈 쯤 생기는 일이야 여반장이었던 셈이지"

"음, 그랬군요. 고 아저씨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평저현 백성들의 형편이 상당히 곤란한 지경에 처해있겠군요."
"아마도 그럴게다. 덕분에 우리 아이들도 평저현에서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구나"
"언니! 어쩔거야?"

설지에게 한 대 맞은 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잔뜩 찌푸린 얼굴로 대화를 듣고 있던 초혜가 다시 끼어 들었다.

"음, 글쎄... 어떤 식으로든 나서긴 나서야겠지"
"뭘 그리 고민해, 당장 달려가서 물고를 내면 그만이잖아"
"쯧쯧, 하여간... 이것아 현령이야, 현령! 그것도 관찰사의 지휘를 받는 현령이라고. 그런 현령을 증좌도 없이 백성들의 말만 믿고 무작정 달려가서 물고를 낸다고? 그러다 정상적인 세수 확보였던 것으로 결론나면 어떻게 할래?"

"응? 그런가?"
"당연히 그렇지. 이것아!"
"헤헷, 그럼 어쩔건데? 무슨 계획이라도 있어? 응? 응?"

"음, 글쎄, 우선 인접한 다른 현들과 비교해서 타당한 세수였는지를 먼저 확인해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봐야겠어"
'켈켈, 그럼 아이들을 인근 현으로 보내보마"
"예. 부탁드려요. 거지 할아버지"
"언니! 그럼 저 마적단은 어떻게 할거야?"
"음...글쎄"

자신들의 처리에 관한 이야기가 초혜에게서 언급되자 고소평을 포함한 전갈단의 단원들 모두는 바짝 긴장했다.

"거지 할아버지!"
"응? 왜 그러느냐?" 
"그간의 전갈단 행적에 대해서도 알아봐 주실수 있죠?"

"켈켈, 그야 뭐 어려운 일이겠느냐? 왜? 저 놈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볼려고?"
"예. 그게 우선인 것 같아서요. 예전 부터 생각해둔게 있긴 한데 어찌할 것인지는 조사를 해보고 나서 결정해야겠어요"
"켈켈, 그렇게 하거라"

"응? 설지 언니! 생각해둔거라니? 그게 뭐야? 응? 응?"
"비밀이다. 이것아!"
"흥! 그런다고 내가 못 알아낼까봐. 대숙! 설지 언니가 무슨 말하는거예요?"

설지에게서 해답을 얻기는 틀렸다고 판단한 초혜가 철무륵에게로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크하하! 나도 비밀이다. 비밀!"
"흥! 정말 그럴거에요?"
"크하하"

그때 가만히 철무륵의 소매자락을 흔드는 이가 하나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철무륵을 올려다 보며 옷자락을 잡아 당기는 이는 다름아닌 사도연이었다. 철무륵에게서도 해답을 구하지 못한 초혜가 재빠르게 사도연에게 전음을 날려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응? 연이구나, 왜 그러느냐?"
"그게 무슨 말이예요?"
"응? 크하하, 초혜 녀석이 물어보라더냐?"
"예!"

선선히 수긍하는 사도연을 보면서 초혜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잠시 뿐이었다. 모르쇠 표정이라는 극고의 신공절학을 발휘하여 손쉽게 태연을 가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하하! 그래, 그래, 우리 연이가 궁금하다면 내 한가지만 일러주마. 표국이다, 표국"
"표..국?"
"응? 표국? 설지 언니, 정말이야?"

"아휴! 그래, 표국이다 표국! 이제 됐니?"
"오호 그러니까 우리 의가에서도 표국을 운영해보자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거지?"
"그래!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청청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

"음, 글쎄요? 표국을 운영하려면 이것저것 따져봐야겠지만 본가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호호, 그렇지?"
"헤헤, 난 찬성"

"나도, 나도, 찬성"
"호호, 우리 연이도 표국이 좋아?"
"응! 응!"

 

"호호, 표국이 뭐가 그렇게 좋은데?"
"음음, 표국을 하면 다른 지방에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가져올 수 있고, 음음.. 예쁜 옷도 많이 가져올 수 있잖아"
"응? 호호호"

"크하하"
"허허허"
"켈켈켈"

맛있는 것과 예쁜 옷을 많이 가져올 수 있다는 사도연의 말에 성수표국의 탄생은 기정 사실로 확정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무 위의 다람쥐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뒤엉켜서 시끄럽게 구는가 싶더니 이제는 한자리에 모여서 웃고 떠드는 인간들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다.

이튿날, 오전!
아침을 먹고난 후 사람들 앞에서 억지로 태극권을 한차례 시연해(?) 보인 사도연은 현진 도사의 손을 잡고 설아와 금아 그리고 링링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이 잘 미치지 않는 곳으로 은밀히 자리를 옮겨 뭔가를 쑥덕거리고 있었다.

"설아! 할 수 있지? 그치?"
"캬오!"
"연아! 그전에 설지 누님에게 이야기하는게 좋지 않을까?"

"아냐! 설아의 도움을 받으면 언니 모르게 할 수 있어"
"그래도 내 생각에 설지 누님의 허락을 받는게 나을 것 같은데..."
"아냐, 아냐, 괜찮을거야"
"안 괜찮을텐데..."

계속 무언가를 거부하던 현진 도사의 입은 째려 보는 사도연의 시선에 결국 조개처럼 다물어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은 사도연이 다시 무언가를 쑥덕거리더니 설아가 조용히 날아 올랐다. 아마도 심각한 사도연의 표정으로 보건데 무언가 중대한 임무가 설아에게 주어진 듯 했다.

그 중대한 임무란 사실 다른 것이 아니라 설지의 잡낭에서 성수보령환 한알을 살며시 빼내오는 것이었다. 구왕에게 쫓겨 다니던 금아의 모습을 본 사도연의 머리 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바로 성수보령환이었다. 그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의 시선이 잘 미치지 않는 한적한 곳에서 작당모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도연의 주도로 이어지고 있는 작당모의는 다름아닌 현진 도사에 의해서 실시간으로 낱낱이 설지에게 보고되고 있었다. 절대로 설지의 눈을 피할 수 없다고 여긴 현진 도사가 공범이 되기를 포기하고 배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현명한 생각이었다. 현진 도사에게서 보고를 듣기 이전 부터 사도연의 행적을 파악하고 있던 설지였기에 작당모의는 애초 부터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한편, 조용히 날아 올았던 설아가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사도연의 시선에 들어 왔을 때는 조금 전과 달리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설지의 잡낭에서 아무도 모르게 무사히(?) 빼낸 성수보령환이었다.

"우와! 설아, 수고했어, 헤헤, 봐, 설아가 도와주면 되다고 했자?"

설아의 입에 물린 성수보령환을 보며 탄성을 내뱉은 사도연이 현진 도사를 향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하지만!

"모두 동작 그만!"

돌연 설지의 낭랑한 외침이 들려 오면서 장내의 분위기는 급격히 얼어 붙고 말았다. 그 바람에 설아의 입에 물려 있던 성수보령환은 바닥으로 툭 떨어져서 또르르 구르더니 누군가의 발 앞에서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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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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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5.02.15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스토리 초대장을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티스토리 잘 운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