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령을 건져 올리기 위해서 진땀을 흘리고 있던 장수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청아한 음성에 흠칫하여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소녀 하나가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자신들을 지켜 보고 있었다. 바로 초혜였다.

"네 년은 누구더냐?"
"뭐라...고요? 이 아저씨가 싸라기 밥만 처 드셨나 왜 욕을 하고 지랄이세요?"
"뭣이라? 지랄? 네 년이 감히 관인을 모독하는 것이더냐?"
"모독? 모독은 또 어떤 독이야? 털 처럼 생겼나? 아휴 징그러"

참으로 허무맹랑한 말을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하고도 능청스럽게 뱉어내는 초혜였다. 너무도 당연하게 초혜의 그런 뻔뻔한 모습을 본 현령은 귀에서 불이라도 토해낼 것 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물론 그래봐야 수렁에서 헤엄치기(?)였지만 말이다.

"뭣들 하는게냐? 저 년을 당장... 어푸... 퉤퉤..."

하지만 현령은 제 성깔을 마음껏 자랑할 수 없었다. 현령 뿐만 아니라 입 속으로 흙이 들어가는 순간에는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어? 거기는 아까 지나가던 똥개가 오줌누고 간 자린데? 맛있나 봐요?"
"뭐, 뭐라? 퉤퉤, 자네 뭣하는게야? 얼른 꺼내주지 않고"
"예, 대인 잠시만..."
"쯧쯧, 비켜봐요"

허우적대는 두 사람이 안쓰러웠던지 보다 못한 초혜가 마침내 나섰다. 하지만 멀찌감치서 지켜 보고 있는 설지와 일행들의 예상대로 절대 곱게 꺼내주지 않는 초혜였다. 갑주의 목 부분을 잡고 밭에서 무우를 뽑아 올리듯이 현령의 신형을 쑥 뽑아 올려서는 거의 패대기에 가깝게 내려 놓았던 것이다.

"이, 이 년"
"그 참, 꺼내 줘도 난리네? 어떻게? 도로 넣어 드릴까?";
"네 년이 감히, 여봐라! 뭣들 하는게냐? 어서 이 년을 포박하지 않고?"

현령이 이렇게 까지 광분해서 외치면 당연히 동원된 관군들의 입에서는 명! 이라던가 충! 이라는 커다란 함성이 들려와야만 했다. 그런데 없었다. 아니 오히려 너무도 고요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마화이송단의 숙영지를 포위한 채 압박해 들어 오던 관군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아가며 뜨거운 불을 토해내는 작은 짐승을 바라 보느라 다들 넋이 나가 있었던 것이다. 설아가 울고 있는 사도연을 달래주기 위해서 둥글게 포위한 관병들의 머리 위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면서 발생한 일이었다.

"대,대인? 저,저게?"   
"왜 그러는게야? 응? 저..."
"갑자기 왜들 그러실까? 뭐 구경거리라도 있어요?"

그렇게 말한 초혜가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거기에는 사람들의 머리가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서 볼록한 배를 내밀고 뽀르르 달려 가는 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불을 토하는 것도 잊지 않은채.

"저 자식은 갑자기 왜 또 저러는거야? 하여튼 특이하다니까. 이봐요, 아! 이봐요"

초혜가 거의 고함에 가깝게 빽 소리친 후에야 자신들의 실책을 깨달은 현령과 휘하 장수들이 무섭게 초혜를 노려 보았다.

"흐 무서워라, 갑자기 간이 마구 쪼그라드는 것 같네"
"네 년은 누구더냐? 네 년도 표국 소속이더냐?"
"아마 그럴걸요?"


"네 이년, 그럴걸요라니, 감히 나를 능멸하는것이더냐?"
"능멸? 세멸, 자멸, 소멸, 중멸, 대멸은 들어 봤는데 능멸은 뭐야? 설지 언니, 멸치 중에 능멸도 있어? 크기는 얼마나 돼?"
"글쎄? 능만하다는 얘기 같으니까 집채만한가?"

"에이! 그 정도면 고래지 그게 무슨 멸치야?"
"호호호, 생각해 보니 그렇네"
"이,이년들이, 여봐라 뭣들하는게야, 속히 이 무도한 무리들을 포박하지 않고?"

명!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커다란 함성이 뒤 따랐다. 하지만 함성에 뒤 따르는 행동은 없었다. 전진하려던 관군들의 앞을 갑자기 생겨난 보이지 않는 높은 장벽이 가로 막았기 때문이다.

"이,이게 뭔가?"
"이게 뭐야?"
"헉!"

"어이쿠"
"윽"
"미,밀지말게"

마화이송단을 포위한 관군들의 입에서 당혹성과 비명성이 한데 섞여 나오며 소란스러워졌다. 설지가 자연지기를 이용하여 마화이송단 전체를 둘러싸는 장막을 만든 탓이었다.

"허허, 신묘한 광경이로다"
"켈켈켈, 자넨 처음 보나 보군 그래"
"그렇다네, 볼수록 저 녀석이 탐나는군"

"왜? 제자는 안될테고 며느리라도 삼고 싶은겐가?"    
"이르다 뿐인가? 그렇게만 된다면... 허허허"
"꿈 깨시게, 저 놈을 감당할 사내가 세상에 어디 있겠나?"
"허허허, 그렇겠지?"

당태령과 호걸개가 투명한 장막을 보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현령과 장수들은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강호의 무부들이야 관군의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버릴 수 있다고 자신했던 그들이기에 난생 처음 보는 기사에 말문이 막히고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저게 뭔가?" 
"그게... 아마 사술 같습니다. 강호의 무부들 중에는 간혹 사술에 능통한 자들이 있다고 하던데 여기 표행에도 그런 자가 포함되어 있는 모양입니다"
"흠, 그런가? 하긴"

휘하 장수의 설명에 공감한 현령은 얼굴 표정에서 애써 당혹스러움을 지워버리고 근엄함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무언가에 가로막혀 더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관군들, 그에 반해 너무도 태평스러운 표정의 무부들, 거기다 한가로움 마저 느껴지는 숙영지의 풍경들, 이 모든게 너무도 탐탁치 않은 현령이었다.

"흠흠, 본인은 평저현의 현령이다. 여기 표행의 책임자가 누구더냐?"
"소녀가 책임자입니다만"

사도연이 울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초혜의 하는 양을 그저 바라 보기만 하던 설지가 드디어 나섰다. 설아의 눈물나는 노력(?) 덕분에 마침내 울음을 그친 사도연이 철무륵의 품에 안겨서 잠이든 것을 확인한 후였다.

"네 년이 표행의 책임자라는 말이렸다?"
"그렇습니다만"
"네 이년 당장 사술을 거두지 못할까? 경을 치고 싶은게냐?"

"제가 왜 그래야하는지요? 그보다 용건이 무엇이길래 이리 무례하게 저를 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모른다? 네 년의 표행에 소속된 무인이 저자를 지날 때 포쾌들을 공격하지 않았더냐?"
"포쾌? 아! 그 포쾌 복장을 한 도적들 말씀이시군요, 그들은 저자에서 무도하게도 저희에게 돈을 요구한 것 뿐만 아니라 본녀를 비롯한 여인들을 희롱하려 했습니다"

"어허! 그래도 이 년이, 포쾌들을 두고 도적이라니, 정녕 죽고 싶은게냐?"
"허면 도적이 아니면 무엇이온지요? 나라의 녹을 먹는 관인들이 먼 표행길에 나선 이들의 안전을 책임져 주진 못할 망정 돈을 요구하질 않나, 아녀자를 희롱하려 하지 않나, 이래도 도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네 이년 도저히 안되겠구나. 뭐하는가, 이년을 포박하게"

명!

복명한 장수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아니 뽑아 들려 했다. 하지만 마치 아교라도 붙여 놓은 듯이 검은 검집에서 꼼작도 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느 틈에 다가온 초혜가 검지로 장수의 검두를 지긋이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익!"
"아저씨, 그 검 뽑으면 아저씬 죽어요, 그래도 뽑으실래요?"

검두에 올려진 초혜의 손가락을 본 장수의 표정이 확 변했다. 갸녀린 아녀자의 손가락 하나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체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기가찰 노릇이었지만 그보다는 초혜의 얼굴에 흐르는 너무도 싸늘한 기운에 흠칫했기 때문이었다. 초혜의 말을 듣는 순간 검을 뽑으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네 이년 감히 관인을 핍박하는것이더냐?"

장수와 달리 초혜에게서 그 어떤 기운도 느끼지 못한 현령이 다시 한번 호통을 내질렀다. 그런데 다음 순간 현령은 억눌린 비명과 함께 뒤로 나딩굴고 말았다. 기껏 잠든 사도연이 현령의 고함 소리에 놀라서 다시 깰 것을 우려한 설아가 작은 돌멩이 하나를 현령의 이마에 명중시킨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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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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