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 I Was Made for Lovin' You

앞면뒷면

키스 (Kiss) :
폴 스탠리 (Paul Stanley, 보컬, 리듬 기타) : 1952년 1월 20일 미국 뉴욕 퀸스(Queens) 출생
진 시몬스 (Gene Simmons, 베이스) : 1949년 8월 25일 이스라엘(Israel) 하이파(Haifa) 출생
에이스 프렐리 (Ace Frehley, 리드 기타) : 1951년 4월 27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Bronx) 출생
피터 크리스 (Peter Criss, 드럼) : 1945년 12월 20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Brooklyn) 출생

분류 : 하드 록(Hard Rock), 헤비메탈(Heavy Metal), 팝메탈(Pop-Metal), 팝록(Pop/Rock)

1973년 1월에 미국 뉴욕에서 결성된 키스는 멤버들의 실제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짙은 분장과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지극히 미국적인 강력한 하드 록을 구사하여 1970년대의 미국에서는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밴드에 속했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러한 음악 외적인 분장과 사운드의 특성상 한국에서는 소수의 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팝팬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그룹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서 출생하여 여덟살때 미국 뉴욕으로 이민온 '진 시몬스(본명: Chaim Witz)'는 1970년 뉴욕에서 키보드 주자인 '브룩 오스트란더(Brooke Ostrander)'와 기타리스트인 '스티븐 코로넬(Stephen Coronel)'과 함께 록 그룹 '레인보우(Rainbow)'를 결성하였다. '진 클라인(Gene Klei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진 시몬스는 스티븐 코로넬의 추천으로 리듬 기타를 담당할 '폴 스탠리(본명: Stanley Eisen)'를 가입시키고 브룩 오스트란더의 추천으로 드러머인 '조 데이비드슨(Joe Davidson)'을 가입시켜 밴드의 진용을 완성시켰다. 조 데이비드슨은 얼마지나지 않아 '토니 자렐라(Tony Zarrella)'에게 스틱을 물려주고 그룹을 탈퇴하였다.

1971년 레인보우는 그룹 결성 후 처음으로 뉴욕 인근의 '스태튼 섬(Staten Island)'에 있는 '스태튼 대학(College of Staten Island)'에서 무대에 등장하며 음악계에 데뷔하였다. 이 공연 후 레인보우는 또 다른 레인보우라는 이름의 그룹이 존재함을 알게 되어 '위키드 레스터(Wicked Lester)'라는 이름으로 밴드 이름을 바꾸었고 데모 테이프를 제작하여 몇군데의 음반사에 보내 음반 계약에 대한 의사을 타진하였다. 이 즈음 진 클라인과 스탠리 아이젠은 각각 진 시몬스와 폴 스탠리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1972년에 접어들며 위키드 레스터는 토니 자렐라와 브룩 오스트란더가 그룹을 탈퇴하여 밴드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지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진 시몬스와 폴 스탠리는 새로운 멤버를 뽑아 밴드 활동을 계속하기로 하고 롤링 스톤지에 멤버를 구한다는 광고를 싣게 된다.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피터 크리스(본명: George Peter John Criscuola)'를 드러머로 맞아 들여 트리오 편성으로 밴드를 재편하였다. 위키드 레스터는 1972년 11월 에픽 레코드 측이 마련한 쇼케이스 무대에 올랐지만 밴드의 음악과 이미지가 에픽 레코드 관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여 음반 계약에는 실패하고 만다.

1973년 1월 위키드 레스터는 오디션을 통해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를 뽑기로 결정하고 생애 처음으로 오디션에 응모한 기타리스트 '에이스 프렐리(본명: Paul Daniel Frehley)'를 선발하여 밴드에 합류시켜 4인 구성의 밴드 체재를 완성시켰다. 멤버 구성을 완성한 위키드 레스터는 밴드 이름을 키스로 바꾸고 지역 클럽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다섯곡이 담긴 데모 테이프를 제작했으며, 이 테이프를 들어본 TV 연출자인 빌 어코인(Bill Aucoin)이 1973년 여름, 이들의 공연을 직접 본 후 흔쾌히 매니저를 맡아 마이너 레이블인 카사블랑카 레코드(Casablanca Records)와 음반 계약을 성사시켜 주었다.

키스는 1973년 10월 부터 연말까지 스튜디오에 들어가 데뷔 음반 녹음 작업을 위한 비지땀을 흘렸으며 마침내 1974년 2월 18일에 대망의 데뷔 음반 'Kiss'를 발표하였다. 멤버들의 얼굴을 짙은 분장으로 가린 사진으로 커버를 장식한 데뷔 음반 발표 후 키스에게는 글램 록 아티스트의 아류라는 혹평이 따라 다녔지만 팬들에게는 개성적인 이미지로 인해 인기가 서서히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하였고 순회 공연은 연일 성황을 이루게 된다.

1976년, 키스는 'Destroyer' 음반에 수록된 싱글 'Beth'를 빌보드 싱글 차트 7위에 진출시키며 전성기를 맞이하였고, 1979년에는 음반 'Dynasty' 를 발표하여 'I Was Made For Lovin' You' 를 빌보드 싱글 차트 11위에 올려 놓게 된다. 음반의 프로듀서인 '비니 폰치아(Vini Poncia)'가 직접 키보드를 연주한 이 곡은 유럽 대부분 국가의 싱글 차트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키스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이 음반을 끝으로 피터 크리스가 키스를 탈퇴하였고 밴드는 서서히 팬들에게서 멀어져 가게 된다. 이 시기는 하드 록이 쇠퇴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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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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