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 (석빙고, 월성) 1

어찌하다 보니까 경주 교촌 마을의 남쪽을 끼고 흐르는 남천을 우아한 자태로 가로지르는 월정교의 방문을 빠트리기는 했지만 교촌 마을에서 한옥들의 고아한 정취와 계림에서 가을을 만끽한 저는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석빙고로 향합니다. 첨성대에서 계림으로 가기 위해 지나쳤던 그 길의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교촌 마을이 있는 경주 향교 방향이 아닌 반월성과 석빙고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잡아 봅니다.


갈림길에서 석빙고 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고려 말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문익점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서 어렵게 들여온 목화씨를 원조로 하는 목화밭이 전국 최대 규모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문익점 이전에도 한반도에서 면직물이 생산되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당시의 목화는 우리나라의 기후와 토양에 잘 맞지 않아서 재배가 극히 어려웠고 때문에 상당히 귀한 작물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반도에서 목화의 대량 재배가 가능해지고 아울러 많은 면직물의 생산이 이뤄진 것은 우리 토양에 잘 맞는 동시에 대량 생산이 가능한 품종의 목화씨를 들여오고 이를 널리 보급하는데 앞장 선 문익점 선생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었던 것이 전부 문익점 선생 덕분이었던 것 입니다.


목화밭 입구에는 듀엣 하사와 병장의 노래인 <목화밭> 가사가 입간판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노래도 그렇고 첨성대 앞 마당이 목화와 크게 관련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아마도 봄에는 노란 유채꽃이 여름에는 하얀 솜 같은 목화꽃이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경주시에서는 판단한 듯 싶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고 말이죠.


참으로 오랜만에 하얀 솜 같은 목화의 감촉을 다시 느껴 보았습니다. 만졌을 때 다가오는 부드럽고 푹신한 느낌이 참 좋더군요.


목화밭을 뒤로 하고 석빙고로 올라가보겠습니다. 쭉 뻗은 길을 따라서 가다가 좌회전하면 석빙고로 갈 수 있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길의 끄트머리에서 좌회전하면 반달 모양으로 축조된 월성의 전체적인 조망이 그려진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석빙고로 가는 길 중간에는 이렇게 숲으로 연결된 쉼터도 있더군요. 아마도 지난 여름에는 꽤 많은 분들이 시원한 그늘에서 쉬어 가셨을 것 같습니다.


석빙고의 모습입니다. 석빙고를 지나가면 월성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


안내판에 잠시 시선을 주고 석빙고로 다가 갑니다.


지붕에는 석빙고 내부의 뜨거워진 공기를 배출할 수 있는 환기구가 세 개 설치되어 있습니다.


석빙고의 입구입니다. 붕괴 위험이 있어서 예전에는 없었던 나무 문을 설치하여 방문객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었습니다. 석빙고는 외부의 열을 차단할 수 있는 자재(화강암, 석회, 진흙, 밀짚, 왕겨)로 건축을 하고 입구를 바람이 불어 오는 방향으로 설치하여 더운 공기는 위로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내려가는 대류 현상을 활용했다고 합니다.

이런 원리로 석빙고의 내부는 한여름에도 섭씨 0도 이하를 유지했다고 하는군요. 사진의 오른 쪽에 보이는 화강암 돌벽이 입구를 가로 막듯이 기역(ㄱ)자 형태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겨울철의 찬 공기가 돌벽에 부딪쳐서 와류 현상이 일어나게 하는 동시에 입구로 차가운 공기가 많이 유입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석빙고 옆에서 첨성대와 목화밭이 있는 평원을 내려다 본 모습입니다. 목화밭 건너 저 멀리로 가운데 쯤에 작지만 첨성대가 보입니다. 그리고 사진에 보이는 목화밭 오른쪽에는 제가 서있는 월성을 보호했던 월성 해자 유적지가 있습니다. 거기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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