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사사천주 육공오는 자신의 일행들을 정중하게 응대하지 않고 마치 시비를 거는 듯한 자세로 다가오는 초혜의 모습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런 사사천주의 모습을 본 일행 중 몇이 초혜에게 발끈하려다 멈췄다. 육공오가 손을 들어 올려 제지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사천주가 손을 들어 올려서 제지를 하지 않았으면 누군가 하나는 검을 빼들고 달려 나갔으리라.

하지만 정작 자신들이 방금 맨 몸으로 호랑이의 아가리에 들어 갔다 나왔다는 것을 육공오를 비롯한 사사천의 일행 중 그 누구도 짐작 조차 못하고 있었다. 사도연과 소홍이 겪은 일에 대한 앙금이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초혜였기에 내심 누구 하나가 발작하기를 기대하며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자 초혜가 다시 한번 도발했다.

"응? 누구냐고 물었더니 대답 대신 이빨을 드러내네"
"뭣이라? 감히 네 년 따위가 이 분이 뉘신줄 알고서 그런 막말을 하는게냐?"

사사천의 무인이 보여준 이번 반응은 기가막힐 정도로 초혜의 마음에 꼭 들어 맞았다. 내심 기대했던 반응을 확인한 초혜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왼손바닥으로 오른손 주먹을 쓱쓱 문지르며 한걸음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난데 없는 호통 하나가 눈치없이 날아들어 초혜의 산통을 산산히 부숴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에 초혜는 눈물을 머금고(?) 한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방문객들의 몸에서 풍기는 사특한 기운으로 보아 배첩을 받고 온 사사천의 무인임이 분명한데 그런 그가 감히 초혜를 향해 무례한 언사를 내뱉자 참지 못하고 두자성이 불쑥 끼어든 것이다. 자신이 존경해 마지 않는 성수의가의 인물들에게 막말을 퍼붓는 무인을 그냥 두고 볼 만큼 두자성의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 것이다

"이런 잡놈이 있나. 감히 네 놈 따위가 막내 아가씨께 그런 불경한 언사를 구사하다니 죽고 싶은게냐?"
"뭣? 하! 잡놈이라 그러는 네 놈은 뭐냐? 쯧쯧, 옷 꼬라지 하고는"
"뭐라? 이런 개잡놈이 남의 옷은 왜 트집인게야? 왜? 너무 멋져서 너도 하나 장만하고 싶은게냐?"

"미친 놈, 온통 초록색으로 몸을 휘감고서 지랄 발광을 하는구나, 네 놈 혹시 녹림 소속인게냐?"
"응? 어라? 네 놈이 그걸 어떻게?"

녹림 소속이냐고 묻는 사사천 무인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두자성의 눈에 초혜는 물론이고 설지와 사도연 마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들어 왔다. 마치 '너만 모르고 다 알고 있어' 라는 듯이... 이에 머쓱해진 두자성이 다시 두 눈에 쌍심지를 켜며 사사천의 무인을 노려봤다.

"흠흠, 네 놈이 제법 눈썰미는 있구나"
"하하하, 이 놈아 세상 천지에 온통 초록색으로 전신을 휘감고 다닐 놈이 녹림 외에 또 있다더냐?"
"시끄럽고 어서 아가씨계 사죄 드리지 못하겠느냐?"

"사죄? 지랄한다"
"지랄? 햐, 이 자식이 정말 죽고 싶은가 보네"
"오냐! 죽고 싶어서 환장했다. 어디 한번 해보려무나"

"오호! 그게 소원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그러니까 지랄 하지 말고 덤벼 보라고"
"이 놈이 그래도, 오냐! 내 오늘 네 놈에게 그 주둥이가 화근이라는 것를 확실하게 깨우쳐 주마"

결국 두자성과 사사천주 일행 중 하나가 거친 입씨름을 벌인 끝에 마침내 일촉즉발의 팽팽한 기세가 둘 사이에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둘을 바라보는 양쪽 진영의 누구도 그런 두 사람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본시 무인은 무력으로 이야기하는 법이라고 했던가? 심중에 어떤 뜻을 숨겨두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사천주 육공오도 설지도 그저 흥미롭다는 시선으로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거기다가 사도연의 머리 위에 앉아서 둘의 대치를 지켜보던 설아 마저 둘의 대치가 실전으로 이어질 듯 하자 다급하게 어디론가 뽀르르 달려가더니 이내 무언가를 잔뜩 품에 안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가져온 것을 사도연은 물론이고 설지와 초혜 등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응? 뭐야?"
"호호, 말린 과일이로구나."
"짜식! 수고했어, 잘 먹을게"

점입가경이었다. 설아가 나눠주는 말린 과일을 받으며 희희낙락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사천주 일행들은 그야말로 기가막힐 지경이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두 사람의 대치를 한낱 구경거리로 전락시켜 버리는 그들의 행동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격돌하게 된다면 반드시 피를 보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임에도 누구 하나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자신들을 발끈하게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계집 조차 뒤로 한걸음 물러나 버리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더구나 빈정거리기라도 하는 듯이 이런 말 까지 툭하고 던져서 일행의 화를 더욱 북돋았다.

"초록이 아저씨! 살살해요"
"어이쿠! 그러문요, 막내 아가씨. 이런 놈 정도는 한 주먹감도 안됩니다요"
"호호, 그렇긴해요"
"저,저..."


결국 초혜의 그 같은 말이 사사천의 입장에서 볼 때는 화를 재촉했다. 둘의 격돌이 끝난 후의 상황으로 볼 때 더욱 그러했다. 참다 못한 사사천의 무인이 검을 빼들고 두자성을 향해 먼저 공객했지만 단 열합의 교환만에 무참하게 바닥에 쓰러져 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눈 한 번 깜빡할 순간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뭐야? 뭐가 이리 약해"

두자성을 향해 덤벼들었던 이는 사사천의 서열 20위 정도에 해당하는 절정 고수인 적광이었다. 강호에서는 사검귀랑이라는 별호로 악명 높은 무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도 어이없이 상황이 종결되어버리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두자성이었다. 검을 빼들고 공격하는 적광의 전신에 빈틈이 너무 많다는 것이 의아하기는 했으나 그냥 칼을 맞아 줄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날아드는 검을 피하다가 살짝 그야말로 살짝 한대 쳤을 뿐인데 상대가 그래도 뻗어버린 것이다.

"에이, 살살하시라니까요. 이게 뭐야. 재미없게"
"막내 아가씨, 이게 어떻게 된겁니까요?"
"아이 참, 어떻게 되긴, 그게 바로 실력 차이란거죠. 그러니까 절정 고수와 초절정 고수의 차이란게 그런거예요"

"아! 하하하,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놈이 까불고 있어"
"초절정?"

사사천주 일행들 사이에서 초절정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는 듯한 소리가 튀어 니왔다. 풍기는 기도로 보아 적광과 두자성의 실력이 서로 비슷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기에 놀람은 더욱 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초절정의 문턱에 갓 들어선 두자성의 기도에서는 아직 까지 절정 고수의 면모가 더욱 강하게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저... 천주님!"
"되었네. 그만하고 더는 나서지 말게. 껄껄. 이제 보니 녹림의 녹광사신이셨구려. 난 육공오라고 하외다.
"아! 예, 초록이 두자성이라고 합니다요"

"초록이?"
"예. 아가씨들께서 소인을 이뻐하셔서 그렇게들 부르고 계십니다"
"껄껄, 근자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의 주인공인 녹광사신 께선 참으로 겸손하구려. 그렇지 않느냐? 철가야?"

"허, 육가야, 네 놈이 날 알아보는구나."
"껄껄, 모습이 변했다하나 내 어찌 녹림의 총표파자를 몰라 볼까? 네 놈 꼴을 보아하니 기연이라도 있었나 보구나"
"크하하, 있었지, 암 있었고 말고"

"좋은 수하에 기연 까지라... 허참, 녹림의 영화가 오래 가겠구나"
"말해 무엇하겠느냐, 아마 영세무궁하게 될거다. 크하하"
"미친 놈, 영세무궁이라니, 그보다 정식으로 소개나 시켜다오"

"아! 참, 그렇지, 설지야 인사하거라, 사사천주다"
"성수의가의 나설지라고 합니다"
"오! 그대가 성수신녀셨구려. 반갑소이다"

"사람들이 과분하게도 소녀를 신녀라 부르고 있습니다"
"전 초혜라고 합니다"
"오라! 이제보니 그 유명한 소요나찰이셨구려"

"에이 참, 이왕이면 소요선자라고 불러 주실래요"
"언니는 나찰이라는 말을 싫어해요."
"응? 껄껄껄, 그렇구려. 내 실수했소이다. 소요선자, 헌데 이 작은 소저는 뉘신지?"

초혜와 육공오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는 현진도사의 뒷통수가 살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그 녀석은 저의 하나 뿐인 제자 아이랍니다. 연아 인사드리거라"
"응! 언니, 안녕하세요. 사도연이라고 합니다."
"캬오오옹 (난 설아야)"

"껄껄. 반갑구려 소신녀셨구려. 반갑소이다. 헌데?"
"헤헤, 설아예요. 설아! 설아는 용이예요'

사도연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기묘한 짐승의 정체가 용이라는 것을 알게 된 육공오가 흠칫 놀라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설아를 바라 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실수였다. 설아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마치 전신이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외부와의 교감이 서서히 단절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헤가 장난 삼아서 전음으로 설아에게 육공오의 이지를 제압해보라고 한 것이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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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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