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설지가 모용군성과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각, 현진 도사는 마굿간 앞에서 점소이 하나가 지켜보는 가운데 새로 식구가 된 녀석들의 고삐를 묶고 있었다. 헌데 고삐를 묶던 현진 도사가 갑자기 난색을 표했다.

"소도사님! 왜 그러십니까?"
"무량수불! 다름이 아니라 이 녀석 때문에 그럽니다"

점소이의 질문에 현진 도사가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는 곳에는 령령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초록이 두자성이 챙기려는 것을 한사코 자신이 챙기겠다며 먼저 들여보냈었는데 생각해보니 눈 앞에서 주저앉아 있는 령령이 문제였다. 설리총인 풍혼과 한혈마인 풍영이야 그저 고삐를 단단히 묶어두기만 하면 되지만 잘 걷지도 못하는 령령은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거 어쩐다?"

무당파의 소도사가 다 죽어 가는 당나귀를 보며 난색을 표시하자 점소이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도문인 무당파의 도사가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할 것이나 자신들의 눈 앞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당나귀는 이미 가망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도사님, 제가 보기에는 그 당나귀가 다 죽어 가는 것 같은데 아닙니까?"
"무량수불! 그렇게 보이십니까?"
"예! 허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 녀석은 지금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소생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소인에게 눈이 있어도 제대로 볼줄을 몰라서 결례를 했습니다. 소도사님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십시요"
"하하! 아닙니다. 누가 보더라도 그렇게 생각할 터인데 제게 사과 까지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이놈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무량수불! 헌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예? 방법이시라면..."

"이 녀석을 그냥 이렇게 두기에는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러시군요. 어디보자.... 방법이... 아! 허면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입니까?"

"여기 두 녀석은 소인이 잘 보살펴 드릴테니 그 당나귀는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데리고 들어간다라...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기운이 팔팔한 녀석 같으면 손님들에게 방해가 될 터이니 그리 하라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대로 서 있는 것 조차 힘들어 하는 녀석이라면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마 다른 손님들도 이해를 할 겁니다. 헌데 그 당나귀의 주인이 누구길래 소도사님께서 그리 고심하십니까?"

"아! 이 녀석은 연이... 그러니까 소신녀가 조금 전에 식구로 받아들인 녀석입니다."
"어이쿠! 소신녀님의 당나귀인지도 모르고 타박을 하려 했으니 이런 불경이... 소도사님 송구합니다"
"아닙니다. 누가 보더라도 다 죽어가는 것으로 보이는 녀석이니 괘념치 마십시요. 허면 저는 이 녀석과 들어갈 터이니 저기 두 녀석 좀 부탁합니다"

"예! 소도사님! 염려마시고 들어가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무량수불"

도호와 함께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대신 한 현진 도사가 령령을 안아 올렸다. 그러자 바닥에 주저 앉아서 조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령령이 가벼운 콧소리를 내며 현진 도사의 품으로 머리를 묻었다.

"그러셨군요. 허나 본가의 기밀을 함부로 누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신녀 께서 양해해 주셔야겠습니다"
"그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모용세가의 기밀 전부를 알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작은 단초 하나만 알려주실 수 없나 하는 것 입니다. 오징어와 같은 해산물을 죽이지 않고 장거리로 이송하는 방법이 어쩌면 의술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이렇게 부탁드리는 것 입니다. 부디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혜량해주세요"
"허허! 이것 참! 성수의가의 신녀 께서 이렇게 부탁하시니 단칼에 거절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부탁드려요"

포권과 함께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부탁하는 설지의 모습을 본 모용군성의 눈동자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허허! 이거 참 난제로군. 어쩐다? 본가의 기밀을 무턱대고 발설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만! 작은 단초 하나라고 했으니.... 그렇지 그렇게 하면 허허허, 본가에서 성수의가에 빚을 하나 지어두는 셈이니 훗날 도움이 될 터'

내심으로 여기 까지 생각한 모용군성이 마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신녀께서 이리 부탁하시니 말씀하신대로 작은 단초 하나 정도는 내어드리지요"

모용군성이 이렇게 말하자 설지의 표정이 환하게 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용세가의 무인들 측에서는 작은 반발이 일어났다.

"대주! 그게 무슨 말씀이오?"
"대주! 그건 안될 말 이외다"

모용세가 무인들이 반발하자 한 손을 들어 올려 제지한 모용군성이 엄중한 눈 빛으로 세가의 무인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모용군성의 눈 빛에 녹아 있는 단호함을 읽은 세가의 무인들은 어쩔 수 없이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죄송하외다. 보셨듯이 이는 본가의 기밀 중에 기밀이라 할 수 있소이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보이는 설지였다.

"사실 제 개인적인 마음으로는 그 방법을 온전히 알려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이 몹시도 안타깝습니다."
"그 마음 성수의가의 이름으로 고맙게 받겠습니다"
 
설지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모용군성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듣고 있던 모용세가 무인들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설지가 성수의가의 이름으로 그 마음을 받는다고 하자 그제서야 굳었던 표정들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허허,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허면 말씀드리지요. 침입니다"

"침? 침이라 하셨습니까?"
"허허, 그렇습니다. 분명 침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더이상은 말씀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아니예요. 침이라... 아!"

침이라는 말을 듣고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설지가 탄성을 토해냈다. 그것으로 미루어 짧은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했다.

"고맙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후일 모용세가에서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본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허허허! 그리 말씀해주시니 저야말로 고맙소이다. 오늘 모용세가에서 큰 이득을 본 것 같소이다"
"호호호, 그런가요. 제가 감사의 뜻으로 좋은 술을 대접할 터이니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했습니다. 사양치 않겠습니다."

설지와 모용군성의 대화가 여기 까지 진행될 즈음 이층 계단 입구에 일인일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현진 도사와 그 품에 안긴 령령이었다.

"연아! 이 녀석 어떻게 할까?"
"응? 어? 령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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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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