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ngwie Malmsteen ‎- Like An Angel

잉베이 맘스틴 (Yngwie Malmsteen) : 1963년 6월 30일 스웨덴 스톡홀름(Stockholm) 출생

갈래 : 네오 클래시컬 메탈(Neo Classical Metal), 헤비메탈(Heavy Metal), 기타 버추오소(Guitar Virtuoso)
공식 웹 사이트 : http://yngwiemalmsteen.com/
공식 에스앤에스(SNS) : https://www.facebook.com/pages/Official-Yngwie-Malmsteen/15331653478
노래 감상하기 : https://youtu.be/NUrNsh-JjZk

많은 영어 단어들 가운데 영혼이 통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소울메이트(Soulmate)>라는 단어가 있다. 이를 우리말로 바꾸어 우아하고 제법 그럴싸하게 다듬어서 표현하자면 <영혼의 동반자> 쯤이 되는데 이 말을 우리는 죽고 못살 정도로 친한 친구나 연인 혹은 부부 사이를 가리킬 때 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주지하듯이 죽고 못살 정도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찰떡 궁합을 자랑하던 연인과 부부 사이라고 할지라도 드물지 않게 어느 순간 부터 그 친밀도가 서서히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직접 경험했거나 또는 간접 경험으로 알고 있다.

왜 그럴까?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친구 사이의 우정에는 유효기간이 따로 없지만 연인과 부부 사이의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 물론 내 생각이 그렇게 연결된다고 해서 사랑과 우정이라는 감정을 신의 저울에 올려 놓고 저울질을 했을 때 우정 쪽으로 급격히 기운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연인과 부부 사이에는 뜨거운 사랑의 유효기간이 임박하거나 막 지나치려는 무렵에 우정과는 또 다른 개념의 <정>이 새록새록 생성되어 둘 사이를 끈끈하게 연결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가끔 <그 놈의 정 때문에...>라는 말을 주변에서 자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게 있어서 혹은 다른 누군가에게 있어서 영혼의 동반자는 평생을 통털어 과연 몇명이나 생기게 될까? 우정을 논외로 놓고 살펴보면 한때 영혼의 동반자라고 스스로 인정했으면서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연인들은 물론이고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이들을 발견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요즘이기에 갑자기 드는 생각이다. 

록 음악에 클래식의 요소를 가미시킨 엄청난 속주의 기타 주법으로 일대 혁명을 일으킨 스웨덴의 기타 영웅 <잉베이 맘스틴>에게도 영혼의 동반자라고 불렸거나 혹은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이들이 최소한 세명은 있다. 1982년의 어느날,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열여덟살 소년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담은 데모 테이프 하나가 바다를 건너 멀리 미국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1970년에 스웨덴에서 방영되었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추모 특집 방송을 보고 기타에 관심을 갖게 된 그 소년은 바로 잉베이 맘스틴이었으며 그의 데모 테이프를 들고 자신의 고국인 미국으로 향했던 사람은 슈래프넬 음반사(Shrapnel Records) 소속의 음반 제작자인 <마이크 바니(Mike Varney)>였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3년에 스웨덴의 잉베이 맘스틴은 마이크 바니의 초청을 받고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을 위해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비행기에 오른 잉베이 맘스틴이 도착한 곳은 미국 문화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천사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였다. 낯선 이국땅에서 잉베이 맘스틴을 반겨준 것은 역시 음악이었으며 <스틸러(Steeler)>라는 이름의 헤비메탈 밴드가 그의 첫 번째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새로운 보금자리는 잉베이 맘스틴을 온전히 품어줄 수가 없었다. 결국 같은 해에 밴드를 탈퇴한 잉베이 맘스틴은 막 출범 준비를 하고 있던 <알카트라즈 (Alcatrazz)>로 옮겨가서 본격적인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잘 알려진 것 처럼 <그레이엄 보넷(Graham Bonnet, 보컬)>이 이끌었던 알카트라즈에서의 활동을 통해서 큰 명성을 얻은 잉베이 맘스틴은 1984년에 자신의 밴드인 <라이징 포스(Rising Force)>를 결성하고 엄청난 속주로 거침없는 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록 기타리스트들의 과다 속주 경쟁을 불러 일으킨 잉위 맘스틴의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 말에 잉베이 맘스틴은 자신의 첫 번째 영혼의 동반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바로 스웨덴의 팝 가수 <에리카 노버그(Erika Norberg)>였으며 잉베이 맘스틴은 1991년에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1992년에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묘하게도 사랑의 유효기간이 끝나자마자 두 사람의 결혼도 파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그리고 잉베이 맘스틴에게 두 번째로 찾아온 사랑은 미국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 역시 결실을 맺기는 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1993년 당시 약혼 관계에 있었던 약혼녀의 어머니가 두 사람 사이를 갈라 놓기 위해서 허위로 폭행 신고를 하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결혼까지 이어지긴 했지만 결국 이혼으로 마무리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끝에 마침내 잉베이 맘스틴은 진정한 영혼의 동반자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찾아온 세 번째 사랑이자 영혼의 동반자는 바로 <에이프럴(April Malmsteen)>이었다.

두 번의 결별을 경험한 끝에 마침내 찾아온 행복한 결혼 생활은 잉베이 맘스틴에게 큰 위안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인 <Like an Angel>을 만들게 되었을 것이며 이 곡은 1997년 2월 23일에 발표된 열 번째 음반 <Facing the Animal>에 수록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그리고 2009년 3월 10일에는 아예 아내를 위한 음반 <Angels of Love>를 발표하여 아내인 에이프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과시하기도 했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1987년 6월 22일에 잉베이 맘스틴은 자신이 몰고 가던 승용차로 가로수를 들이받는 대형 사고를 일으켜 8일간이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적이 있었다. 당시 사고의 후유증으로 오른손 기타리스트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오른손이 마비되어 힘든 재활을 거치기도 했었다. 그 때문에 사고 이후로는 세밀함과 기교를 요구하는 기타 속주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런 이유로 최근의 잉베이 맘스틴은 기교 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기타 연주에 더욱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2009년에 발표된 음반 <Angels of Love>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일렉트릭 기타를 앞세운 속주 보다는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한 섬세한 감정 표현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발표곡인 <Ocean Sonata>를 제외하고는 <Like an Angel>을 포함한 모든 곡이 이미 기존에 발표되었던 곡들이지만 새로운 편곡 과정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얼굴로 등장한 수록 곡들이 그래서 더욱 섬세하게 여겨진다.

아울러 어쿠스틱 기타를 포함한 모든 악기를 잉베이 맘스틴 혼자서 연주한 음반의 수록 곡들은 기존의 곡들과는 또 다른 섬세함과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음악적 감성을 자극하여 잉베이 맘스틴으로 하여금 한편의 아름다운 음반을 만들어내게 한 것이다. 참고로 음반의 표지에 등장하고 있는 여인이 바로 잉베이 맘스틴이 사랑하는 아내 에이프럴이다.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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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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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형래 2015.08.06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들어봐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