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켈켈, 이제 그만들 하고 뭐 좀 시키세나. 이 늙은 거지가 아사 직전이라네"
"아! 예. 어르신! 그렇게 하시죠. 이보게, 점소이"
"그리고 연이 너도 그만 그치거라. 아무리 강호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고 해도 누가 있어 성수의가의 소신녀가 애지중지하는 토끼를 탐하겠느냐? 여차하면 이 할애비가 아이들을 시켜서 소신녀에게 애지중지하는 토끼가 있다고 중원 전역에 소문을 내주마. 그렇게 하면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의 강호 무인들이 토끼에게는 눈길 조차 주지 않을게다"

"정말이세요?"
"그럼, 이 할애비가 그렇게 해줄까?"

호걸개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설지의 품에 안겨 있던 사도연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호걸개가 얼굴 가득 미소를 그리고 초혜를 돌아다 봤다. 그런 호걸개의 시선 속에는 '어떠냐? 욘석아, 이 할애비도 제법 멋지지?'라는 의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청청 언니!"
"응? 왜 그래?"
"방금 거지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말야"

"무슨 말씀?"
"강호 도의가 어쩌구 하신거 말야, 토끼랑 강호 도의가 대관절 무슨 상관이야? 둘이 무슨 인척 관계야?"
"음... 아마 아닐걸"

진소청과 초혜의 이 같은 대화가 미소를 짓고 있던 호걸개의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말았다. 대신 철무륵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 소리가 흘러 나왔다.

"크하하하"
"에잉, 거기 누구 있느냐?"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던 호걸개가 창밖을 향해 고함을 치자 누군가가 호걸개 앞에 휙하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여기저기가 찢어지고 떨어져 나가서 누더기가 다 된 탓에 옷을 입은 것인지 걸친 것인지 구분하기 힘든 복색의 거지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태상방주님 부르셨습니까?"
"흠, 불렀으니까 왔겠지"
"예?"

공연히 짜증 섞인 음성으로 대답하던 호걸개가 급히 얼버무리며 본론을 꺼집어 내었다.

"아니다. 그보다 너 소문 하나 내야겠다"
"예? 무슨 소문을..."
"성수의가의 소신녀가 토끼를 애지중지하며 기르고 있는데 그 이름이 링링이라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 예, 잘 알겠습니다."
"중원 전역에 골고루 퍼지도록 해야 하느니"
"물론입니다. 태상 방주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래, 그럼 그만 가보거라'
"예. 태상방주님!"

나타났을 때 처럼 순식간에 그 모습을 감추는 거지였다. 그렇게 거지가 사라지자 미처 끼어들 틈을 찾지 못하고 물끄러미 서있기만 하던 점소이가 그제서야 재빨리 다가와서 입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그렇네. 여기 요리 몇가지 내오게나. 사람 수에 맞춰서 푸짐하게 알아서 내오면 되네. 그리고 어르신들 한잔 하셔야죠?"
"켈켈켈, 그래야지"
"철숙부, 우리도 한잔 할거야"

철무륵이 '한잔 하셔야죠'라고 이야기 하자 조금 전과 달리 헤벌쭉 웃는 호걸개였다. 그리고 초혜의 손가락에 옆구리 공격을 당한 설지도 끼어들었다.

"크하하, 그러면 어디 보자. 술은 금존청과 여아홍이면 되겠고... 설지 넌 더 필요한게 있느냐?"
"아니! 아! 점소이 아저씨, 매콤한 요리도 좀 내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어르신들 더 필요한게 있으십니까?"
"무량수불, 되었네. 그보다 밖에 있는 개방 제자들도 뭐 좀 먹여야 하지 않겠나?"
"켈켈켈, 역시 우리 개방을 챙겨 주는건 말코 네 놈 뿐이로구나"

"알겠습니다. 점소이! 요리와 술은 그렇게 해주고 객잔 밖을 보면 거지들이 있을거네. 그 사람들에게도 먹고 싶은 만큼 요리를 내어주게나"
"예. 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일행이 비싼 술과 요리를 잔뜩 시키자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는 점소이였다. 그런 점소이의 머리 속은 자신에게 떨어질 국물이 얼마쯤 될까를 따지느라 바쁘게 굴러가고 있었다. 비싼 요리를 많이 시키는 손님들은 대부분 손이 크서 점소이들에게도 인심이 후했기 때문이다. 벌써 부터 자신의 손에 놓여질 은자 생각을 하면 미소를 짓지 않을래야 짓지 않을 수 없는 점소이였다.

그렇게 기대에 한껏 부푼 점소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막 아래 층으로 내려가는 것과 때를 같이 하여 그런 점소이를 스치면서 누군가가 위층으로 오르고 있었다. 잠시 전에 어디론가 사라졌던 경총관이 손에 배첩을 들고 위층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큰 아가씨!"
"아! 경총관 아저씨, 배첩이 준비되었나요?"
"예. 여기 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까?"
"아니, 됐어요. 봉인해서 거지 할아버지 드리세요"
"예. 큰 아가씨"

그렇게 말한 경총관이 양초가 타오르고 있는 촛대를 들어 올려서 촛농을 배첩의 입구에 조심스럽게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렇게 떨어진 촛농에 성수의가를 상징하는 태극정 문양의 반지를 꾹 눌러서 봉인한 후 호걸개에게 공손히 내밀었다.

"어르신 부탁드립니다"
"켈켈켈, 걱정 마시게, 누구 없느냐?"

호걸개의 외침에 조금 전에 사라졌던 거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는 눈치를 한번 힐끔 본 후 입을 열었다. 아마도 조금 전의 핀잔을 염두에 둔 듯 보였다.

"부르셨습니까? 태상방주님" 
"쩝! 그놈 참, 옛다. 할일이다"
"이건 배첩 아닙니까?"

"그래, 성수의가에서 사사천주에게 보내는 공식적인 배첩이다'
"사사천주에게 말입니까?"
"그래, 허니 지금 바로 속달로 보내거라. 반드시 천주에게 직접 전달해야 한다"
"예. 태상 방주님, 곧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배첩을 받아든 거지가 층계 쪽으로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 한편 이날 이후 중원 전역에서 살아가던 토끼들은 때 아닌 제세상을 만나게 된다. 왠일인지 사람들이 토끼를 보면 기겁을 하고 물러섰던 것이다. 무림인들은 다분히 경고가 담긴 링링의 소문 때문에 토끼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양민들 역시 성수의가의 소신녀가 토끼를 기르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 너나 할 것 없이 토끼와 거리를 두려 했기 때문이었다. 성수의가를 대하는 양민들의 공경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는 일화였다.

"연아! 오리 고기는 다 먹은거야?"
"아니, 아직 덜 먹었어. 근데 난 바싹바싹한게 좋은데 구운 오리 고기의 속살들은 물러서 별로야"
"그럼 속살들을 다시 구워달라고 할까?"
"응!"

사도연이 그렇게 대답할 때 하늘을 향해 볼록한 배를 드러낸 채 자신의 날개를 요 삼아서 누워 있던 설아가 벌떡 일어났다.

"캬오!"
"응?"
"설아가 뭐라는거야?"

"자기가 할 수 있다는데"
"뭘?"
"고기 굽는거말야"

"정말? 어떻게?"
"캬오!"
"불을 토한다고?"

"언니, 그게 무슨 말이야?"
"아! 호호, 설아 녀석이 불을 토해낼 수 있다고 그러네"
"우와! 진짜?"
"설아, 어디 한번 해봐"

불을 토해낼 수 있다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한(?) 설아가 뒷발에 힘을 주고 배에 잔뜩 힘을 주더니 입을 벌리는 것과 동시에 뭔가를 훅하고 불어냈다. 그런 설아의 모습을 본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기대감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응?"
"꺄르르르"
"호호호"

"크하하"
"허허허"
"켈켈켈"

사람들의 기대감을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설아 때문에 일행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객잔 이층은 순식간에 웃음 바다로 변해버렸다. 왜냐하면 불을 토하긴 토했는데 화르륵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푸시식하는 느낌으로 입에서 불꽃이 일다 말았던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을 본 설아가 좌절하며 탁자에 머리를 콩콩 박기 시작했다. 평소에 초혜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제대로 안풀릴 때면 자아성찰한다며 나무 기둥에 머리를 박는 모습을 보고 흉내낸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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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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