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한발 먼저 움직여서 좌중의 시선을 빼앗아가는 바람에 두 사람의 만남은 자연스럽게 뒤로 말리고 말았다. 사사천주 일행과 진소청의 만남을 방해한 이는 표사 복장을 하고서 일고여덟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녀 소동 각 한명씩을 대동한 채 였다.  그 표사는 전갈단이라는 이름의 마적을 이끌다가 성수표국의 대표두가 된 고소평 바로 그였다.

"저! 큰 아가씨!"
"아! 고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예! 다름이 아니라 표물 의뢰가 들어 왔습니다."

"그거 잘 됐군요. 목적지가 어디예요?"
"그것이 무당과 소림입니다"
"무당과 소림이요?"

"그렇습니다."
"하면 잘 됐군요. 도사 할아버지도 계시고, 혜명 대사님도 계시니까 굳이 먼 표행을 나설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그렇긴 합니다만..."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렇게 말하는 진소청의 시선은 고소평의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소동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소평의 기색이 심상치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거니와 난생 처음 보는 두 아이가 함께 있는 것이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 때문입니다."
"예? 그 아이들 때문이라니요?"
"그것이... 의뢰가 들어온 표물이 바로 이 아이들 입니다"

"그 아이들이 표물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표국의 표행에는 물건을 전달하는 일 뿐만 아니라 서신을 전달하는 등의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차피 가는 방향이니까 목적지로 향하는 서신 한 장 정도는 문제가 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물건이 아닌 사람이 표물이 되기도 하는데 조금 더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거나 혹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을 때 주로 표국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소평의 기색으로 보아하니 단순한 문제가 아닌 듯 했다.

"아이들이 표물이라... 무슨 사정이 있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큰 아가씨"
"뭔데? 뭔데? 사정이라니?"

진소청이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들을 주시하고 있을 때 난데 없이 호들갑스러운 목소리 하나가 툭하고 끼어들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쪽에서는 정신나간 것 처럼 웃음을 터트리며 사라졌던 초혜가 어느 새 다시 나타나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고소평의 곁에 있는 두 아이들을 세세히 훑어보고 있었다.

"혜아? 너 수련한다더니?"
"그러려고 했는데 새털 같이 많은 날 천천히 하지 뭐, 그보다 고 아저씨, 이 아이들에게 무슨 사정이 있다는거예요"
"아! 예. 막내 아가씨, 그러니까 여기 두 아이 중에서 남자 아이는 소림과 인연이 있고 여자 아이는 무당과 인연이 있는 아이들 입니다"

"호! 그 여아가 우리 무당과 인연이 있다? 그래 그 인연이란게 뭔가?"
"예, 일성자 어르신, 이 여아는 올해 여덟살인데 할애비되는 이가 무당의 속가 제자였다고 합니다."
"속가 제자?"

"예. 어르신, 헌데 이 여아에게 최근 문제가 생겼답니다. 이 아이의 부모가 현령에 빚이 좀 있는 모양인데 그 빚을 갚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현령이 빚대신 아이를 데려간다고 했답니다. 해서 아이의 부모가 철전 열문으로 저희 표국에 의뢰하기를 아이를 평저현에서 무사히 빼내서 무당에 데려다 주기를 간곡히 원하고 있습니다"
"철전 열문? 고 아저씨 너무 비싼거 아냐?"
"예? 아,아니, 그, 그게 저..."
"됐어요. 그보다 도사 할아버지, 우리 무당이 원래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집단이었어요?"

평상시 일성 도장에게 허물없이 대하는 초혜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보는 사람들이 당혹해 할 정도로 그 어투에서 강한 질책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허나 초혜가 '우리 무당'임을 강조하면서 뱉은 말이기에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는 이가 없었다. 무당파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현혜라는 도명을 사용하는 초혜의 신분 역시 속가이긴 하나 엄연히 무당파 장문인과 같은 동배였기 때문이다.

"허허허! 내 너희들 볼 면목이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구나. 무량수불"
"혜아! 할아버지께 그 무슨 망발이니?"
"허허허, 설지야 아니다, 초혜 녀석의 말이 옳다"

"그래도.. 혜아 얼른 사과드려"
"치! 맨날 나만 갖고 그래! 도사 할아버지 죄송해요. 무당의 속가 제자 후손이 야반도주라도 하듯이 빠져나가려 한다는 말에 화가 나서 그만 헤헤, 화 푸세요"
"허허허, 아니다. 네 녀석 말이 틀린게 하나 없거늘..."

"아가씨! 혜아가 도사 할버지께 무례를 범하기 했어도 듣고 보니 조금 이상한데요?"
"응? 청청 언니, 뭐가?"
"이 아이의 할아버지가 무당의 속가제자라면 의당 무당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거고 도움이 필요할 때면 당연히 무당에서 발 벗고 나서야 하는거 아닌가요?"

그렇게 말하는 진소청의 목소리에서도 다분히 힐난조가 느껴지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현진 도사는 물론이고 청진 도사를 비롯한 무당십이검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서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청청 언니 까지 왜 그래?"
"허허허, 아니다. 소청이의 말이 다 맞다. 아이야, 네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낯선 사람들 틈에서 잔뜩 주눅이 들어 있던 여아는 갑작스러운 일성 도장의 물음에 당혹해 하며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허나 그것도 잠시 이내 작은 입을 열어 또박또박 대답했다.

"예, 소녀는 하연정이라고 하옵니다"
"하연정이라... 예쁜 이름이로구나. 허면 할아버지의 함자는 어떻게 되느냐?"
"할아버지의 성함은 하자 문자 천자를 쓰셨습니다"


"오! 그래 하문천, 하문천이라...  헌데 쓰셨다? 허면 지금은 생존해 계시지 않는단 말이냐?"
"예. 소녀가 여섯 살이 되던 이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허, 그랬구나, 본파의 속가셨다면 강건하셨을 텐데 천수를 다하셨나 보구나?"

"그게, 흑... 할아버지는 나쁜 아저씨들에게 공격당해서 비명횡사하셨습니다"
"뭐라? 비명횡사? 청진아!"
"예! 사숙조님"
"하문천! 아는 이름이더냐?"

"그렇습니다. 저 아이가 말한 이년 전 부터 본파와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제자는 알고 있습니다"
"허면 그 이전 까지는 왕래가 있었고?"
"확실하지는 않으나 간간히 서신 연락과 시주를 했던 것으로 제자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도사 놈들의 배를 기름지게 하라고 시주를 할 때는 생색이라도 내듯이 알은체를 해왔고 그나마 시주가 끊어지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 몰라라 했다는 그 말이더냐?"
"송구하옵니다"
"허허허, 무당아, 무당아!"

그 순간 일성 도장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역발산기개세가 터져 나왔다. 늘 온화한 모습이었던 일성 도장이 제대로 기세를 발휘하자 주변 공간 모두가 그 기운에 압도당하는 것만 같았다. 만일 그 기운에 살기라도 담았다면 그 여력을 온전히 감당할 이가 그리 많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력한 기운이었다.

"사부님! 고정하시지요"
"현진아!"
"예! 사부님"

"우리 무당이 왜 이렇게 된 것이더냐?"
"송구합니다"
"네 사형에게 기별을 넣거라"

"예? 예! 그리하겠습니다."
"산중에서 고고하게 체면만 차리고 있을 네 사형에게 일러 이리 달려오라 이르거라, 내 장문인에게 긴히 물어볼 말이 있느니라."
"예, 사부님"

"그리고 청진아!"
"예! 사숙조님"
"넌 저 아이의 조부가 어떻게 비명횡사했는지 소상히 알아보거라"

"알겠습니다."

바로 그 순간 무거워지기만 하던 좌중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누그러지는 일이 발생했다. 초혜가 나무 위를 바라 보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야! 참새, 너 할일 생겼다"
"삑!"
"어쭈!"

참으로 절묘한 시기에 터져나온 초혜다운 맹랑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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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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