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이봐, 현령 나으리 께서 갑자기 왜 저러시는겐가? 천세라니?"
"글쎄? 낸들 알겠나. 저 분 소저가 왕족이신가?"
"이보게 방금 무슨 옥패라고 하지 않았나?"

서슬 퍼렇게 기세를 올리던 현령이 한 순간에 고양이 앞의 쥐 처럼 부복하며 부들거리는 모습을 본 장벽 너머의 관병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맞네, 얼핏 듣기로 봉황옥패라는거 같았네만"
"봉황옥패?"
"그게 뭔가? 누구 아는 사람 없는가?"

"내가 들어본거 같네"
"오! 그래, 대관절 그 옥패가 뭐길래 현령 께서 왕족을 대하듯 저리 납작 엎드리시는겐가?"
"자네들도 들어 보았을거야. 성수신녀라고 말일세"

"그야, 당연한거 아닌가. 성수의가의 성수신녀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나, 헌데 갑자기 그 분은 왜?"
"그 사람 참! 답답하기는, 이 사람아 성수신녀께서 공주마마의 옥패를 물려 받았다는 소문을 못들었다는게야?"
"옳거니! 맞네, 성수신녀 께서 옥패를 물려 받았다고 하셨지, 허면 그 옥패가?"

"맞네, 그 옥패가 바로 봉황옥패일세"
"이게 무슨 소리야? 허면 저 분 소저가 성수신녀라는 이야기야?"
"왜 아니겠나. 그런 것 같으이"

"강호의 무뢰배들을 추포한다더니 난데없이 성수의가라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러게 말일세, 이거 이러다 우리 모두 경을 치는거 아닌가 모르겠네"
"그렇다면 현령 께서 내막을 자세히 살펴 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우리 관병을 동원했다는거 아냐?"

"그러게나 말일세"
"이게 무슨 일인지, 원"
"쉿 조용히들 해보게, 신녀 께서 무어라고 하시는 것 같네"

"그러니까 현령 께서 본가의 안전한 의행을 위해서 따라 나선 무인들을 추포하겠다고 이리 오셨다는거에요?"
"아,아니옵니다. 마마,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듯 하옵니다. 자네들은 뭣하는겐가? 속히 예를 갖추지 않고, 봉황옥패의 패주시네"
"예, 대인, 천세, 천세, 천천세"

휘하 장수들이 설지를 바라보며 현령의 옆에서 부복하자 지켜 보던 관병들도 일제히 부복하며 산이 찌렁찌렁 울리도록 예를 갖췄다.

"천세, 천세, 천천세!"

한편 장수들과 관병들이 부복하는 모습을 보는 현령의 얼굴에서는 낭패한 표정이 역력했다. 난데없이 성수의가의 의행이라니? 관병을 동원하면서도 못내 찜찜하게 생각했던 것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오해라? 무턱대고 쳐들어와서 이 년, 저 년 하던 분의 입에서 나올만한 말은 아니로군요"
"송구하옵니다. 미처 마마를 알아뵙지 못하고 소신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죽을 죄를 졌으면 죽으면 되겠네. 아! 어차피 곧 죽을건가?"

설지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현령을 보면서 초혜가 한마디 툭 내뱉고 있었다. 초혜의 말을 들은 현령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소저 께서는 말 조심 하시지요"
"아! 네, 네, 네, 그리합지요"

현령의 항의에 약간은 비꼬는 듯한 태도로 응답한 초혜가 입을 꾹 닫더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더이상 상대하기 싫다는 뜻이었다. 그런 초혜를 바라 보는 현령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분기를 억누르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봉황옥패의 패주야 신분상 자신이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일행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령이 그러거나 말거나 콧바람을 한차례 '흥'하고 날려 보내는 초혜였다. 다시 한번 눈가를 꿈틀거린 현령이 가까스로 분기를 다스리며 입을 열었다.

"마마! 동생되시는 분의 입이 다소 거친 것 같사옵니다."
"현령 께서 이해하세요. 어제 아침을 잘못 먹어서 속이 좋지 않답니다"

관인을 함부로 대하는 초혜가 못마땅하다고 항의하는 현령을 향해 설지가 뜬금없이 속이 좋지 않아서 그렇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초헤가 다시 끼어 들었다.

"어? 나 멀쩡한데"
 
그 모습을 본 초록이 두자성이 큭하고 억눌린 웃음을 터트렸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든 현령은 설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마! 헌데 어찌 신분을 감추셨는지 궁금하옵니다"
"아! 그거요, 일부러 신분을 감추려고 했던 것은 아니예요. 단지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지"

설지의 말을 들은 현령은 일부러 신분을 감추는 것과 드러내지 않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지만 둘의 차이를 쉬이 알수는 없었다.

"그렇사옵니까? 소신이 잠시 착각했나 보옵니다"
"그럴거예요. 그보다, 초록이 아저씨!"
'예, 아가씨"

자신과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이상한 놈을 부르는 설지의 행동에 다시 한번 현령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물론 부복한 상태로 고개 마저 숙이고 있으니 설지가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볼 수는 없으리라고 현령은 생각했다. 하지만 설지는 지금 현령의 얼굴을 바로 눈 앞에서 보듯이 표정을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아 참! 이제 그만들 일어나세요. 그렇게 엎드린 채 이야기를 나누려니까 제가 불편해요"
"예. 마마, 분부대로 받잡겠나이다. 모두들 일어서시게"

"예, 대인"

부복했던 장수들과 관병들이 일어서는 바람에 장내는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초록이 아저씨, 그것 좀 가져 오세요. 부탁드려요."
"예? 무엇을? 아! 곧 가져오겠습니다요"

그것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의아했던 초록이 두자성은 현령과 관병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깨달았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론가 사라졌던 초록이 두자성이 손에 보따리 하나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아가씨, 여기 가져왔습니다요."
"고마워요"
'아닙니다요. 언제든지 분부만 내리십시요"

초록이 두자성에게서 보따리를 건네 받은 설지는 손에 든 보따리를 현령에게 건넸다.

"받으세요"
"예. 마마, 헌데 이게 무엇이옵니까?"
"풀어보세요"
"예. 마마"

현령은 손에 든 별로 무겁지 않은 보따리를 곁의 한 장수에게 들게 하고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풀어 헤쳐진 보따리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람들이 몸에 지니는 향낭이나 반지와 같은 장신구들이었다.

"마마, 이건 장신구들이 아니옵니까? 낡은 것도 있는 것으로 보아 새것이 아니라 사용하던 것들 같사옵니다."
"맞아요. 사용하던, 아니 사용했던 장신구들이예요"
"헌데 어찌 소신에게?"

"그 장신구들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 보시겠어요?"
"송구하옵니다. 처음 보는 것들 같사옵니다"
"그래요? 이상하네?"

"무엇이 말이옵니까?"
"그 장신구들 말이예요. 전부 평저현의 백성들이 사용했던 것들이예요"
"아! 그렇사옵니까? 송구하옵게도 소신이 평소에 백성들의 장신구를 눈여겨 보지 않아서 미처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현령은 장신구들을 알아보겠냐며 묻는 설지를 보면서 의혹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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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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