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 높이 떠오른 태양이 여름날 특유의 뜨거운 열기를 가장 강하게 들이붓는 미시경이었다. 덥다 더워를 연발하며 대충(?) 점심을 해결한 초혜는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서 서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루양 마을 인근에서 숙영을 한지 벌써 나흘째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아직 까지 마을 주민들의 중독 증상에 대한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하여 초혜는 혹시라도 자신이 빠트린 것이 있나 싶어서 이마에 내천 자 까지 그려가며 성수의가 비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각종 독에 대한 서술서에 파묻히다시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시각 인근 강가로 놀러나간 사도연에 의해서 그 실마리가 풀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초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눈 앞의 서책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초혜의 심정은 바짝바짝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루양 주민들에 대한 염려와 중독의 근원을 찾아서 완벽하게 해결하려는 심모원려가 겹쳐진 까닭이다. 헌데 그때까지 나른하게만 흘러가던 숙영지의 시간이 갑작스럽게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조용했던 숙영지의 공기 흐름을 뒤바꾸고 있는 것은 급박하게 울려 퍼지는 발걸음 소리였다.

"선자님! 선자님! 우,우리 아이가..."

발걸음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올린 초혜의 눈에 숙영지를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인영 하나가 들어 왔다. 급박한 발걸음 소리의 주인공은 허름한 복장을 한 젊은 아낙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품에는 갓난 아기가 안겨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는 갈곳을 차지 못한 듯 그 자리에 멈춰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초혜를 찾기 시작했다.

"선자님! 선자님"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젊은 아낙은 초혜를 쉬이 찾지 못해 거의 울부짓다시피 하고 있었다. 한편 달려오는 젊은 아낙을 발견하고 부터 곧장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를 주목하고 있던 초혜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행운유수와도 같은 신법을 펼쳐서 순신각에 젊은 아낙의 앞에 당도했다. 그리고 가타부타 말도 없이 다짜고짜 손을 내밀어 젊은 아낙의 품에 안긴 아기를 거의 뺏다시피 하며 자신의 품에 안아들었다.

"이런!'"

아기를 안아들고 살펴본 초혜의 표정이 다급하게 변했다. 이제 겨우 생후 서너달 쯤 되어 보이는 갓난 아기의 호흡이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이에 방금 전 까지 자신이 앉아 있던 나무 그늘 아래로 급하게 옮겨간 초혜의 손길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자신의 장포를 벗어서 바닥에 깔고 아기를 그 위에 조심스럽게 눞혔다. 그리고 옷을 포함해서 아기의 몸에 걸쳐져 있던 모든 것을 벗겨낸 후 알몸 상태로 만들었다.

한편 초혜에게 아기를 거의 뺏기다시피 했던 젊은 아낙은 처음에는 놀랐으나 자신의 아기를 뺏아간(?) 장본인이 초혜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한 후에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토해내며 초혜를 따라서 뛰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가 나무 그늘 아래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초혜의 빠른 손놀림에 의해서 아기가 발가벗겨진 후였다.

'설지 언니!'

아기를 발가벗긴 초혜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설지에게 천리전성으로 도움을 청한 후 다가온 젊은 아낙을 향해 염려하지 말라는 듯 따스한 미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젊은 아낙은 그런 초혜의 미소에도 마음이 편안해지지가 않았다. 한 눈에 봐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 뻔한 자신의 아기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야 부언할 필요도 없이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무슨 일이니?"
"중독이야. 도와줘"
"응"

설지는 초혜가 좀체로 펼치지 않는 천리전성 까지 사용해 가며 자신을 부른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이향환위를 펼치듯 달려왔었던 설지가 아기를 내려다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 순간 초혜가 품 속에서 침통을 꺼내더니 그대로 허공으로 던졌다. 그러자 침통에서 백여개에 가까운 금침들이 튀어나와 마치 비산하듯이 허공 중에 좌악 펼쳐졌다.

한가닥 호흡만 남아 있다면 설사 저승사자라 하더라도 그 발걸음을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성수의가 비전의 생사귀혼 금침 대법이 초혜에 의해서 펼쳐지려는 순간이었다. 이에 설지는 손을 부드럽게 저어서 아기의 주위로 자연의 기운을 불러 일으켰다. 엄마의 품 속 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기운들만 일으켜서 발가벗겨져 있는 아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킨 것이다. 혹시라도 아기가 뒤척이다 보면 생사귀혼 금침 대법이 실패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혜아! 지금이야"
"응!"

대답과 함께 초혜가 섬섬옥수를 떨쳐냈다. 그러자 허공 중에 비산해 있던 백여개나 되는 금침이 일제히 아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본 젊은 아낙이 기함을 하며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막아 비명이 바깥으로 흘러나오지 않게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자신의 비명이 치료에 방해가 될까 저어한 까닭이었다.

한편 백여개나 되는 금침은 곧장 아기를 향해 쏘아져 가듯이 떨어져 내린 후 아기의 작은 몸 전신에 틀어 박혔다. 물론 아기에게 충격이 전달되지 않게 내력 전달에 온 신경을 기울이느라 초혜의 이마로는 땀방울 한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초혜를 생각하면 그녀의 심력 소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가는 순간이었다.

"총표파자님! 막내 아가씨의 저런 모습은 처음입니다요"
"그랬더냐?
"예. 이제 보니 막내 아가씨는 진짜 의원이셨군요"

"켈켈켈! 그저 그런 평범한 의원이 아니라 명의라고 해야할게야"
"걸개 어르신 말씀이 맞다. 초혜 저 녀석 평소에는 덜렁거리며 다니는 것 처럼 보이지만 지닌바 무공과 의술만큼은 진짜니까 말이다."

철무륵의 부연 설명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초혜를 바라보는 초록이 두자성의 눈에 존경의 빛이 가득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물론 다음 순간 들려온 초혜의 방정 맞은 음성에 막 흘러 내리기 시작하던 존경의 빛이 거짓말 처럼 뚝 그쳐 버렸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헤헤! 성공이다"
"수고했어"

시침을 마치고 아기를 살펴 보던 초혜의 입에 아름다운 미소가 걸렸다. 염려와는 달리 초혜의 빠른 조처 덕에 아기의 얼굴이 화색을 되찾으며 호흡도 안정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빼곡히 박힌 금침 주위로는 시커먼 색의 불순물이 자리하기 시작했다. 아기를 중독시켰던 독 성분이 해독되면서 불순물이 금침을 따라서 체외로 빠져나온 까닭이다.

"서,선자님!"
"응? 아! 호호. 이제 괜찮을거예요. 염려하지 마세요"
"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자님"

괜찮을거라는 초혜의 말을 듣자 젊은 아낙의 양볼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소중한 아이를 잃을 뻔 했었기에 고마움과 안도감이 뒤섞인 심정이 눈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젊은 아낙의 그 같은 모습을 보고 너나할 것 없이 따스한 미소를 입가에 베어 물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그 같은 미소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한 줄기 외침과 함께 일시에 허공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와아아~ 언니야"

목소리와 함께 저만치서 달려오는 작은 그림자의 주인공은 당연히 사도연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도연의 품에 무언가가 안겨 있었다. 이에 사람들의 표정이 따스함에서 궁금함으로 하나,둘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초록아 저게 뭐냐?"
"글쎄올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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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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