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DC - T.N.T.

추억과 음악 2015. 7. 24. 12:00


AC/DC - T.N.T.

에이시디시 (AC/DC) : 1973년 호주(Australia) 시드니(Sydney)에서 결성

본 스코트 (Bon Scott, 보컬) : 1946년 7월 9일 스코틀랜드 포퍼(Forfar) 출생 - 1980년 2월 19일 사망
앵거스 영 (Angus Young, 기타) : 1955년 3월 31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Glasgow) 출생
맬컴 영 (Malcolm Young, 기타) : 1953년 1월 6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생
마크 에반스 (Mark Evans, 베이스) : 1956년 3월 2일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출생
필 러드 (Phil Rudd, 드럼) : 1954년 5월 19일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Melbourne) 출생

갈래 : 하드 록(Hard Rock), 블루스 록(Blues Rock), 로큰롤(Rock & Roll)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acdc.com/
공식 에스앤에스(SNS) : http://www.facebook.com/acdc
노래 감상하기 : https://youtu.be/yUNNRzAygog / https://youtu.be/44XYEeD1A1U (보컬: 브라이언 존슨)


영화나 스포츠를 비롯해서 향기, 맛, 색상, 모양 등등은 우리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물로써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매개물 가운데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감성을 자극하는 매개물의 하나인 음악의 경우는 다른 매개물들도 비슷하겠지만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의 방식으로 우리의 감성을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여 주는 것 같다.

예컨데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 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기분을 좋게 하는 음악을 듣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무덤덤한 상태에서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다가 의도치 않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건 음악이라는 매개물이 가진 감성을 향한 효능이 최고조로 발휘되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호주 시드니에서 1973년에 결성된 하드 록 밴드 <에이시디시>의 초기를 대표하는 명곡 <T.N.T.>가 내게는 바로 그건 곡이다.

아무 생각 없이 곡을 재생시켰다가 어느 순간 미소를 지으면서 <T.N.T.>를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내가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괜시리 <T.N.T.>를 듣고 있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흥겨움에 빠져들게 되고 그 때문에 반드시 서너번은 반복해서 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T.N.T.>는 내게 있어서 마성의 매력을 가진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난 한 남자가 있었다. 양쪽 옆구리에 한 명씩 두 명의 아리따운 금발 여성을 꿰차고 거만한 모습으로 등장한 그 남자는 자신의 등장에 불쾌한 시선을 던지는 한 사내를 노려 보며 이렇게 이야기 한다. "뭘 째려봐?" 총도 칼도 없는 맨손이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는 남자에게 덤벼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 남자는 공공의 적 1순위에 그 이름을 올려 놓고 있는 아주 비열하고 나쁜 남자이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남자는 이야기했다. "네 놈들의 딸과 부인을 위해서 현관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는게 현명할거야" 이렇게 충고 아닌 충고 까지 내뱉은 그 남자는 마지막으로 또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비열한 미소를 얼굴에 그린다. "날 건드리지 않는게 좋을거야. 왜냐하면 나는 활화산 처럼 폭발하는 다이너마이트거든" 이처럼 명곡 <T.N.T.>의 가사 내용은 전형적인 나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앵거스 영>, <맬컴 영> 형제와 함께 <본 스코트>가 공동으로 만든 이 곡의 가사 내용을 보고 있으면 본 스코트의 자전적인 내용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잘 알려진 것 처럼 열다섯 살에 중학교를 중퇴한 본 스코트는 이후 명의 도용과 휘발유 절도 등의 잡다한 범죄 행위로 9개월간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전력이 있으며 그 때문에 호주 육군에 지원했다가 사회적 부적합자로 판정받고 입대가 거부된 전력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문제아가 분명했던 본 스코트는 1964년에 <스펙터스(The Spektor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하고 드러머이자 보컬리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참고로 1966년 까지 활동했던 스펙터스는 같은 해에 <윈스턴스(The Winstons)>라는 이름의 또 다른 밴드와 합병하여 <밸런타인스(The Valentines)>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70년 8월 까지 활동하다 완전히 해산을 하였다. 한편 밸런타인스의 해산시 까지 함께 했던 본 스코트는 밴드 해산 후 <프레터너티(Fraternity)>라는 이름의 호주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에 합류하였으며 밴드가 남긴 두 장의 음반에 참가한 후 1973년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밴드를 탈퇴하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74년 9월에 당시 에이시디시의 보컬을 담당하고 있던 <데이브 에반스(Dave Evans)>를 대신하여 밴드에 합류함으로써 자신의 이력에 화려한 날개를 달게 된다. 사실 본 스코트는 보컬이 아닌 드러머로 밴드에 합류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런데 데이브 에반스의 보컬이 밴드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앵거스 영과 맬컴 영은 때마침 순회 공연 일정 중에 데이브 에반스가 매니저를 폭행하는 사고를 벌이자 그를 즉각 해고하고 본 스코트에게 에이시디시의 마이크를 맡겨 버린 것이다.

영 형제의 안목과 선택은 탁월한 것이었다. 일례로 아직 까지도 에이디시와 함께 하던 본 스코트를 잊지 못하고 그를 추모하는 이들이 많은 것이 바로 그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증거로는 에이시디시의 국제판(International version) 데뷔 음반이자 1976년 4월 30일에 발표된 편집 음반 <High Voltage>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 스코트가 흥겨운 로큰롤과 끈적한 블루스를 넘나들며 에이시디시의 목소리를 정립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에이시디시는 1975년 2월 17일에 호주에서만 발표된 음반 <High Voltage>로 데뷔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1일에는 역시 호주에서만 발표된 두 번째 음반 <T.N.T.>를 공개했었다. 1976년 4월 30일에 발표된 국제판 버전인 <High Voltage>는 바로 이 두 장의 음반을 편집하여 발표한 것으로 에이시디시의 국제 무대 데뷔 음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데뷔 음반으로 에이시디시는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146위 까지 진출하였었다. 강력한 전기적 신호를 국제 무대에 흘려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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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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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왕당근 2015.10.15 0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노래 알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