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e Dassin - Et Si Tu N'existais Pas

조 다상 (Joe Dassin) : 1938년 11월 5일 미국 뉴욕 출생 ~ 1980년 8월 20일 사망

갈래 : 샹송(Chanson), 프렌치 팝(French Pop), 팝 록(Pop/Rock)
발자취 : 1964년 ~ 1980년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oedassin.info/en/index.html
공식 에스엔에스(SNS) : 없음
노래 감상하기 : https://youtu.be/nHiHiN4GmGk

영화 감독이었던 아버지와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미국인 부모를 둔 열두 살의 소년이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고국을 떠나서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을 전전하면서 성장하다 이후 프랑스에서 가수로 성공했다면 그의 이름은 프랑스식으로 부르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영어식으로 불러주는 것이 맞을까? 프랑스에서 1964년 부터 1980년 까지 가수로 활동하다가 같은 해에 심장마비로 사망한 <조 다상(조 대신)>의 이야기이다. 그는 특이하게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었지만 어린 시절 고국을 떠나야 했으며 성장한 후 프랑스에서 가수로 성공하게 된다.

1980년 8월 20일에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수도인 파페에테(Papeete)의 한 식당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조 다상이 열두 살이었던 1950년에 고국을 떠나야 했던 것은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1950년 부터 1954년 까지 미국은 그야말로 <매카시즘(McCarthyism)>의 광풍에 휩쓸렸었다. 당시 위스콘신주의 연방 상원의원이었으며 공화당 소속이었던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 1908년 11월 15일 ~ 1957년 5월 2일)>는 1950년의 공화당 당원대회에서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라고 주장했었다.

그 명단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당시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가 경력 위조, 명예 훼손, 금품 수수, 음주 추태 등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였다는 점이다.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는 이에 대한 타계책으로 반공 이념(Ideologie)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작전이 뜻밖에도 주효했다. 1949년 10월 1일에 중화인민공화국(中华人民共和國)이 수립되었으며,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 CCCP)의 원자 폭탄 실험, 그리고 중앙유럽과 동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 영향력이 증대되던 당시의 상황들이 미국인들에게 불안감을 증폭시켰으며 반공의 가치를 돋보이게 했던 것이다.

결국 그러한 시대적 상황은 뚜렷한 실체가 없는 공산주의 색출이라는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이어졌다. 조지프 레이먼드 매카시는 자신의 정적들은 물론이고 대통령,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의 지도부, 그리고 육군의 장성들 까지 전부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했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 공산주의 사상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경력을 망쳤으며, 급기야 투옥되기도 했다. 물론 그러한 매카시즘이 예술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을 비켜갈 리는 없었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던 극본/각본가, 배우, 감독, 음악가 등을 대상으로 활동을 금지하는 <할리우드 블랙리스트(Hollywood Blacklist)>가 작성되기에 이르렀으며, 여기에 속한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잃고 다시는 복귀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 다상의 아버지인 <줄스 대신(Jules Dassin, 1911년 12월 18일 ~ 2008년 3월 31일)>도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그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결국 매카시즘의 광풍에 견디다 못한 줄스 대신은 가족들을 데리고 탈출과 다름없는 유럽행을 택하게 된다. 참고로 줄스 대신은 유럽에서 그의 경력을 화려하게 꽃피우게 된다. 한편 미국을 떠나서 스위스, 영국, 프랑스 등을 전전하며 열한 개의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던 조 다상은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졸업 후에는 다시 프랑스로 건너가서 아버지와 함께 영화계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런 조 다상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조 다상은 여자 친구에게 미국 민요인 <Freight Train>을 직접 노래하고 녹음한 테이프를 생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당시 테이프를 들어본 여자 친구는 그의 노래가 마음에 들어서 음반으로 만들어 보관하기 위해 친구가 일하고 있던 시비에스 음반사(CBS Records)를 찾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조 다상의 미래가 바뀌게 된다. 시비에스 음반사의 관계자가 조 다상의 테이프를 들어본 후 정식 계약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1964년에 음반사와 계약하고 데뷔하게 된 조 다상은 제목은 몰라도 <오 샹젤리제~>라는 가사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Les Champs-Élysées (1969년)>등을 성공시키며 가수로 활동하게 된다.

참고로 <Les Champs-Élysées>는 영국의 사이키델릭 팝 밴드인 <제이슨 크레스트(Jason Crest)>가 1968년에 발표했던 <Waterloo Road>를 프랑스어로 번안한 곡이었다. 하여튼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활동하던 조 다상은 1975년 무렵에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데 <L'Été indien>과 <Et Si Tu N'existais Pas>와 같은 그의 대표곡이 모두 그해에 발표되었던 것이다. 특히 조 다상이 매력있는 저음으로 노래하는 사랑의 연가 <Et Si Tu N'existais Pas>는 프랑스 싱글 차트에서 1위에 오르며 큰 사랑을 받았던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평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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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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