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stic Penny - Sour Suite

플라스틱 페니 (Plastic Penny) : 1967년 영국에서 결성

믹 그레이엄 (Mick Graham, 기타) : 1948년 1월 22일 영국 선덜랜드(Sunderland) 출생
토니 머레이 (Tony Murray, 베이스) : 1943년 4월 26일 아일랜드 더블린(Dublin) 출생
폴 레이먼드 (Paul Raymond, 키보드) : 1945년 11월 16일 영국 세인트올번스(St Albans) 출생
나이젤 올슨 (Nigel Olsson, 드럼) : 1949년 2월 10일 영국 월러시(Wallasey) 출생

갈래 : 사이키델릭 팝(Psychedelic Pop),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 팝 록(Pop/Rock)
발자취 : 1967년 결성 ~ 1968년 해산
공식 웹 사이트 : 없음
공식 에스앤에스(SNS) : 없음
노래 감상하기 : https://youtu.be/d6U8DXWRf0w

한 눈에 보더라도 그 정도가 고만고만한 사람 끼리 서로 다투는 것을 가리켜 우리 속담에서는 <도토리 키재기>라고 한다. 서로 비슷비슷하여 견주어 볼 필요가 없음에도 굳이 시비여하를 따지는 것을 두고 사람들이 귀엽고 작은 도토리에 빗대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작고 반질반질한 도토리 수십 개를 한꺼번에 수북히 모아 놓은 상태에서 도토리 하나하나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장독대에 다소곳이 자리한 항아리의 뚜껑 처럼 생긴 모자를 머리에 쓰고 있는 도토리들이 대부분 비슷하게 생겨서 서로간의 구분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물론 그 크기에서 정도의 차이가 약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처럼 구분이 쉽지 않은 도토리들이 서로 '니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하며 다퉈봐야 결국은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수밖에 없다. '오십보 도망친 자가 백보 도망친 자를 비웃는다'라는 뜻의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도토리 키재기는 왜 언급하는걸까? 그 이유는 1967년에 영국에서 결성된 사이키델릭 팝 밴드 <플라스틱 페니>가 당시 서로 키재기를 하던 수많은 도토리들 중의 하나로 읽혀졌기 때문이다. 1960년대 말에 활동했었던 고만고만한 비(B)급 밴드들 중의 하나가 바로 플라스틱 페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음반을 들으면서 가졌던 것이다. 

플라스틱 페니는 1967년 여름에 결성된 밴드인 <유니버셜스(Universals)>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브라이언 키스(Brian Keith, 보컬)>, <믹 그레이엄(본명: Michael Grabham)>, <토니 머레이(본명: Anthony Murray)>, <폴 레이먼드(본명: Paul Martin Raymond)>, <나이젤 올슨>의 5인조로 출범한 밴드는 1967년에 싱글 <Green Veined Orchid/While The Cats Away>와 <I Can't Find You/Hey You>를 각각 발표했었지만 두 장의 싱글 모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데는 실패했다.

이에 제작자이자 페이지 원(Page One) 음반사의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밴드 이름을 바꿀 것을 권유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플라스틱 페니>로 거듭난 밴드는 래리 페이지의 지휘 아래에 싱글 <Everything I Am/No Pleasure Without Pain My Love>를 녹음하고 1967년 12월에 발표하면서 데뷔하게 된다. 그런데 이름을 바꾼 것이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미국 록 밴드 <박스 탑스(The Box Tops)>가 1967년 10월에 발표했었던 싱글을 커버한 <Everything I Am>으로 플라스틱 페니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영국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최종적으로 6위 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한편 데뷔 싱글의 성공 이후 <Nobody Knows It>등의 싱글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이어갔던 플라스틱 페니는 1968년 중반에 데뷔 음반 <Two Sides Of A Penny>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그 즈음 밴드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보컬을 담당했던 브라이언 키스가 밴드를 탈퇴하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아마도 플라스틱 페니는 이때 부터 서서히 자존감을 잃어갔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더구나 소속 음반사에서는 4인조로 계속 활동할 것을 강요했었기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하여튼 4인조가 된 플라스틱 페니의 구성원들은 1969년에 발표가 이루어지게 되는 싱글 <She Does>의 녹음을 비롯해서 역시 1969년에 발표가 이루어지는 두 번째 음반 <Currency>의 녹음을 완성한 후 각자의 길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두 번째 음반이 공개된 1969년에 플라스틱 페니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밴드가 되고 말았다. 그 때문일까? 음반이 거둔 상업적인 성과도 미미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플라스틱 페니의 음반들이 새삼 주목받는 일이 발생했다. 그 이유는 밴드 해산 후 <치킨 쇅(Chicken Shack)>으로 옮겨간 폴 레이먼드, <프로콜 하럼(Procol Harum)>에 합류한 믹 그레이엄, 그리고 <트로그스(The Troggs)>에 합류한 나이젤 올슨과 <엘튼 존(Elton John)>과 활동하게 되는 토니 머레이의 활약 덕분이었다.

하여튼 두 장의 음반을 남기고 사라져간 플라스틱 페니의 두 번째 음반은 데뷔 음반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도나 서머(Donna Summer)>와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베가스 오페라(Beggars Opera)>를 비롯해서 여러 가수들이 커버했던 곡인 <MacArthur Park>등이 수록되어 있는 두 번째 음반이 진보적인 성향의 사이키델릭 음악을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반 이후 부터 나이젤 올슨이 환상적인 드럼 솔로 연주를 펼치는 <Sour Suite>는 8분이 조금 넘는 연주 시간 동안 플라스틱 페니가 사이키델릭 록의 진수를 들려주고 있다. 참고로 음반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MacArthur Park>는 <지미 웹(Jimmy Webb)>이 작곡하고 아일랜드 가수 <리처드 해리스(Richard Harris)>가 1968년 4월에 싱글로 발표했었던 곡으로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2위 까지, 영국 싱글 차트에서는 4위 까지 진출했었던 히트 곡이었다.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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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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