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리와 함께 더이상의 타격음은 들려 오지 않았다. 천년오공을 향한 초혜의 매타작이 마침내 종식된 것이다. 사실 천년오공의 입장에서는 난데없는 봉변이며 동시에 굉장히 억울한 일이었다.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야행성인 천년오공은 지난 밤에도 근처를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동굴로 돌아와서는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왠 놈(?)들이 들이닥쳐서는 휴식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무지막지하게 자신을 두들겨 패고 있으니 억울할만도 했다.

천년오공은 천년이라는 긴 세월을 홀로 보내며 적잖은 내력을 쌓았다. 그 때문에 흔히 말하는 내단 까지 가지고 있으며 어지간한 외부의 충격 정도로는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는 튼튼한 외골격을 가진 영물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슬쩍 스치기만 해도 중상이라는 초혜의 주먹에 마구 두들겨 맞았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물론 영물인 천년오공이 혼절할 만큼 아팠던 것은 분명했다. 

그 때문에 초혜가 '더 맞을래?'라고 하자 곧바로 커다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런데 천년오공이 한가지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사람들이 얼마전에 새로 마련한 자신의 서식지를 무단으로 침입한 이유를 말이다. 스물한 쌍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천년오공에게는 독샘이 있는 한 쌍의 다리가 따로 있었다. 그런데 턱 밑에 위치한 바로 그 한 쌍의 다리가 문제였다. 특별히 할 일이 없더라도 밤마다 외출을 하는 천년의 습관을 버릴 수 없었던 천년오공이 루양이라고 부르는 마을을 돌아서 흐르는 강가의 절벽에 서식지를 마련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마화 이송단이 당도하기 불과 며칠 전에 동굴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서식지가 제법 마음에 들었던 천년오공은 지난 천년간 늘 그랬었던 것 것럼 밤이 찾아오면 외출을 하곤 하였었는데 그 과정에서 독샘이 있는 한 쌍의 다리가 천년오공도 모르는 사이에 의도치않게 독액을 사방에 흩뿌리고 다닌 것이었다. 그 양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사방으로 퍼진 천년오공의 독액은 루양 마을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말았다. 때 마침 루양을 지나가던 마화 이송단이 그런 마을 사람들의 중독 증상을 발견하고 원인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니 천년오공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던 초혜의 방문은 스스로 자초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의도치 않은 실수를 범한 천년오공은 그 때문에 자신의 남은 생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자신을 실컷 두들겨 팬 여자 사람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야! 짐 싸"

천년오공은 처음에는 거부하려 했다. 하지만 주먹을 쓰윽 들어 올리며 입가에 괴이한 모양을 만드는 여자 사람을 본 순간 천년오공은 움찔하면서 따라 나설 수밖에 없다는 불행한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다. 물론 가지고 갈 짐 같은 것이야 애초에 없었으니 홀가분하게 따라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한편 동굴 저편에서 들려오던 타격음이 멈춘 후 일다경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자 괴괴한 적막이 흐르던 동굴 저편에서 부터 기이한 소리가 진소청과 당태령을 향해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언가 거대한 물체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와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뒤섞인 소리였다.

"돌아오나 본데요"
"그렇구나"

두 사람의 대화가 여기 까지 진행됐을 때 동굴 저편에서 짙은 어둠 보다 더욱 짙은 어둠이 서서히 밀려오는 듯한 느낌과 함께 초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청청 언니!"
"혜아! 괜찮니?"
"응! 괜찮아"

바로 그 순간 요요로운 시선으로 어둠 속을 꿰뚫어 보고 있던 설아가 두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완전히 누더기로 변한 옷을 걸치고 걸어 오는 초혜를 보자 다시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초혜의 모습을 확인한 진소청과 당태령도 괴상한 표정을 얼굴에 떠올렸다.

"혜,혜아! 그 옷 꼴이..."
"험험험..."
"아! 헤헤, 이 자식이"

그렇게 말하면서 겸연쩍은 표정을 지은 초혜가 뒤 따라 오는 천년오공의 커다란 머리를 쥐어 박았다. 초혜의 입장에서는 살살 때린 것이지만 맞는 천년오공의 입장에서는 황급히 수많은 발을 놀려 뒷걸음 칠 정도로 큰 타격이었다.

"어쭈? 죽는다!"

하지만 초혜의 그 같은 말에 물러날 때 보다 더욱 빨리 앞으로 나오는 천년오공이었다.

"독액으로 공격당했다더니 그래서 그런거야?"
"응! 잠시 방심하는 사이에 저 자식이 침을 뱉는 바람에 이 꼴이 되었어"
"허허허, 호걸개가 보면 좋아하겠구나"
"응?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태령의 말에 초혜가 진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호걸개 할아버지야 원래 초혜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던가? 헌데 천년오공과 사투(?)를 벌이며 사로잡느라 무진장 고생(?)을 한 자신을 향해 당태령이 불쑥 그렇게 말하니  호기심이 일었던 것이다.

"허허허, 네 녀석 꼴을 보아하니 개방 제자가 딱 어울릴 듯 하여 그렇다는 말이다"
"엑!"
"호호호호"
"캬캬캬"

수많은 발 중에서 앞발에 해당하는 발 중 하나를 들어 올려서 반질반질한 머리를 매만지고 있던 천년오공은 갑자기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자 무슨 일인가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기겁할 정도로 커다란 머리가 좌우로 움직이니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괴이함을 천년오공은 풍기고 있었다.

"옛다! 우선 이걸로라도 좀 가리거라. 과년한 처자가 그 꼴로 다닐 순 없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하며 당태령이 입고 있던 장포를 벗어서 초혜에게 건네 주었다. 천잠사로 만든 배자(조끼)만 멀쩡했지 초혜의 몸에 걸친 옷은 천년오공의 독액에 녹아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러니 낭패한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속살을 훤히 드러낸 채 활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헤헤, 안그러셔도 되는데..."
"마음에 없는 말도 할 줄 아는구나"
"그럼요. 저도 거짓말 잘 하거든요"

"예끼"
"호호호"
"캬캬캬"

당태령은 6척을 넘길 정도로 체구가 컸다. 하기에 5척 정도 되는 초혜가 당태령의 장포를 받아서 걸치자 그 끝이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였다. 소매 역시 두 손을 파묻어 버릴 정도로 길게 내려왔다. 그 모습이 마치 어린 아이가 어른의 옷을 걸친 것 처럼 보여 진소청과 당태령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설아의 기괴한 소성도 양념 처럼 따라 붙었다.

"천년오공을 데려갈려고 하느냐?"
"예. 이제 우리랑 살거예요"
"허!"

"청청 언니! 괜찮지?"
"호호, 나야 괜찮지. 아가씨나 연이도 좋아할거야"
"그렇겠지? 오호호호. 그럼 가요"

"반가워"
"키에엑"
"허허허"

천년오공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장포를 동굴 바닥에 질질 끄면서 걸어가는 초혜를 따라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일행들의 뒤로는 검붉은 색의 단단한 외골격을 가진 천년오공이 많은 발을 빠르게 놀리면서 따르고 있었다.

스스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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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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