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탐탁치 않은 표정을 한 채 양측의 수인사를 지켜 보던 사사천주 일행들은 뒤늦게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사사천주 육공오가 성수의가의 소신녀와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갑작스럽게 제압이라도 당한 듯 멍하니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주!"
"천주님"
"천주! 괜찮으시오"

이에 화들짝 놀란 수하들이 다급하게 사사천주를 불러 보았지만 육공오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바로 그 때였다. 맑고 고운 음성 하나가 장내로 날아 들어 사사천주 일행을 환기시켰다.

"설아! 그만 해"
"캬오! (응!)"

육공오가 설아에게 이지를 제압당한 것을 깨달은 설지의 음성이었다. 그제서야 육공오를 완전히 옭아맸던 붉은 눈동자를 거두어 들인 설아가 사도연의 머리 위에서 폴짝 뛰어 내리더니 어깨 위 자신의 자리로 돌아 갔다.

"껄껄, 그랬구려. 용이라..."
"천주! 괜찮으시오"
"천주"

"응? 왜들 그러시는가?"
"괜찮으십니까?"
"괜찮냐니? 갑자기그게 무슨?"

바로 그 때 수하들의 갑작스러운 반응을 의아하게 여기던 육공의 귓전으로 전음 하나가 날아 들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천주께서 잠시 동안 그 용이라는 놈에게 이지를 제압당하셨습니다'

'뭐라? 이지를 제압당해 내가?'
'그렇습니다. 내력은 괜찮은지 확인해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난데 없는 전음에 잠시 움찔 했던 육공오가 화급하게 내력을 확인해 보려는 순간이었다. 다시 한번 청아한 목소리가 설지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그런데 그 내용이 육공오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확인해 보실 것 없습니다. 내력은 이상 없을 것 입니다."

"헛! 내게 전해진 전음을 들으신게요?'
"예, 소녀에게 여러 재주가 있사온데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는 전음을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는 것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허! 그렇구려"

경악성에 이어 허탈감이 찾아 드는 육공오였다. 언제 제압당했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이지가 제압당했었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이긴 하지만 영수의 제왕이라는 용의 공능 때문이라고 치부하면 그나마 위안거리가 되기는 한다. 헌데 성수신녀가 지금 하는 말은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의 요체와는 괴리를 완전히 달리 하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날아가는 전음을 중간에 가로채서 엿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하며 불가능한 이야기인지 무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성수신녀는 실제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새삼 세간에 전해지는 성수의가와 관련된 각종 믿지 못할 불가사의한 일들이 머리 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육공오였다. 아울러 전음을 가로챌 정도의 능력이라면 그 화후의 깊이가 어느 정도나 될지 쉬이 짐작이 가지 않는 육공오이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설아가 장난이 심해서 잠시 결례를 범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를 바랍니다"
"껄껄, 아니외다. 무인이라면 늘 죽음 쪽으로 한발 내딛고 사는 족속들인데 미처 방비하지 못한 내 불찰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소이다"
"그리 말씀해주시니 더욱 송구합니다. 헌데 본가에는 어쩐 일로 귀한 걸음을 하셨는지요?"

"아! 껄껄껄, 신녀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당황스럽소이다. 그럼 용건을 말씀드리지요. 본천의 하부 무인들이 성수의가의 소신녀와 또 다른 가솔께 커다란 결레를 범했다는 배첩을 받았소이다. 해서 그 놈들을 대신하여 두 분께 사죄를 청하러 이리 달려왔소이다"

"그러셨군요"
"허면 소신녀는 여기 계시고... 봉변을 당했다는 또 다른 가솔께서는 어디 계신지? 불러 주시면 내 정중하게 사죄를 청하리다"

"본가의 의녀인 소홍이를 말씀하시나 보군요. 헌데 배첩은 소녀가 보낸게 아니라서 제가 그 일을 주관할 수는 없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성수의가의 성수신녀께서 소신녀와 의녀가 관련된 일을 처리할 수 없다니 말이오"
"저를 포함하여 현재 여기 나와 있는 본가의 식솔들 중에서 가장 윗어른은 제가 아니라 청청 언니입니다. 그리고 배첩을 보낸 이도 제가 아니라 청청 언니가 보낸 것이고 말 입니다"

"청청 언니라 하시면..."
"천주! 냉수무정 진소청 여협을 말씀하시는 것 같소이다"
"아! 허면 진여협은 어디 계시오?"

"청청 언니는... 초록이 아저씨!"
"예, 아가씨, 말씀하십시요"
"이 분들을 청청 언니께 좀 모셔다 드리세요. 부탁드려요"

"예, 아가씨, 그리 하겠습니다요"
"연이는 그만 가서 놀고"
"응! 언니, 헤헤"

"철숙부 우리도 그만 돌아가"
"그러자꾸나, 육가야 나중에 다시 보자"

"그,그러지"

육공오는 당황스러웠다. 쉽지 않겠다는 생각은 하고 왔지만 성수신녀의 반응으로 봐서는 일의 진척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함께 온 수하들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천주의 생각을 방해했다.

"천주! 이거 너무 하는거 아니오?"
"맞소이다. 우리를 이리도 무시하다니, 아무리 성수의가라 하나 너무 한거 아닙니까"
"그만들 하게, 원래 강호에서 약자들이란 늘 그런걸세, 더구나 우린 수하들의 사죄를 청하러 온 입장일세"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나 당사자를 불러 주면 그 뿐인 것을 이리도 박대하다니요"
"햐! 이 아저씨들 보게. 정식으로 배첩을 보낸 사람이 엄연히 따로 있는데 지금 피해자들을 불러서 대충 사과하고 입 싹 닦겠다는건가요?"
"이보시오! 초소저, 말씀이 심하시오"

"심하긴 개뿔, 지금 상황이 어떤지 전혀 감이 안 잡히시나본데 먼 길을 달려오신 노고를 생각해서 하나만 알려드리죠"  
"껄껄, 초소저의 고언이라면 이 육모 기꺼이 귀 기울이겠소이다"
"뭐 고언 까지는 아니고... 그러니까... 음... 혹시 사사천주 께서는 무형지독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초혜의 입에서 뜻밖에도 무형지독이라는 말이 나오자 흠칫하는 육공오였다. 무형지독이라는 말을 듣자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무형지독이라, 알다 뿐이겠소. 워낙에 지독한 맹독이라서 사천당가에서 조차 사용이 금지된 독 아니오?"
"맞아요!"
"헌데 갑자기 무형지독은 왜?"

초헤를 바라 보며 그렇게 묻는 육공오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내심으로 설마하면서도 아니기를 바라는 심정이 두 눈동자를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지금 천주 께서 짐작하시는게 맞아요. 귀천의 무사 하나가 본녀와 초록이 아저씨께 무형지독을 사용했어요"
"헛! 그,그런..."
"무형지독을 사용하게 되면 무림공적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잘 아실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사는 벌건 대낮에 본녀와 초록이 아저씨께 무형지독을 이용하여 공격했어요. 그 덕분에 초록이 아저씨 께서 조금 고생을 하셨죠"
"조금 고생이라? 허!"

무형지독에 담했음에도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은 성수의가니까 그렇다고 해도 조금 고생을 했다는 얘기는 터무니 없다 못해 광오하게 까지 느껴지는 육공오였다. 어쨌거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무형지독을 사용한 놈을 파문 조치한다 하더라도 그 책임을 쉬이 면하기는 어려운 사태였기 때문이다.

"하여튼 그 것 때문에 본가에서는 사천당가에도 기별을 넣었습니다. 알고 보니 무형지독을 사용한 귀천의 무사가 당가의 방계라고 하더군요. 해서 무형지독의 누출 경위도 따져보려 합니다. 그리 아시고 다들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청청 언니의 심기가 지금 많이 불편하거든요. 아시죠? 청청 언니의 별호가 냉수무정이라는걸. 뭐, 청청 언니의 별호가 왜 냉수무정인지 굳이 확인해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요"
"껄껄, 잘 알겠소이다. 다들 들으셨는가? 함부로 경거망동하지 마시게"
"예, 천주"

초혜가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 진소청의 심기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방금 전 까지 자신과 재미없는 농을 주고 받으며 웃음을 지을 정도로 편안했다.

"막내 아가씨, 말씀 끝나셨으면 큰 아가씨께 뫼셔 가겠습니다요'
"아! 호호, 죄송해요.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네요. 내가 이렇다니까. 전 이만 갈테니까 일 보세요"
"예. 막내 아가씨!"
"잠시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가볍게 포권하고 돌아서는 초혜를 바라 보는 육공오의 심경이 착잡했다. 소신녀에 대한 결례도 그렇지만 무형지독 까지 등장한 마당에야 쉽게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쯧! 이 참에 덩치 큰 땅이라도 좀 내놓아야 하려나..."

초록이 두자성을 따라 가는 육공오의 상념이 깊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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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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