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주신 배첩은 잘 받았소이다."
"그러셨군요. 먼길 달려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외다. 우리 아이들이 다른 이도 아닌 소신녀께 큰 무례를 범했다고 하셨으니 불원천리 달려오는게 맞지 않나 싶구려"

"정확히는 본가의 소신녀와 의녀에게 무례를 범했었지요"
"이런! 늙은이가 잠시 실언을 했소이다. 진소저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하시길"
"본녀가 너그러운 마음을 가졌다는걸 육천주 덕분에 새삼 알게 됩니다"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는 진소청의 말에 사사천주 육공오는 잠시 흠칫했다. 하지만 화해를 청하러 온 마당에 똑 같이 응대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다소 경직된 분위기를 누그러 뜨리기 위해서라도 육공오는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허허허, 너무 그러지 마시구려. 그나저나 초소저와의 비무는 잘 보았소이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사용하는 듯 싶소이다. 오늘 보니까 세간에 알려진 진소저의 소문이 턱없이 부족했었구려"

"과찬이세요"
"허허허, 아니외다, 과찬이라니 당치않소이다. 이 육모 오늘 천외천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소이다. 개안을 한 듯 싶구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허허허, 겸양도 과하면 모자람만 못하다고들 하지 않소이까."
"그렇던가요?"


"그렇다오. 허허허, 허면 길게 끌것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용건을 말씀드리리다. 사사천주의 이름으로 소신녀와 의녀께 정중히 사죄를 청하려 하외다. 청을 들어 주시겠소?"
"그리하세요. 허나 그 이전에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물어보실게 있다라.... 말씀해보시오"

"다름이 아니라 사사천의 무인들이 천주의 명을 받고 움직인 것인가 해서요"
"그 말씀은...."
"이곳 평저현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에 사사천의 무인들이 연관이 되어 있더군요. 양민 오십여명을 학살한 것을 포함해서요"

진소청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다스리려는 듯 뒷말을 삼키며 서늘한 눈을 한 채 이렇게 이야기하자 흠칫한 육공오는 자신과 함께 온 수하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진위를 가리려 했다. 허나 함께 달려온 수하들 역시 금시초문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지금 본천의 무사들이 평저현의 양민 오십여명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는 그런 이야기인 것이오?"
"그래요.  본녀의 일행이 평저현으로 들어올 때 죽음의 기운이 한쪽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해서 조사해 보니 양민들 오십여명이 알수 없는 이유로 피살된 채 한 구덩이에 암매장되어 있더군요."
"그 시신이 전부 본천 무인들의 짓이다? 어찌 그리 단정하시오?"

"시신들을 하나 하나 확인하면서 상흔을 살펴 보았더니 우리에게 억류되어 있는 귀천 소속 무인들의 무공 흔적이 드러났습니다"
"허! 어찌된 것이냐? 자네는 아는게 있더냐?"
"아니외다, 천주. 본천이 사파 집단이라며 멸시받고는 있으나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을 해할 만큼 흉악하지는 않은 걸 천주께서도 잘 알고 있지 않소?"

"허면 어찌 된 것이란 말이더냐? 진소저께서 우리에게 거짓을 말할 연유가 없지 않느냐?"
"그렇긴합니다만, 소인도 잘..."
"평저현 현령의 부탁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현령? 아니 그놈이 왜 자신이 다스리는 고을의 백성들을..."
"자세한건 차차 알게 되실겁니다."
"허허, 왠 미친 놈들이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을..."

"허면 천주의 명을 받은 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소이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명을 내가 내릴리가 만무하지 않소"
"다행이군요"

"뭐가 말이오?"
"천주의 명을 받고 귀천의 무인들이 양민들을 학살했다면 귀천은 우리에게 깨끗이 지워졌을테니 말이예요."
"뭣이!"

"뭐라고?"
"어허! 물러들 나거라"
"천주!"
"물러나라니까"

사사천이 지워졌을거라는 진소청의 단정적인 말에 발끈한 육공오의 일행들이 발작하려 했다. 하지만 육공오의 제지로 인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런 사사천 무인들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이가 하나 있었다. 왼손바닥으로 오른손 주먹을 쓰다듬으면서 사악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는 이는 당연히 초혜였다.

마치 먹잇감을 눈 앞에 두고 어'떻게 요리할까' 고민이라도 하는 맹수 처럼 사악한 미소를 띤 그 얼굴에서 고뇌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결론 부터 말하자면  초헤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속으로 '검을 뽑아라, 뽑아라'라고 되뇌이고 있었지만 육공오의 제지로 누구 하나 검을 뽑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진소저 말씀이 과하시오"
"과하다고요? 과한 것은 무인들이 양민을 그것도 오십여명이나 학살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본가는 그런 무도한 자들을 곱게 봐줄만큼 너그롭지 못합니다"
"허허허"

진소청의 단호한 말에 육공오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혈사교 사태로 드러난 성수의가의 무력이 사사천과 능히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친다는 것을... 해서 고민이 깊어지는 육공오였다.

"초록이 아저씨!"
"예! 큰 아가씨, 말씀하십시요"
"그놈들 좀 데려오세요.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요. 큰아가씨"

이렇게 대답한 초록이 두자성이 진법으로 가둬둔 사사천의 무인들을 데려오기 위해서 걸음을 막 뗄려는 순간 귀여운 목소리 하나가 그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초록이 아저씨! 제가, 제가 할게요"
"그렇게 하시곘습니까요?"
"응! 헤헤, 제가 해진할게요"

"그러면 그렇게 하십시요. 작은 아가씨"
"설지 언니, 내가 해도 되지?"
"그럼, 우리 연이가 하고 싶으면 해야지. 마음대로 하렴"
"헤헤, 신난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두자성의 손을 잡고 한쪽 옆으로 걸어간 사도연이 갑자기 특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양발을 모으고 폴짝 거리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사사천주 일행은 사도연의 그 같은 모습을 보고는 난데없이 저게 무슨 행동인가 싶어 눈살을 살짝 찌푸려야만 했다.

헌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사천주 일행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거짓말 같은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그냥 평평한 평지일 따름이었으며 잠시 전에 자신들이 걸어오면서 지나치기도 했던 곳의 공간이 사도연의 발구르기에 따라서 일렁이기 시작하는게 아닌가? 그러는가 싶더니 급기야 사도연의 발구르기가 끝나는 것과 동시에 나무로 대충 얼기설기 엮어 놓아서 속이 환히 들여다 보이는 작은 모옥 하나가 그들의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 됐다"
"하하하, 그런 방법으로도 해진이 되는군요. 소인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요"
"헤헤, 그럴게요"
"고맙습니다요, 작은 아가씨. 어디 보자. 이 놈들이 잘 있나?"

그렇게 말한 두자성이 모옥으로 다가가자 모옥 안에서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그런 두자성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다. 두자성과 초혜에게 제압당한 사사천의 무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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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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