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렀거라!"
"비키시오"

링링과 설아에게 머리끈을 예쁘게 묶어준 사도연은 또 다른 희생자(?)를 물색하다가 마침내 마차 지붕 위에서 뒹굴고 있던 호아에게 까지 그 시선이 미쳤다. 결국 한사코 거부하는 몸짓을 보여 주는 호아를 설지의 도움을 받아 반강제적으로 자신의 앞에 끌어 내린 사도연은 호아의 머리에도 예쁜 머리끈 하나를 골라서 묶어 주었다.

그런데 머리끈을 한 호아의 모습이 귀엽기는 커녕 '영 아니올시다'였다. 이에 사도연과 호아는 긴급히 서로간에 원만한 타협점을 찾기로 했고 잠시 후 호아의 머리에서 사라진 머리끈은 머리 대신 목으로 그 위치를 변경했다. 그제서야 서로 만족한다는듯 갸르릉거리는 호아와 헤헤거리는 사도연이었다.

바로 그 순간 인파를 헤치고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그들이 나타났다. 손에 육모봉을 각기 하나씩 들고 자신들의 앞길을 막는 거주장스러운(?) 양민들을 거칠게 밀어 부치며 움직이고 있는 그들은 잠시 전에 마화이송단의 모습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 보다 사라졌던 포두를 비롯한 관원들이었다.

"비키지 못하겠느냐?"
"어허! 이 조그만 년이 포두 나리께서 행차하시는데 앞길을 막아? 죽고 싶은게냐?"
"네 이 년, 썩 비키지 못할까?"

한편 호아의 머리 대신 목에 머리끈을 예쁘게 묶어주고 희희낙락하던 사도연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호통과 욕설에 움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사도연의 시선에 십여명의 관원 복장을 한 이들이 노여움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란 사도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설지에게 달려가 안길 때 까지 사나운 눈길로 노려보던 관원들은 그제서야 만족한다는 듯 주위를 둘러 보며 음흉한 미소를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지 못했다. 자신들이 방금 전 사신을 건드리고도 무사했다는 것을. 아울러 설지가 전음으로 급하게 말리지만 않았다면 사도연에게 욕설을 내뱉는 바로 그 순간 은잠해 있던 흑룡대원에 의해 모조리 목이 달아나 버릴 뻔 했다는 것 또한. 

"허허, 어디서 오신 상행이오?"
"허허, 이 사람아, 상행이 아니라 표행 같네만"
"험험,그런가?"

포쾌 두 사람이 시시덕거리듯 말을 주고 받으면서 설지 일행을 눈으로 훑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터 그들의 눈에서는 음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설지와 진소청, 그리고 초혜의 아름다운 모습이 평소의 습관대로 음심을 자극했던 것이다.

"하하, 어서들 오시오. 평저현의 관원들이신가 봅니다?"
"허허, 그렇소이다. 어디서 오신... 으응? 호! 할멈, 이제 보니 오늘 귀인을 만나셨구려?"
 
두자성이 앞으로 나서서 먼저 인사를 건네자 그 인사를 받아 주던 포두가 갑자기 말을 끊고 시선을 돌려 당과를 파는 할머니에게 시선을 주었다.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모습이었지만 어쩌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묵묵히 지켜 보는 두자성이었다. 그런데 점입가경이었다. 자신과 인사를 나누다 당과를 파는 할머니에게 시선을 준 포두의 눈에서 탐욕의 빛이 번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마침 사도연이 건네준 전낭에다 경총관이 모자르는 금액을 합산해서 더 얹어준 것 까지 미처 갈무리하지 못하고 손에 들고 있던 할머니의 모습을 포두가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이에 그들이 나타나는 순간 부터 안절부절 하지 못하던 할머니는 결국 체념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전낭과 은자를 모조리 포두에게 내밀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생하시는 포두님을 위해 내 챙겨드리려 했다오. 자! 여기 이걸 가지고 가셔서 술이나 한잔씩들 하시구려"
"허허, 이런 고마울데가... 정성으로 이리 챙겨 주시니 그럼 염치 불구하고 받겠소이다. 고맙구려, 할멈!"

그런 포두의 행동으로 볼 때 그들의 평소 행실이 눈에서 선연하게 그려지는 두자성이었다. 속으로 이들 뿌득 갈며 좀더 지켜보자는 심정이 된 두자성의 시선이 흘깃 설지를 향하는 순간 흠칫 놀라고 말았다. 늘 온화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던 설지의 표정에서 진소청 못지 않은 싸늘한 기운이 흘러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하, 포두님이셨구려"
"허허, 그렇소이다. 아 참! 어디서 오신 표행들이라고 하셨더라?"
"아! 저흰 귀양에서 왔습니다. 그보다 당과를 파는 할머니 께서 손이 크십니다?"

짐짓 비꼬는 투로 말하는 두자성의 말에 잠시 흠칫하던 포두가 다시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허허, 뭔가 오해를 하셨나 보구려. 여기 시전 상인들이 우리에게 수고한다며 가끔씩 이렇게 챙겨주신다오"
'아! 그러시군요. 하지만 그 금액이 좀 과한 듯 하여..."
"어허! 이 사람이 과하디니... 우리 덕에 편안하게 장사를 하는데 이 정도의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소? 그보다 귀 표행이 이리 시전을 온통 가로 막고 통행에 불편을 초래하고 있으니, 이거 참! 우리 현을 처음 방문하신 분들을 야박하게 모조리 잡아 넣을 수도 없고"

"이런, 정말 죄송하외다."
"죄송할 것 까진 없고 목이 칼칼해서 그런데..."
"아! 하하하, 참으로 시원시원한 성격이시오, 그래, 내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말씀하시면 섭섭치 않게 해드리리다."
"험! 뭐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다면 저기 위 쪽에 좋은 술집이 하나 있소이다만."

그렇게 말하면서 흘깃 흘깃 설지를 향해 시선을 주는 포두였다,. 그 모습을 보는 두자성의 미간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허면 제가 거하게 한상 차려 드리겠소이다."
"험험, 뭐 그리 하신다면... 아! 그리고 술은 여자가 따라야 제 맛인데..."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설지를 향해 음흉한 시선을 던지는 포두였다. 결국 참다 못한 두자성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에라! 이 자식아! 아가씨가 어떤 분이신데 언감생심 네 깟 놈이 감히 ..."

광활한 대지를 가진 대정국의 동쪽으로는 활을 귀신 같이 잘 다룬다하여 동이족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동이족들에게는 복날 개패듯 한다는 말이 있는데 바로 지금 이 순간 두자성에게 얻어 터지고 있는 포두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지켜보던 포쾌들이 어!어! 하는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어디를 어떻게 맞았는지 땅에 나딩구는 포두의 몰골은 처참지경에 끔찍하기 그지 없었다. 오죽했으면 냉기를 풀풀 날리며 서있던 설지가 자신의 품에 안겨서 지켜 보던 사도연을 눈을 가려야 했을까?

한편 자신들의 포두가 맞는 모습을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지켜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포쾌들이 서둘러 제지하려 나서려 했지만 그마저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포두가 두자성에게 얻어 맞기 시작한 순간에 검은색 무복을 입은 십여명의 무인들이 갑작스럽게 포위하듯이 나타나더니 살갗이 따가울 정도로 엄청난 살기를 자신들에게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흑룡대원 하나가 으스스한 살기띤 목소리로 움직이는 순간 모조리 목을 베어 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긴 했지만 호흡마저 힘들어진 포쾌들은 그 따위 협박은 성에 차지도 않았다. 난생 처음 받아 보는 엄청난 살기에 의해 이미 오금을 펴지 못할 정도로 운신의 폭이 줄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 자식아! 네 놈이 그러고도 포두냐? 뭐 수고한다며 챙겨준다고? 강탈하는게 아니고? 이 자식 이거 산적 보다 더 나쁜 놈일세"

쓰러진 포두를 잘근잘근 밟으며 하는 두자성의 말에 어이없어 하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 가운데 대표적인 이들이 바로 초혜와 철무륵이었다.

"대숙! 저 말은 산적들이 나쁜 놈들이라는걸 시인하는 말이죠?"
"크윽, 네 저 놈을 그냥"
"큭큭큭"

초혜의 숨죽인 키득거림이 있고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멈춘 두자성의 매타작이 불러온 결과는 참혹했다. 사람이 스스로는 절대 하지 못하는 이상한 모습으로 꺾인 팔다리는 물론이고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꺽꺽대고 있었던 것이다.

"초록이 아저씨!'
"엡, 아가씨"  
"그 사람 숨통은 튀어 주세요. 아직은 살려둬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요. 하여간 우리 아가씨는 마음이 너무 고우셔서 탈입니다요"

그렇게 말하는 두자성을 어이없게 바라보는 초혜였다.

"저기 있는 포쾌 놈들은 어떻게 합니까요? 죄다 팔다리 하나씩은 부러뜨려 버립니까요?"
"아니예요. 그보단 운신만 가능하도록 사지근맥을 모조리 잘라 버리세요."
"예. 알겠습니다요. 막내 아가씨! 소인을 좀 도와주시겠습니까요?"
"알았어요, 그런데 힘조절이 안돼서 몽땅 잘라 버리면 어쩌지?"

누가 들으면 기함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두자성과 함께 움직이는 초혜였다. 한편 사지근맥을 자르라는 다소 과한 명을 내린 설지는 자신들을 지켜 보는 시전 상인들의 표정에서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인들을 보호하기는 커녕 수탈의 대상으로 여기던 포쾌와 포두가 사정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인들은 공포심을 갖기 보다는 자신들도 모르게 속시원하다는 안도의 표정을 얼굴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 뭐 좀 여쭤 볼게요"
"그,그러시구려. 귀한댁 처자 같은데 괜찮을지 모르겠구랴, 저 놈들의 후환이 만만치 않을텐데 말이야."
"그런 점은 걱정 마세요. 그보다 여기 현령이라는 자가..."

소문으로 전해들었던 현령의 비위를 확인하기 위한 설지의 질문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창작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협 연재] 성수의가 214  (0) 2015.04.05
[무협 연재] 성수의가 213  (0) 2015.03.29
[무협 연재] 성수의가 212  (0) 2015.03.22
[무협 연재] 성수의가 211  (0) 2015.03.15
[무협 연재] 성수의가 210  (0) 2015.03.08
[무협 연재] 성수의가 209  (0) 2015.03.01
Posted by 까만자전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