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사흘 후 사도연은 자신의 눈 앞에 믿어지지 않게도 너무도 잘 지어진 삼층짜리 객잔 하나가 서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인들의 무공이 사람들을 죽이는 것만이 아닌 때론 굉장히 쓸모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우와! 멋지다"
"켈켈켈. 제법 그럴 듯 하게 지어졌구나. 그럼 이제 현판식을 해야겠지?"
"현판식이요?"

"그래 인석아! 이렇게 그럴 듯한 객잔을 지었으면 그에 어울리는 현판을 달아야 하지 않겠느냐"
"아! 헤헤"

호걸개와 사도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초혜가 일성 도장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초혜가 내미는 것은 검은색으로 칠해진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커다란 현판이었다.

"무량수불! 이걸 왜 내게 내미는게냐?"
"호호호! 그야 도사 할아버지 께서 지력으로 성수객잔이라고 새겨 달라는거죠"
"내가?"
"예! 청청 언니랑 설지 언니 하고도 이야기가 끝났어요"

그렇게 말하는 초혜를 바라보는 설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허허허, 내가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다만 너희들이 부탁하니까 한번 해보마"

초혜에게 현판을 건네 받은 일성 도장은 자신의 발 앞에 그 현판을 내려 놓고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지 검은색 일색이었던 현판에 나무 본연의 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일성 도장이 손을 멈추었을 때는 용사비등한 필체로 성수객잔이라고 새겨진 현판이 완성되어 있었다. 지력으로 현판을 깍아내다 보니 표면이 검게 칠해진 현판과 속살이 드러난 글자의 색이 확연히 구분이 되고 있었다. 완성된 현판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도연이 다시 탄성을 터트렸다.

"우와!"
"허허허, 마음에 드는게냐?"
"예. 도사 할아버지 최고예요"

사도연의 말마따나 지력으로 새겨진 현판에서는 묘한 현기 까지 느껴지고 있어서 지켜보는 중인들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켈켈켈, 말코의 도력이 경지에 달했구만"
"허허허, 과찬일세"
"아니예요. 현기가 느껴지는게 정말 좋아요"

현판에 새겨진 글씨를 보며 거듭 감탄하던 초혜가 현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극성의 연대구품을 시전하여 스르르 날아 오르더니 객잔의 출입문 바로 위에 현판을 부착했다. 현판 까지 달고나니까 비로소 객잔이 객잔다워 보였다.

"청청 언니! 이제 청청 언니 차례야"
"알았어"

초혜의 말에 대답한 진소청이 현판 옆으로 날아 오르더니 손을 쓰윽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판 옆 벽면에 글씨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냉수무정 진소청'이라는 글씨였다. 이윽고 글씨를 다 새긴 진소청이 내려오자 다음으로 설지가 날아 올라서 '성수신녀 나설지'라고 새기고는 내려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서 초혜가 날아 올라 글씨를 새기기 시작하자 사도연이 '나찰, 나찰'이라고 계속 고함을 쳤지만 정작 새겨진 글씨는 사도연의 기대와는 달리 소요나찰이 아닌 '소요선자 초혜'라는 글씨였다. 실망한 사도연을 보며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초혜였다. 그런데 뭔가가 조금 이상했다. 두 사람 옆에 새겨진 명호와 이름이 앞의 글자들과 간격이 많이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엥? 저게 뭐냐. 왜 저리 많이 띄워서 새긴게냐?"
"호호호, 우리 연이 이름이 들어갈 자리는 비워 놓아야죠"
"나? 난 지력으로 글씨를 못 새기는데?"

"그건 걱정마! 연이가 붓으로 이름을 쓰면 언니가 새겨줄게"
"정말?"
"그럼! 자! 가볼까?"

그렇게 말하면서 먹물이 잔뜩 묻은 붓 한자루를 사도연의 손에 쥐어준 설지가 작은 그녀를 품에 안고 날아 올랐다. 설지의 품에 안겨서 벽면으로 다가간 사도연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삐뚤삐뚤 자신의 이름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도연이 이름 적기를 마치자 설지가 붓의 방향에 따라서 지력으로 벽면을 파내기 시작했다. 훗날 객잔을 찾은 사람들이 '소신녀 사도연'이라는 명호와 이름을 보고 그 귀여움에 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글씨가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한편 설지가 사도연을 안고 내려오자 초혜가 호걸개에게 명호를 새겨줄 것을 부탁했으며 그렇게 차례대로 무림 명숙들의 명호가 성수객잔 벽면에 새겨졌다. 향후 무림초출들이 반드시 한번은 들러서 객잔의 벽면에 새겨진 명호를 보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호연지기를 키운다는 '제명의 벽'이 그렇게 완성되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명숙들이 차례대로 자신의 명호를 새기고 있지만 단 한 사람만은 그들과 조금 떨어져서 애써 시선을 회피하고 있었다.

다름아닌 천마신교의 교주 혁련필이었다. 사사천주 육공오 까지 스스럼없이 자신의 명호를 벽면에 새겼지만 자신은 세인들이 마교라고 경원시하는 천마신교의 교주였기에 왠지 모르게 저어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혁련필을 그냥 보고 있을 초혜가 아니었다.

"교주 할아버지! 뭐 하세요?"
"응? 나도 말인가?"
"그럼요. 하지 않으실거예요? 첫 개시 부터 초치면 안되는데..."

혁련필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뒷말을 흐리며 구시렁거리는 초혜였다. 그런 초혜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인 혁련필이 맨 마지막으로 날아 올랐다. 그리고 벽면에 새겨진 글씨는 중인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성 도장이 지력으로 새긴 현판 못지 않게 '천마신교 혁련필'이라는 글자에서 현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허허허"
"역시!"
"아미타불!"

중인들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들이 토해지고 있었다. 혁련필을 마지막으로 제명의 벽이 완성되자 그 모습을 본 사도연이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우와! 멋지다"
"켈켈켈! 그렇구나. 객잔 안으로 들어가 보자꾸"
"예~"

사도연의 대답과 함께 사람들이 줄지어 객잔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객잔 내부는 이미 영업 준비가 완료된 상태였다. 새로 만들어져서 반짝반짝 윤이 나는 가구들과 먼지 한점 없는 깨끗한 실내가 중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울러 점소이 복장을 한 젊은이 하나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서옵쇼! 성수객잔 방문을 환영합니다."
"엥? 벌써 점소이를 뽑은게냐?"
"호호호, 그럼요"

그랬다. 방금 막 현판식을 마친 성수객잔은 점소이는 물론이고 숙수 까지 이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성수표국 일행들 중에서 이곳에 정착하여 성수객잔을 운영하기를 원했던 사람들 중에서 가려 뽑은 다섯 가족들 중의 일부였다.

'창작 연재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협 연재] 성수의가 307  (0) 2017.05.27
[무협 연재] 성수의가 306  (0) 2017.05.21
[무협 연재] 성수의가 305  (0) 2017.05.13
[무협 연재] 성수의가 304  (0) 2017.05.06
[무협 연재] 성수의가 303  (0) 2017.04.29
[무협 연재] 성수의가 302  (0) 2017.04.22
Posted by 까만자전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