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나 다를까. 층계를 내려 갔던 소홍이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허겁지겁 돌아오는 모습에서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어떻게 됐어?"
"병자가 위중한 것 같아요"
"위중하다고?"

"예. 작은 아가씨, 병자가 임신부인데 숨쉬기 힘들다고 하더니 갑자기 쓰러져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고 해요."
"의원은?"
"마침 의원 나리가 계셔서 병자를 보고 계신데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세요"
"어? 그럼 큰일인데..."

"어쩜 쫗아? 작은 아가씨, 어떻게 해요? 이럴 때 설지 아가씨가 계시면 좋을 텐데"
"나랑 같이 가봐"
"예? 작은 아가씨께서요?"

의원도 고개를 가로젓고 있던 위중한 병자가 그것도 임신부라는데 큰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던 소홍은 사도연의 말에 어리둥절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섯 살에 불과한 어린 사도연이 가서 본다고 해서 상황이 호전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위중한 병자가 어린아이의 구경거리는 더욱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어서 들려온 현진 도사의 말 한마디에 퍼뜩 정신을 차린 소홍은 서둘러 사도연을 인도해 층계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소홍 누님, 연이가 아직 어려도 어지간한 의원 보단 나을겁니다. 설지 누님에게 뭘 배웠는지 깜짝 깜짝 놀란다니까요"
"아! 그럼 어서"
"비아, 갔다 올 때 까지 그 아저씨들 잘 지켜. 알았지?"
"삑"

대답과 동시에 비아가 제압당한 무인들의 머리 위쪽으로 훌쩍 날아내렸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부리를 번뜩이며 무인들의 머리를 톡톡 건드리는 것으로 위압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까지 확인한 사도연이 현진 도사와 함꼐 서둘러 소홍을 따라 내려 가고 오리구이를 열심히 뜯어 먹고 있던 호아마저 마지 못한 듯 귀찮은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며 아래층으로 사라져 버리자 이제 일행이 앉아 있던 탁자에는 금아와 백아만이 남아서 비아의 장난질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것은 곧 제압당한 무인들의 입장에서는 공포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비아가 그 날카로운 부리를 이용하여 무인들의 눈을 파먹을 듯한 동작을 연이어 선보였기 때문이다. 정확히 눈동자와 부리가 맞닿을려는 순간 동작을 멈추는 비아의 그 같은 반복된 행동은 불행하게도 말려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무인들의 입장에서는 매순간이 공포체험과 다름없는 것이기도 했다.

고개 조차 돌리지 못하는 무인들이 비아의 행동에 기겁을 하며 입안을 바싹바싹 태우고 있을 무렵 아래층으로 내려가 사람들로 둘러 싸인 병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도연의 표정은 심각하기만 했다. 그만 포기하라는 듯 고개를 가로젓던 의원이 병자의 남편으로 보이는 이의 어깨를 두드려 주며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타깝네만 어쩔 수가 없네. 미안하이"
"나,나리, 제 아내를, 아내를 살려주십시오"
"미안하네. 손쓸 방도가 없음이야"

늙수그레하지만 풍채는 꽤나 좋아 보이는 의원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말할 때 뜻밖에도 어린 소녀의 음성 하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어? 아닌데?"
"응? 왠 어린 아이가, 이놈 여긴 아이들이 장난치며 놀만한데가 아니니 썩 물러가거라"
"저, 그게 아닌데"

"작은 아가씨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아니라니?"
"현진 오라버니, 저 기운 느껴져?"
"그래,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 흐르고 있구나"

"맞아, 저 기운이 아줌마의 호흡을 방해하고 있어서 그래. 소홍 언니, 침 가지고 있지?"
"예? 예! 작은 아가씨"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는 의원도 소생이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흔드는 병자를 두고 이상한 대화를 나누는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는 중인들의 시선에 커다란 호기심이 맺히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의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대화의 내용이 심상치 않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현진 도사의 복색이 중인들로 하여금 신비감을 갖게 했기 때문이다.

"이보게, 아직 어려 보이는데 도사님이로구만"
"그렇구만, 동작 하나 하나에 기품이 서려있고 몸에는 현묘한 기운이 흐르는 것으로 보아 범상치 않은 도사님 같구만"
"자네 말이 맞는 것 같네"

"허참, 혹시 소신선이 아닐까?"
"응? 소신선? 아! 무당파의 그..."
"허면 저 작은 여자 아이는 누군고?"
"자네도 모르는걸 내가 어찌 아누?"

사람들의웅성거림 속에서 침통을 꺼낸 소홍이 사도연에게 건네며 입을 열었다.

"작은 아가씨, 여기 있습니다"
"응? 그걸 왜 날 줘?"
"예? 허면..."

"소홍 언니, 시침 안 배웠어?"
"아가씨들께 배우기는 했지만 한번도 병자들에게 직접 시침해본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언니들에게 시침은 해봤을거 아냐?"

"예. 막내 아가씨가 주로 배려해주셨습니다"
"그럼 됐어. 무지하게 엄살심한 초혜 언니가 아직 까지 멀쩡한걸 보면 소홍 언니가 제대로 배웠다는 거니까, 그리고 난 아직 시침하면 안돼, 언니가 허락하지 않았거든"

"아! 허면 어떻게..."
"내가 이야기하는데로 시침해, 먼저 지를 시작으로 천, 창, 응, 여, 옥을 거쳐서 호와 기까지의 혈에 순서대로 시침해"
"예? 거긴 모두 심장과 관련된..."

"맞아, 언니가 그랬어, 저럴 땐 심장을 보호하는 혈을 먼저 자극하여 혈액 공급을 원활하게 해주고 피부 호흡을 할 수 있게 해줘야 된댔어. 서둘러" 
"예, 작은 아가씨"
"어허! 이 놈들이 그래도, 썩 물러서지 못할까"

사도연의 말을 듣고 수긍한 소홍이 떨리는 손으로 막 시침하려는 순간 노기에 찬 커다란 고함 소리가 그런 소홍의 행동을 막았다. 중인들의 반응 때문에 하는 양을 지켜 보고 있던 의원이 끝내 노기를 참지 못하고 노성을 터트린 것이었다.

"허허, 살다 살다 피부 호흡이라니, 이놈들 썩 물러서지 못할까? 그렇지 않아도 힘든 병자를 두고 장난질이라니, 고얀 놈들"

왠지 모를 신비함이 느껴지는 어린 아이들의 등장에 잠시 지켜 보고만 있던 중인들도 노기에 찬 의원의 음성을 듣자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중인들의 반응은 현진 도사의 폐부 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한줄기 청량한 도호 소리에 의해 파묻히고 말았다.

"무량수불! 한낱 어린 아이들의 장난 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잠시만 지켜보시지요"
"뭐해, 소홍 언니, 서둘러"
"아! 예. 작은 아가씨"
"그리고 설아는 빨리 가서 언니 데리고 와, 급하다고 해"
"캬오"

중인들의 시선이 미치는 곳에서는 늘 장식 처럼 별다른 움직임이 없던 설아가 사도연의 말에 작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자 사람들의 시선에 신기하다는 표정이 서렸다. 하지만 그런 표정은 곧바로 경악으로 바뀌었다.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던 설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중인들의 시야에서 휙하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저,저게 뭔가?"
"그,글쎄?"
"말로만 듣던 영수 같은데?"

"예끼, 이 사람. 자네 말대로라면 저게 이야기로나 전해듣던 그런 용이란 말인가?"
"아닌가?"
"당연히 아니지, 영수라니, 허허허"
"껄껄껄"

한편 무서운 속도로 설지를 향해 날아가던 설아는 자신이 방금 빠져 나온 객잔에서 웃음 소리 같은 것이 희미하게 공기를 타고 전해져 오는걸 느끼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아울러 '뭔 일 있냐?'라는 표정으로 잠시 고개를 돌려 객잔을 한번 흘낏 바라본 설아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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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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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zevdrawing 2015.06.04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