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오공이 까닭모를 두려움에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떠는 그 순간 동굴 저 편에서 갸날픈 목소리 하나가 홀연히 날아 들었다. 그 목소리는 천년오공이 듣기에 여자라고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천년의 풍파를 견뎌오고 있는 자신과 비교하면 아주 어린 목소리였다.

"오공아! 오공아! 뭐하니?"

왠지 자신을 놀리는 것 같은 여자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천년오공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에 새파랗게 광망을 토해내는 두 눈으로 여자 사람의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굳이 찾을 필요가 없었다. 여자 사람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천년오공의 눈에 뭔가 이질적인 것이 잡혀 들었다. 분명 여자 사람 혼자서 걸어 오는 것 같은데 또 다른 존재감이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 대답 안해? 이 자식이 죽을려고"

천년오공은 여자 사람이 뭐라고 떠들거나 말거나 그 이질적인 것의 존재를 찾느라 온 몸의 감각 기관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여자 사람이 제법 가까이 다가올 때 까지도 자신의 신경을 자극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천년오공이 뭔가 이질적으로 느끼는 것의 정체가 바로 설아이기 때문이다. 비록 오백년에 불과한 세월을 흘려 보냈을 뿐이지만 용아의 내단을 흡수하고 월반 하듯이 용족의 일원이 된 설아였다.

그렇기에 아무리 천년오공이라고 하더라도 영수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용의 기운에는 미치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한편 조용히 걸음을 옮겨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천녀오공의 근처로 다가온 초혜는 안력을 돋워서 주변을 살펴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설아가 손가락을 들어 천년오공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더욱 어둠이 내려앉은 한쪽 구석에 천년오공이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 너 거기 있었구나"

천년오공을 발견한 초혜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런 초혜의 말을 듣는 순간 천년오공은 자신의 검붉은 외골격에 이끼가 스멀스멀 자리잡는 것 같은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천년오공은 불쾌감을 쫓으려는 듯 초혜를 향해 불쑥 독액을 토해냈다. 천년오공을 발견하고 희색이 만면하여 별다른 방비를 하지 않고 있던 초혜는 자신을 향해 독액이 날아 오자 급하게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한발 늦고 말았다. 천년오공의 독액이 정확하게 초혜의 전신을 덮어버린 것이다. 잠시의 방심이 불러온 참사(?)였다.

"이,이... 이 자식이 침을 뱉어"

참으로 황당한 반응이 초혜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무릇 사람이라면 천년오공의 독액에 한줌 혈수로 녹아내려야 지극히 정상인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천년오공의 입장에서 아까운 독액을 낭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초혜는 한줌 혈수로 녹아내리기는 커녕 오히려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당혹성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혜가 한줌 혈수로 녹아내리는 대신 당혹성을 발하는 이유는 다름아닌 옷 때문이었다.

곱게 차려 입은 비단 경장이 천년오공의 독액 때문에 녹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짙은 어둠 속에 초혜가 홀로 있다는 것과 천잠사로 만든 배자(조끼)가 상반신을 가려주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런 초혜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 보고 있던 설아가 두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하지만 작은 손에 가려진 입에서는 억눌린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초혜가 듣기에 분명 웃음소리의 일종이었다.

"캽, 캽, 캽"
"어쭈! 웃음이 나오지?"

웃음소리에 짜증이 난 초혜가 설아를 한번 확 째려봐주고는 자신을 궁지에 빠트린 천년오공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에도 초혜의 몸에 겨우 붙어 있던 비단 경장의 잔재들은 계속해서 녹아내리더니 바닥으로 떨어지며 초혜와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이제 초혜는 속살이 비치도록 누더기로 변한 비단 경장과 흠집 하나 없는 배자만을 걸친 기묘한 모습으로 화하고 있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내려다 본 초혜가 주먹을 쥐며 성질을 부렸다. 

"에라! 이 자식아, 우선 좀 맞자"

말과 함께 초혜가 빛살처럼 어둠을 둟고 날아가 천년오공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 부터 만년의 세월이 내려 앉은 동굴 속에서 뭔가를 때리는 타격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한편 초혜가 천년오공에게 화풀이 하는 사이 뒤에 남은 진소청에게로 돌아온 설아는 억지로 참았던 웃음을 시원스럽게 터트리고 있었다.

"캬캬캬"
"응? 왜 그러니?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어?"
"캬오! 캬오오~"

설아의 설명이 한참 이어졌지만 사도연과 달리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진소청이 봉목을 껌벅이며 타격음이 들려오는 어둠 속을 응시했다. 대충 천년오공으로 부터 독액이 뿌려졌고 초혜가 낭패를 당했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게냐?"
"글쎄요. 천년오공이 독액으로 공격했다는 것 같은데..."

당태령의 질문에 진소청이 이렇게 답하자 설아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캬오"
"내 말이 맞니? 초혜는 괜찮은거야?"

그러자 설아가 타격음이 들려오는 어둠 속을 가리키며 다시 웃었다.

"캬캬캬"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설아의 행동으로 봐서는 위험한 일 대신에 뭔가 재미있는 일이 어둠 저 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 했다. 이에 진소청과 당태령은 어둠 속을 주시하며 의문을 떠올려야만 했다.

"헌데 이 소리는 무슨 소리더냐?"
"그게... 호호호"
"아무래도 뭔가 두들겨 패는 소리 같다만 내 말이 맞는게냐?"

"그럴 거예요. 호호호"
"허! 그러니까 지금 저기에서 초혜가 천년오공을 개 패듯이 패고 있다는 그런 말인게냐?"
"들려오는 소리로 봐서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허 참!"

둔탁하게 들려오는 타격음을 들으며 당태령이 실소를 머금을 때 어둠 저 편에서 초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더 맞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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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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