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가서 총관 아저씨 모셔와"
"응!"
"초록이 아저씬 고 아저씨 좀 데려 오세요. 해진하실 줄 아시죠?"
"물론입니다요. 아가씨. 금방 데려 오겠습니다요"

이제 막 설지에게 진법을 배우기 시작한 두자성이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빽빽히 서있는 숲속 앞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화이송단이 숙영지로 삼은 곳은 도토리 나무 아래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개활지가 아니었던가? 헌데 난데없는 빽빽한 숲이라니? 하지만 두자성은 그 같은 광경에도 아랑곳 없이 태평한 걸음으로 숲 앞에 당도하더니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러더니 걸음을 옆으로 세 걸음 정도 옮겨 숲을 유심히 바라보며 손가락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숲으로 이어지는 시선과 함께 손가락을 짚어가며 그렇게 잠시의 시간을 보낸 두자성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서있는 곳에서 사선 방향 앞 쪽으로 한 자 정도 움직여 손에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발 아래 땅바닥에 깊숙히 꽂아 넣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나뭇가지를 땅에 꽂아 넣자 숲의 풍경이 잠시 일렁이는가 싶더니 속살이 드러나듯이 숲 한가운데를 가로 지르며 길 하나가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으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그랬다. 설지가 백여명에 이르는 전갈단원 모두를 한데 모이게 한 후 진법을 이용하여 외부의 시선이 미치지 않게 끔 가둬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전갈단원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바뀌게 될 이후의 삶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해야만 하는 중대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기로에 선 그들의 선택은 온전히 자신들의 몫이었다. 성수표국이라는 번듯하고도 번듯한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치는 표국의 쟁자수나 표사로 살아갈지 아니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부평초 처럼 떠돌며 힘겹게 삶을 연명해 나갈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해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었지만...

"고형! 아가씨가 뵙자고 하오"
"예? 저를 말씀입니까?"
"그렇소이다. 따라 오시오"
"알겠소이다"

자신들을 가둬 두고 있던 진 한쪽이 갑자기 열리면서 길 하나가 홀연히 생겨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 보고 있던 고소평은 두자성의 전갈을 듣고 주변 동료들을 한번 쓰윽 바라본 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자성을 따라간 고소평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은 좀체로 익숙해지기 힘든 무림의 명숙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는 설지였다.

"아가씨. 데려왔습니다요"
"설지 언니. 총관 아저씨 모셔왔어"
"그래, 수고했어, 초록이 아저씨도 수고하셨어요"
"아닙니다요. 소인이 한게 뭐 있다고..."

설지가 수고했다며 말을 건네자 공연히 헤벌쭉 웃으며 손사래를 치는 두자성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아가씨. 무슨 하명하실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예. 경총관 아저씨! 잠시만요, 고 아저씨!"
"예, 소저. 말씀하시지요"

"성수의가를 아시죠?"
"예. 이르다 뿐입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호호,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우리 의가에서 표국 하나를 만들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난데없이 표국이라는 말이 튀어 나오자 영문을 모르는 고소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성수의가 소속의 표국 하나를 만들려고 하는데 그동안은 인원 충당이 문제여서 쉽게 결정을 못내리고 있었거든요. 헌데 때 마침 한꺼번에 무려 백여명나 되는 일손을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의향을 묻는거에요"
"예? 허면 소인들을 거둬주시겠다는..."
"호호, 제가 거두겠다는게 아니고 성수표국에서 표사나 쟁자수로 일할 의향이 있는가를 묻는거예요"
"저희들 같은 무지렁이들에게 어찌 그런 은혜를... 고,고맙습니다."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고소평을 보면서 막상 당황한 것은 설지였다. 그저 고마워하며 승낙하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 까지 보이자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아,아니예요. 우선 돌아 가셔서 동료들과 의논해 보시고 기별을 주세요. 아 참! 표국에 몸답고자 하는 분들른 가족들 까지 우리 의가에서 책임질 것이니 따로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흐흑"

농사일로 다져진 두툼한 손을 들어 올려 눈물을 훔친 고소평이 서둘러 걸음을 옮겨 동료들에게로 돌아가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설지가 경총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경총관 아저씨는 저들이 결정을 내리면 청청언니랑 혜아랑 함께 의논해서 표국의 편제를 짜고 그들의 식솔들을 귀양으로 데려갈 방도를 마련하세요."
"알겠습니다. 허면 표국의 근거지는 어디로 하실 의향이신지요"
"음, 아무래도 귀양 인근이 좋겠지요"

"알겠습니다. 허면 그렇게 알고 큰 아가씨와 막내 아가씨와 함께 조치하겠습니다"
"설지 언니, 그러면 대표두는 누가 해? 표국에는 의당 대표두가 있기 마련이잖아"
"대표두? 음... 그야 고 아저씨가 적격일 것 같은데?"

"그런가? 헤헤"
"청청 언니 생각은 어때?"
"저도 아가씨 생각과 같습니다.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가장 신임하는 이가 고 아저씨일테니 말이죠"

"그렇지? 호호, 음, 그리고 저들이 표국에 몸 담기로 결정이 나면 첫 번째 표물은 우리가 될거야?"
"예?"
"응? 설지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나까 성수표국의 첫 번째 표행이 바로 성수의가의 의행을 황궁 까지 무사히 인도하는게 될거라고"
"아!"
"크하하,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입소문으로 성수표국을 알리는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 듯 하구나, 초록아! 그렇지 않느냐?"
"옙, 총표파자님 말씀이 맞습니다요. 소문이 짜르르하게 퍼져 나가겠는뎁쇼"
 
그렇게 성수표국의 첫 번째 표행이 결정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급조한 태가 여실히 나는 성수표국의 표기를 앞세운 마화이송단이 다람쥐의 배웅을 받으며 걸음을 서둘러 평저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마화이송단 행렬의 외형이 지금 까지와 차이점이라면 표기가 추가된 것 뿐만 아니라 그 인원 까지 한꺼번에 백여명이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물론 인원이 늘어난 것은 전갈단이라는 이름의 마적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표국에 몸담기로 결정한 때문이었다.

그리고 5일 후 마침내 평저현이 바로 눈 앞으로 보이는 지점 꺼지 이동한 마화이송단은 서서히 그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최소한의 휴식과 수면을 취하면서 서둘러 달려온 끝에 열흘이 소요되는 거리를 반으로 줄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때문에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마화이송단의 말과 마차 뿐만 아니라 사람들 까지 죄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꾀죄죄한 모습들이었다. 더구나 합류한지 얼마되지 않은 성수표국의 인원들은 눈 아래가 퀭한 것이 그 고초가 제법 심했던 듯 보였다.

바로 그때, 투레질을 하는 말들을 진정시키며 속도를 줄이는 선두의 마차 하나에서 검고 작은 머리 하나가 창을 열고 쏘옥 튀어 나왔다. 그리고 쫑긋한 귀를 세운 작은 머리 위로 다시 작은 머리 하나가 더 튀어 나왔다. 마차의 창 밖으로 고개를 쑥 내밀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 머리의 주인들은 바로 링링과 사도연이었다.

"다온거야? 우와, 다 왔다"
"연아! 그러다 다쳐"

설지의 목소리에 창 밖으로 빠져 나왔던 두 개의 머리가 다시 마차 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두 개의 머리가 사라진 그 자리는 이내 조금 더 큰 머리 하나가 차지하고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초혜였다.

"헤헤, 설지 언니, 다 왔어"
"그래. 우리 연이 힘들었지?"
"아냐! 힘 하나도 안 들었어"

"그래? 호호호"

"이상하다?"
"응? 뭐가 말이니"
"그게... 기운이 이상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초혜가 자리를 고쳐 앉으면서 입을 열고 있었다.
  
"기운이 이상하다고... 응?"
 
초혜의 말을 듣고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던 진소청이 흠칫했다. 멀리 보이는 평저현에서 상당히 불쾌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가씨!"
"죽음의 기운이야"
"응? 죽음의 기운이리고?"
"그래, 멀리서 죽음의 기운이 잔뜩 느껴져"

"그럼 평저현을 온통 감싸고 도는 것이..."
"그래. 생각 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아"
"음... 현령이 누군지 모르지만 아주 작살을 내버릴거야"

죽음의 기운이 평저현을 감싸고 있다는 설지의 말에 자신의 주먹을 쓰다듬으며 이빨 까지 오도독 가는 초혜였다.

"죽음의 기운이 뭐야?"
"응? 우리 연이가 그게 궁금한가 보구나"
"응!"

"음... 그게 뭐냐하면 사람이 죽게 되면 일지기간 죽음의 기운이 주변을 잠식하게 된단다. 일반 양민을은 그런 기운을 감지하질 못하지만 무공을 익힌 무인들은 그런 기운을 감지할 수 있어."
"그럼 평저현에서 죽은 사람이 무척 많다는거야?"
"그런 것 같구나. 사람이 죽어가면서 남긴 기운들이 해소되지 않고 저렇게 한데 뭉쳐 있는 것을 보면 근래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야."

"무서워!"

"무서워?"
"응!"
"이리 와, 언니가 안아 줄게"
"응!"

품속으로 파고드는 사도연의 등을 쓸어 내리는 설지의 표정이 심각하게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마차의 창 밖으로 보이는 평저현의 하늘 쪽을 바라보며 입안으로 중얼거리는 설지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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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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