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짓 엄살을 떨면서 시선은 설지를 향한 초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입모양으로 의문점을 표했다.

'왜 그래?'


한편 설지 일행 보다 먼저 올라와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아미파 일행들은 명숙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싸늘하게 내려 앉는 장내 분위기 탓에 엉거주춤한 자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들을 구원해준 것은 눈치 빠른 호걸개였다.

"켈켈, 아미파에서도 와 있었구먼, 앉게들, 앉아서 하던 식사나 마저 하시게들, 금정 할망구가 오랜만에 큰 마음 먹은 듯 한데 말일세"
"저런 쳐죽일 거지발싸개 같은 영감탱이가 누구더러 할망구라고 하는거야"
"거지더러 거지발싸개라고 해봐야 욕이 아니라는 것 쯤은 수양이 깊은 자네가 더 잘 알지? 켈켈켈"
"저,저..."

금정 할망구란 말에 발끈한 금정 사태가 호걸개를 노려 보며 응수했다가 결국은 본전도 찾지 못했다. 늘 그런 식이었다. 젊은 시절 부터 친오누이 처럼 다정 했던 두 사람이었기에 만나면 늘상 투탁거리는 것이 일이었는데 그때 마다 늘상 지는 쪽은 금정 사태였던 것이다. 물론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금정 사태가 늘 져주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호걸개의 유쾌한 익살 탓에 철무륵과 진소청 때문에 얼어붙었던 장내의 분위기가 잠시나마 누그러지는 듯 했다. 하지만 다시금 들려온 진소청의 서늘한 목소리로 인해 해빙기로 들어갈 듯 하던 장내의 공기는 순식간에 다시 얼어붙고 있었다.

"연아!"
"응?"
"그러니까 이 놈들이 너와 소홍이에게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응! 내 말이 맞지? 소홍 언니?"
"예. 작은 아가씨"

다시 한번 사실을 확인한 진소청이 제압당한 무인들을 서늘한 시선을 노려 보았다.

"네 놈들이 감히 본가의 소신녀와 그녀를 수행하는 가솔에게 더러운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렸다 그 말이지? 어디 다시 한번 그 입을 열어보거라"

하지만 그런 진소청의 서늘한 냉갈을 접했음에도 제압당한 무인들은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설아에게 아혈 까지 제압당해 버렸으니 입을 열려야 열수가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저기, 청청 언니! 그 사람들 아혈도 제압당한 것 같은데?"

보다 못한 초혜가 슬쩍 끼어들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실소를 먼저 터트렸을 초혜였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흥분한 진소청이 살수라도 펼칠까 싶어서 은근슬쩍 끼어드는 것으로 대신한 것이다. 하지만 초혜의 그런 기우는 공연한 것이기도 했다. 장내의 그 누구보다도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것이 진소청이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어! 설아! 저 놈의 혈을 풀어주겠니?"
"캬오!"

사도연의 바로 앞 탁자 위에 편안하게 앉아 있던 설아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아래로 폴짝 뛰어 내렸다. 그렇게 뛰어 내린 설아의 양쪽 발바닥이 착지한 곳은 제압당한 무인들 중에서 진소청에게 지목당한 무인의 이마 바로 위였다. 그리고 그렇게 뛰어내린 설아는 곧바로 입을 크게 벌리더니 무인의 목을 앙하고 물어버렸다. 한편 갑자기 자신의 이마 위로 툭 떨어진 것의 정체가 다름아닌 설아임을 간파한 무인은 속으로 기겁을 하고 있었다. 끔찍했던 고통이 다시금 상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금 기억을 되살릴 필요 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아까 보다 더욱 큰 고통이 설아가 목을 물어버림으로써 찾아 왔기 때문이다. 아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통이 시작되고 나서 잠시 후 아혈이 풀려 마음대로 비명을 지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커다란 고통을 막 토해내는 순간 진소청이 날린 지풍에 의해 다시 아혈이 제압당해버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더 흐른 후 마침내 제압당한 무인의 고통은 식은 땀과 함께 잦아 들기 시작했다. 때를 맞춰서 진소청이 지풍을 날려 아혈을 풀어주었고 동시에 옴짝달싹할 수 조차 없었던 몸이 자유로워짐을 깨달은 무인은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사방을 둘러 보다 흠칫하고 말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노인들이 자신을 탐탁치 않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누구든가? 평저현 현령의 초청을 받고 온 사사천의 무인들이 아니든가? 비록 음지에서 현령의 뒷치닥거리를 도맡아 하고는 있지만 당금 무림천하를 정도맹, 마도맹과 함께 삼등분하고 있는 사사천 소속이라는 배경이 무인에게 자심감을 회복시켜 주고 있었다.

"크으으, 귀하들은 그리고 소저는 뉘시오? 본인은 현령의 초대를 받고 온 사사천 소속의 무인이오."
"사사천? 현령이?"
"그,그렇소이다. 소저. 헌데 귀하들은 뉘시오?"
"시끄럽다. 네 깟 놈이 그건 알아서 뭘 하려고?"

무인의 질문에 코웃음치며 철무륵이 대답했다. 물론 그 대답에 담긴 살의를 감지한 무인은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저 아이들을 알지?'
"그,그렇소이다, 소저"
"그리고 저 아이들이 한 말도 틀림없겠지?"

"그,그건"
"사실이란 말이지? 호호호, 언제 부터 사사천 따위가 본가를 능멸했단 말이더냐?"
"그,그게 무슨?"

사사천 따위라는 말을 들은 무인은 당혹성을 발해야만 했다. 당금 무림천하에 누가 있어 무림을 삼등분한 사사천을 가리켜 따위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헌데도 눈 앞의 소저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소저의 일신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자신이 멀찌감치서 몇번 보았던 사사천주의 위엄에 절대로 부족하지 않아 보였다.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는 소저의 몸에서 일대종사에게서나 볼 수 있는 기품이 질식할 듯이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장내의 다른 이들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평소에 늘 차갑게만 보이던 진소청에게서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 두자성의 눈은 샛별 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네 놈들이 본가의 소신녀와 그녀를 수행하던 이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것을 부정할 셈이더냐?"
"본가라니? 소신녀는 또..."
"허참, 저 아저씨 말귀 더럽게 못 알아듣네. 이봐요, 멀대 같은 멍청이 아저씨, 그러니까 당신들이 성수의가의 소신녀와 소홍 언니에게 이상한 말을 하면서 희롱했느냐고 지금 청청 언니가 묻고 있잖아요?"
 
말이 겉도는 듯 하자 지켜보던 초혜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끼어든 초혜의 입에서 나온 성수의가와 소신녀라는 말은 무인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만이 아니라 여전히 제압당한 채 누워 있는 다른 사사천 소속의 무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성수의가? 허면 소신녀는..."
"맞아요. 저 아이가 사람들이 성수신녀라고 부르는 본녀의 하나 뿐인 제자예요."

설지의 확인 사살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무인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들이 무슨 일을 벌인 것인지를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전대 성수신의가 혈사교 무인에 의해 비명객사한 후 성수의가는 자신들을 배척하거나 적개시하는 무리들에 대해서는 한치의 관용도 베풀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성수의가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무림세가가 아닌 의가임에도 불구하고 천하제일가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성수의가의 소신녀를... 생각하면 할 수록 눈 앞이 깜깜해지는 무인이었다.

"경총관!"
"예. 큰 아가씨"

"지금 즉시 사사천주에게 배첩을 보내세요"

"알겠습니다. 허면 내용은 어떻게?"
"연이와 소홍이가 당한 일을 소상히 적어서 알려주고 천주가 직접 와서 두 사람에게 사죄하라고 하세요.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본가의 모든 힘을 동원해서 사사천을 상대해주겠다고 전하세요. 그리고 진소청은 천주가 사죄하는 것을 거부하기를 무척 바란다고 전하세요"
"총관 아저씨, 거기 한 사람 더 추가요"

"예, 막내 아가씨, 잘 알겠습니다."
"총관 아저씨, 배첩은 거지 할아버지께 맡기세요. 아무래도 전서구 보단 빠를테니까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가씨. 허면 소인은 잠시 물러나겠습니다"
'헤헤, 오랜만에 제대로 몸좀 풀어보겠는걸"

자신의 주먹을 쓰다듬으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초혜를 바라 보며 사사천의 무인은 기겁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성수의가의 소신녀라는 말에 눈 앞에 있는 여인들 중에 손속이 잔인하기로 유명한 냉수무정 진소청과 소요나찰 초혜가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사천의 무인은 믿는 바가 있었다.

자신들이 비록 성수의가의 소신녀를 상대로 작은(?) 실수를 했다고는 하나 사사천을 상대로 어쩌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사천의 무인은 진소청의 일갈이 그저 화가 난 상태에서 내뱉은 객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사천주더러 직접 와서 사죄하라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말이다.

하지만 왕왕 상식을 깨는 일도 벌어지는 법. 그로 부터 정학하게 사흘 후 안휘성의 양주에 자리한 사사천의 정문이 부서질 듯 세차게 열리고 있었다. 사사천주와 그를 호위하는 십여명의 무인들이 말도 타지 않은 채 다급하게 경공을 시전하면서 정문을 부서버리기라도 할 듯이 활짝 열어 젖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문을 빠져 나온 그들이 향한 방향에는 하남성의 평저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할아버님들 그리고 대숙 죄송합니다."
"허허허, 그럴 것 없다"
"켈켈켈, 암, 가문의 일을 처리하는데 우리 늙다리들의 눈치볼게 뭐 있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크하하, 그나저나 이제 보니 소청이 네게서 일대종사의 기품이 느껴지더구나"
"과찬이세요"

"크하하, 과찬이라니, 참 그 놈들은 어쩔 셈이야?"
"아가씨 어떻게 할까요?"
"청청 언니 생각은 어때?"

"제 생각은 천주가 올 때 까지 잡아 두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놈들이 그간에 무슨 일을 벌였는지도 조사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래, 청청 언니가 하고 싶은대로 해"
'예, 아가씨, 설아! 부탁해"

다시 한번 돌아온 기회가 무척 반가웠던 설아가 다시 독니를 드러내고 사사천의 무인에게로 날아갔다. 이를 감지한 무인이 피해보려했으나 처음 부터 역부족이었다. 어느순간 몸이 뻣뻣해지고 혀가 다시 마비되는가 싶더니 몸이 그대로 뒤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넘어가는 무인의 목에는 설아가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뜻밖의 비명이 사도연의 입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아, 아, 아!"
"응? 왜 그러니"
"어,언니, 이 녀석 좀"

"응? 호호호"
"크하하"
"허허허"

'창작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협 연재] 성수의가 228  (0) 2015.07.19
[무협 연재] 성수의가 227  (0) 2015.07.12
[무협 연재] 성수의가 226  (0) 2015.07.05
[무협 연재] 성수의가 225  (0) 2015.06.28
[무협 연재] 성수의가 224  (0) 2015.06.21
[무협 연재] 성수의가 223  (0) 2015.06.14
Posted by 까만자전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