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oody Blues - Go Now

무디 블루스 (The Moody Blues) : 1964년 영국 버밍엄 에딩톤에서 결성

데니 레인 (Denny Laine, 기타, 보컬) : 1944년 10월 29일 영국 버밍엄 출생
클린트 워릭 (Clint Warwick, 베이스) : 1940년 6월 25일 영국 버밍엄 출생 ~ 2004년 5월 15일 사망
마이크 파인더 (Mike Pinder, 키보드, 보컬) : 1941년 12월 27일 영국 버밍엄 에딩톤 출생
레이 토마스 (Ray Thomas, 플루트, 보컬) : 1941년 12월 29일 영국 스투어포트온세번 출생
그레임 에지 (Graeme Edge, 드럼) : 1941년 3월 30일 영국 스태퍼드셔 주 로우스터(Rocester) 출생

갈래 : 리듬 앤 블루스(R&B), 비트(Beat), 팝 록(Pop/Rock)
발자취 : 1964년 결성 ~ 2017년 현재 활동 중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moodyblues.co.uk/
공식 에스엔에스(SNS) : https://www.facebook.com/MoodyBlues
노래 감상하기 : https://youtu.be/7SLxITAw8T0


2012년 7월에 가수 <싸이>는 자신의 통산 여섯 번째 음반인 <싸이6甲 Part 1>을 발표하고, 타이틀 곡 <강남스타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유튜브를 통해서 7월 18일에 공개한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유튜브에 공개된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식 집계에 의하면 공개 두 달째인 9월 18일의 조회수가 무려 2억 2천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아마도 온 우주가 힘을 실어준 텃이리라.

하여튼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던 <강남스타일>은 9월 20일에 발표된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 64위로 처음 진입했다. 2009년에 76위로 진입한 <원더걸스>의 <Nobody>에 이어 한국 가수로는 두 번째 빌보드 싱글 차트 진입이었다. 하지만 76위에 머물고 만 원더걸스와는 달리 싸이의 기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2주차에 이르러 53위나 상승한 11위 까지 진출하더니, 그 다음 주에는 2위 까지 진출한 것이다. 그리고  이후 <강남스타일>은 무려 7주간이나 2위 자리를 계속 지키게 된다. 우리 가요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기록한 가장 높은 순위임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런데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2위 자리에 7주간 머무르는 동안 전세계 역시 <강남스타일>에 열광하고 있었다. 이는 그만큼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가 지닌 파급력이 상당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단순한 숫자 2 이상의 의미가 순위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을 대표하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무디 블루스>는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었을까?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와 빌보드 싱글 차트는 그리 친숙한 관계가 아니다. 싱글 보다는 음반 위주의 활동을 하는 것이 바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디 블루스에게는 영국 싱글 차트에서 1위 까지 진출한 히트 곡이 하나 있다. 물론 그 곡은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도 진입하여 10위 까지 진출하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 노래는 무디 블루스가 1964년 11월 13일에 발표한 싱글 <Go Now>이다. 1965년 7월 23일에 발표하게 되는 데뷔 음반 <The Magnificent Moodies>에도 수록하게 되는 이 곡으로 무디 블루스는 처음이자 현재 까지는 마지막으로 영국 싱글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곡은 프로그레시브 록과는 거리가 먼 곡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64년 5월에 대중들에게 처음 모습을 보였던 5인조 구성의 무디 블루스는 당시만 하더라도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가 아니라 리듬 앤 블루스 밴드였기 때문이다.

사실 무디 블루스의 <Go Now>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0위 까지 진출한 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당시가 <비틀즈(The Beatles)>를 중심으로 한 영국 밴드들의 미국 침공을 가리키는 브리티시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시대였던 것이다. 어쨌든 영국과 미국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무디 블루스의 앞날은 탄탄해보었다. 그런데 밴드 활동에 염증을 느낀 <클린트 워릭>이 1966년 봄에 무디 블루스에서 갑자기 탈퇴를 하고 음악계에서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밴드에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더불어 심포닉 록 성향으로 변화를 모색하던 밴드 구성원들과 의견 차이를 보이던 <데니 레인> 까지 무디 블루스에서 탈퇴를 하고 말았다.

이에 무디 블루스는 <저스틴 헤이워드(Justin Hayward, 기타)>와 <존 로지(John Lodge, 베이스)>를 가입시켜 결원을 빠르게 보충하였으며, 우리가 익히 아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써의 진용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1967년 11월 10일에 발표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써의 첫 번째 음반이자 명반인 <<Days of Future Passed>로 이어졌다. 참고로 무디 블루스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로써 거둔 싱글 차트 최고의 성적은 <Question>이 가지고 있다. 1970년 4월 24일에 싱글로 발표된 이 곡으로 무디 블루스는 영국 싱글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했으며, 미국의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21위 까지 진출했던 것이다.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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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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