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육공오의 상념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상념에 잠긴 채 걸음을 옮기던 육공오의 귓전으로 사도연의 장난끼 가득한 앳된 음성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날아 들었기 때문이다.

"초혜 언니! 어디가? 뭐 할거야? 응? 응?"
"아! 왜?"
"뭐할거냐고?"


"보다시피 지금 생각중이다."
"헤헤. 할일 없구나, 그럼 나랑 비무해"
"뭐? 뭐 하자고?"

"아이 참! 벌써 귀가 먹은거야, 비무 말이야, 비무!"
"맞지? 내가 잘못 들은거 아니지?"
"응?"

"그러니까 연이 네가 지금 나랑 비무 하자고 한게 맞냐고?"
"응! 맞아"
"나 참 기가 막혀서, 그러니까 너랑 내가?"

"응!"
"비무를 하자고"
"응! 응!"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도연을 바라 보는 초혜는 실로 기가 막혔다. 비무란 어느 정도는 상대가 되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헌데 사도연은 이제 겨우 무공에 입문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는 쉽게 말해서 막 걸음마를 뗀 어린 아이가 경공의 달인에게 신법으로 도전을 청한 경우와 같은 것이다.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왜 안돼?"
"아서라. 귀염둥아 그러다 다친다. 저리 비켜"

"싫어! 빨리 나랑 비무 해. 나는 설아랑 함께 할거야"
"응? 그러니까 너랑 설아랑 합공하겠다고?"
"응! 그러니까 빨리 해"

"호! 그래? 어쩌면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너 혹시라도 한대 맞았다고 울기 없기다? 약속할 수 있어?"
"응! 약속해"
"뭐 그렇다면 이 언니가 우리 귀염둥이의 청을 들어 주지"

"와! 헤헤"
"검으로 상대해줄까? 아니면 주먹?"
"검으로 해"
"그러지 뭐"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옆으로 쭉 뻗자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허공을 가로지는가 싶더니 이내 붉은 검 하나가 초혜의 왼손에 쥐어지고 있었다. 바로 화룡검이었다. 더불어 초혜가 허공섭물을 이용하여 화룡검을 손에 쥐는 그 순간이 육공오가 사도연의 음성을 들으면서 막 상념에서 빠져 나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저,저! 천주"
"허! 저런 내공이라니"
"방금 본게 허공섭물이 맞습니까?"
"맞는듯 하이"

한편 화룡검을 손에 쥐면서도 초혜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여지껏 단 한번도 자신에게 비무를 하자고 조르지 않았던 녀석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비무를 하자고 하는지 의아했던 것이다. 그리고 뭔가 꺼림칙하다는 생각이 화룡검을 쥐면서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사실 갑작스럽게 사도연이 초혜에게 비무를 하자고 조른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설지가 남몰래 전음으로 초혜와 비무를 하라고 시켰던 것이다. 아마도 초혜가 그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비무에 응했을리도 없었을 뿐더러 귀여운 너구리(?)가 되는 수모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설지와 사도연의 은밀한 음모(?) 속에서 비무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주변 정리가 신속히 이루어졌으며 두 사람을 중심으로 넓은 원 하나가 사람들로 인해 형성되었던 것이다.

"그거 뭐야?"
"응? 뭐?"
"손에 들고 있는 거 말야"

"이거? 검이잖아? 이 초혜 언니의 애검"
"그러니까 지금 그 시뻘건 검으로 나의 참마검과 맞서겠다는거야?"

희대의 명검인 화룡검이 사도연에 의해서 졸지에 그저 그런 시뻘건 검으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하지!"
"하! 초혜 언니, 바보 맞구나"
"뭐? 요 녀석이"

"아이 참! 그 시뻘건 검은 진검이지만 참마검은 목검이잖아"
"아! 참, 그렇지, 호호호,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도 목검으로 상대해주지, 초록이 아저씨 제 검 부탁해요"
"예, 막내 아가씨"

잠시 멋쩍은 표정으로 사도연을 보던 초혜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휘휘 둘러 보다가 육공오 일행과 함께 있는 초록이 두자성을 발견하고 검을 손에서 놓았다. 그러자 초혜의 손을 떠난 화룡검은 신기하게도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허공을 날아가 두자성의 손에 쥐어졌다. 참으로 절묘한 내력 운용이었다. 

"어디 보자, 저게 좋겠구나"

화룡검을 두자성에게 맡긴 초혜가 가까이 있는 나무를 향해 손을 뻗자 뚝하고 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길이는 반장 정도 되고 굵기는 어른의 팔뚝 굵기만한 나뭇가지 하나가 초혜의 손으로 빨려 들어 갔다. 허공섭물로 나뭇가지 하나를 손에 넣은 초혜는 대충 손을 휙휙 움직여 잔가지들을 제거하고 검의 형태로 만들기 시작했다. 초혜의 손바닥이 나뭇가지 위를 스쳐 지나갈 때 마다 마치 대패로 밀기라도 하듯이 깎여 나가더니 잠시 후 하나의 목검이 완성되었다.

"이 정도면 되겠네. 자 됐지?"  

자신이 만든 목검을 흡족한 미소로 바라보던 초혜가 사도연에게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도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이었다.

"아! 왜 또?"
"참마검 보다 훨씬 길잖아. 반칙이야"
"응? 그런가 알았어, 알았어, 자 이렇게 하면 되지?"
 
초혜의 가벼운 손짓 한번에 완성된 목검의 검첨(칼끝)에서 부터 반 정도가 잘려 나갔다.

"응! 헤헤"
"그럼 시작해. 사랑과 협의의 이름으로... 그거 먼저 할거지?"
"응! 헤헤, 사랑과 협의의 이름으로 언니를 용서하지 않겠다. 얍!"
"하! 나 참, 그래, 그래, 어디 맘대로 한번 해봐"

그렇게 말하는 초혜의 몽당 목검에서는 무려 반장 길이의 검강이 새하얀 빛을 토해내며 불쑥 솟아 나오고 있었다.

"어? 잠깐, 잠깐"
"또 뭐야?"
"그거"

사도연이 손으로 가리키는 것은 검강이었다.

"아! 호호호"
"지금 나랑 비무하면서 무식하게 검강을 뿌릴려고 했던거야?"
"호호호, 실수야, 실수, 미안! 자, 이렇게 하면 됐지"

몽당 목검의 뭉툭한 검첨에서 무척이나 위험한 기운을 뿌리던 새햐얀 검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칙하기 없기야!"
"알았다니까, 어서 덤비기나 해"
"설아! 공격"
"캬오!"

설아와 사도연의 눈부신(?) 합공이 그때 부터 시작되었다. 참마검을 휘두르는 사도연에 맞춰서 설아의 절묘한 연수합격 화공이 연신 초헤를 향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둘의 합공으로도 거의 내력을 사용하지 않는 초혜의 옷깃 조차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장난처럼 쓸쩍 슬쩍 발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둘의 공격을 모조리 피해버리는 초혜였다.

"허허, 연이가 제법이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어르신"
"켈켈켈, 당당한 검문이었던 세가의 여식이 아니랄까봐, 고놈 참"

"설지야, 헌데 무슨 일이냐? 난데없이 비무라니? 네가 시킨게냐?"
"응! 무엇 때문인지는 지켜보면 알게 될거야"
"켈켈켈, 네 녀석도 가만 보면 꼬리가 한 아홉 개쯤은 달린 것 같구나"


"호호, 그런가요? 연이가 거지 할아버지 말씀을 들으면 제 꼬리를 찾으려고 치마를 들추겠군요"
"응? 켈켈켈"
"크하하하"
"허허허"

초혜와 사도연의 비무는 어느덧 십여합을 넘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 소홍과 함께 빨래를 하러 갔던 진소청이 대나무 광주리 하나를 들고 숙영지로 돌아 오고 있었다.   
 
"큰 아가씨, 무슨 일이 있나 봐요"
"그러게, 누가 비무라도 하는건가?"

공터를 빙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한 소홍과 진소청이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 갑자기 공터 안에서 기묘한 소리와 동시에 무언가가 진소청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 왔다. 작고 황금빛인 그 물체는 다름아닌 설아였다. 초혜에게 알밤을 제대로 한방 맞은 설아가 진소청에게로 튕겨져 날아온 것이다.

"꺅!"
"응? 설아가?"

자신에게로 튕겨져 날아오는 설아를 가볍게 받아든 진소청의 표정이 괴상하게 변했다. 설아의 앞 이마가 불쑥 튀어 나와 있었던 것이다. 혹이었다.

"호호호, 녀석 아프겠구나, 괜찮니?"
"캬오"

진소청의 손바닥 위에 앉아서 머리를 몇차례 좌우로 흔들어 정신을 일깨우는 설아를 보면서 소홍이 입을 열었다.

"아! 설아였군요. 깜짝 놀랐어요"
"그랬니?" 
"헌데 큰 아가씨 설아가 왜?"

"아무래도 혜아 솜씨 같은데"
"막내 아가씨가요?"
"응! 그런 것 같아"

진소청과 소홍이 그렇게 이야기할 때 공터 한가운데에서 다시 한번 기묘한 소음이 둘의 귓전으로 찾아 들었다.

찰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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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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