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vis Presley - Heartbreak Hotel

자동차 판매점에서 우연히 만난 신혼부부에게 고급 승용차를 선뜻 선물했던 사람, 징집 영장이 발부되자 두말 없이 선뜻 입대하여 2년간의 보병 근무를 성실히 수행했던 사람,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거금을 기부하여 불우한 이웃을 도와 주었던 사람, 이러한 모든 일화의 주인공이 33년전 오늘 팬들의 과도한 기대를 이겨내지 못하고 약물 중독에 빠져 결국 사망에 이르고 말았던 '로큰롤의 제왕(King of Rock and Roll)'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줄여서 '제왕(The King)'이라는 표현으로도 불리는 엘비스프레슬리는 일명 숏건 하우스(Shotgun House)로 불리는 방 두개 짜리 길쭉한 직사각형 형태의 주택에서 쌍둥이 중 둘째로 태어났다.

하지만 엘비스 프레슬리 보다 35분 먼저 태어났던 그의 형은 태어나자 마자 바로 숨을 거두어 엘비스 프레슬리는 외아들로 성장하게 된다. 수표 위조로 감옥에 갔다 온 아버지와 정부에서 배급하는 식량으로 살림을 꾸려가던 어머니를 둔 가난한 백인 부부의 아들인 엘비스 프레슬리는 부모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가 성가대의 합창을 들으며 음악적 영감을 키워 나가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대중 앞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불렀던 것은 열살때인 1945년 10월 3일에 유제품 회사의 후원으로 개최되었던 장기 자랑 대회였다.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는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가수 '레드 폴리(Red Foley)'의 컨트리 곡 'Old Shep'을 불렀었는데 키가 작았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관중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보이게 하기 위해 의자 위에 서서 노래를 불러야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엘비스 프레슬리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 갔는데 늘 그와 함께 하는 것은 어머니가 사준 기타와 '힐빌리 음악(Hillbilly Music: 컨트리 음악의 원형으로 남부 산악 지대의 향토색이 풍부한 민요조의 음악)'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부모는 1948년 11월 좀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엘비스를 데리고 테네시주 멤피스로 이사를 하게 되지만 빈민가로 이사한 그들의 형편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흄스 고등학교(Humes High School)'에 진학한 엘비스 프레슬리는 가스펠과 블루스 음악에 점점 더 빠져들었고 1953년 6월 고등학교를 졸업 할 무렵에는 장래에 반드시 가수로 성공하겠다는 포부를 가슴에 담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트럭 운전사로 일을 하고 있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3년 8월에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선 음반사(Sun Records)'를 방문하였다.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가 선 음반사를 방문해 자비로 음반 제작을 하게 되었던 명목상의 이유는 어머니의 생신 선물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음반사에서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기를 기대했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선 음반사에서 만난 여직원이 엘비스에게 질문했던 '어떤 가수와 비슷하게 노래를 부르세요?' 라는 말에 엘비스가 '나는 어떤 가수와도 비슷하지 않은 나만의 노래를 부릅니다." 라는 말로 대답했다는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이 당시에 엘비스는 'My Happiness'와 'That's When Your Heartaches Begin'을 녹음하여 한장의 음반에 담아 집으로 들고 갔었다.

1954년 1월에 두번째로 선 음반사에서 'I'll Never Stand In Your Way'와 'It Wouldn't Be the Same Without You'를 불러 음반으로 만든 엘비스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선 음반사의 사장인 '샘 필립스(Sam Phillps)'에 의해 발탁되어 1954년 7월 5일에 첫번째 연습에 들어가게 된다. 음반 제작을 위한 사전 연습을 겸한 세션이 진행된 이날, 밤 늦게 까지 진행된 연습 과정에서 '아서 크러덥(Arthur Crudup)'이라는 흑인 블루스 가수의 곡 'That's All Right'을 엘비스가 기타를 연주하며 불렀는데 이 모습을 본 샘 필립스가 이 곡을 녹음하기로 결정하고 서둘러 음반으로 제작하게 된다. 이른바 제왕의 탄생 순간이었다.

음반 제작이 끝난 3일 후 멤피스 지역에서 방송되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기 시작한 'That's All Right'은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많은 팬을 라디오 앞으로 불러 모으게 된다. 신청 곡 엽서가 쇄도하였던 것이다. 'That's All Right'의 성공으로 엘비스는 공연 무대에 오르게 되는데 새롭게 출현한 아이돌 스타를 보기 위해 몰려든 십대들로 공연장은 연일 가득차게 된다. 엘비스에게 열광하는 십대들의 모습과 엘비스의 상품 가치를 파악한 'RCA 음반사'에서는 선 음반사에 거액을 주고 엘비스를 스카웃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1955년 8월에 만난 매니저 '톰 파커(Tom Parker)'가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내슈빌(Nashville)'의 RCA 녹음실에서 1956년 1월 10일에 첫번째 싱글을 제작하게 되는데 이날 만든 싱글이 바로 'Heartbreak Hotel/I Was the One'이었다. 'Heartbreak Hotel'은 1월 27일에 싱글로 발매되어 1956년 3월 3일 빌보드 싱글 차트에 68위로 진입하였고 빌보드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는 9위로 진입하였다. 차트에 진입한지 두달 후 'Heartbreak Hotel'은 빌보드 싱글 차트와 컨트리 싱글 차트에서 나란히 1위를 차지하여 제왕의 신화가 시작됨을 사람들에게 알리게 된다.

엘비스 프레슬리 (Elvis Presley) :
본명 :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 (Elvis Aron Presley)
출생 : 1935년 1월 8일 미국 미시시피(Mississippi)주 투펄로(Tupelo)
사망 : 1977년 8월 16일 미국 테네시(Tennessee)주 멤피스(Memphis)

갈래 : 로커빌리(Rockabilly), 로큰롤(Rock & Roll), 팝 록(Pop/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elv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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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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