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Taylor - Fire And Rain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주 보스턴(Boston)의 매사추세츠 종합 병원(Massachusetts General Hospital)에서 태어난 미국의 가수 겸 작곡가이자 기타 주자인 '제임스 테일러'는 혼란스러운 사이키델릭 사운드가 주류를 이루던 1960년대가 마감되고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 신선한 바람을 몰고 등장한 가수이다. 통기타 하나를 들고 팝계에 등장하여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며 싱어송라이터의 대표 주자가 된 제임스 테일러는 데뷔 이후 잔잔하게 퍼지는 포근한 목소리와 정감있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로 팝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제임스 테일러가 세살이 되던 해에 그의 아버지가 노스캐롤라이나 의과 대학(University of North Carolina School of Medicine)의 조교수로 부임하게 되어 가족은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카보로(Carrboro)로 이사하게 되었고 제임스 테일러는 카보로에서 성장하게 된다. 어릴때 처음으로 배운 악기는 첼로(Cello)였으나 십대가 되면서 기타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결국 1960년 부터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제임스 테일러는 1961년 가을에 아이비 리그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기숙 학교인 밀튼 아카데미(Milton Academy)에 진학하였으며 이듬해 여름에는 고급 휴양지인 마서즈 빈야드(Martha's Vineyard)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났다가 뉴욕에서 온 기타 주자 '대니 코치머(Danny Kortchmar)'를 만나게 된다. 둘은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에 곧바로 친해졌고 블루스 음악과 포크 음악들을 연주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결국 두사람은 1963년에 포크 듀오 '제이미 앤 쿠치(Jamie & Kootch)'를 결성하여 커피하우스를 무대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학업을 등한시하고 음악 활동에 전념하면서 성적이 떨어진 제임스 테일러는 밀튼 아카데미에서 나와서 채플 힐 고교(Chapel Hill High School)에 편입하여 한학기를 다니게 된다. 이 즈음 제임스 테일러는 동생인 '알렉스 테일러(Alex Taylor)'와 함께 밴드를 결성하기도 하는데 이 밴드의 이름은 '코세이어스(The Corsayers)'였다. 코세이어스에서 전기 기타를 담당했던 제임스 테일러는 자신이 만든 곡 'Cha Cha Blues'를 밴드의 싱글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도 채플 힐 고교에서 한학기를 무사히 마친 제임스 테일러는 밀튼 아카데미로 돌아가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하지만 제임스 테일러는 우울증에 걸려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1965년에 스스로 매클린 병원(McLean Hospital)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된다. 1966년에 병원에서 퇴원한 제임스 테일러는 대니 코치머와 함께 뉴욕으로 가서 밴드 '플라잉 머신(Flying Machine)'을 결성하였다.

플라잉 머신은 제임스 테일러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당시에 만든 'Don't Talk Now'와 'Knocking 'Round the Zoo'등을 연주하며 무대에 섰고 1966년 여름에는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 있는 나이트 아울 카페(Night Owl Cafe)에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임스 테일러가 이 즈음 부터 헤로인 중독에 빠져 들기 시작했고 거기에 더해 플라잉 머신이 '주빌리 음반사(Jubilee Records)'를 통해 1966년 말에 발표한 싱글 'Brighten Your Night with My Day'가 차트에서 102위에 그치는 부진에 빠지자 주빌리로 부터 더 이상의 음반 발매를 거부당하게 된다.

결국 플라잉 머신은 해체의 수순을 밟아야 했고 제임스 테일러는 솔로 활동을 위해 1967년에 런던 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런던에서 비틀즈(The Beatles) 소유의 '애플 음반사(Apple Records)'와 계약한 제임스 테일러는 싱글 'Carolina in My Mind'를 발표한 후 1968년 12월에 애플 음반사를 통해 데뷔 음반 'James Taylor'를 발표하였다. 영국인이 아닌 미국인으로써는 처음으로 애플 음반사를 통해 음반을 발표한 가수가 된 제임스 테일러였지만 음반에서 발매된 싱글 'Carolina in My Mind'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118위에 오르는데 그치며 결과적으로 데뷔 음반은 실패한 음반이 되고 말았다.

데뷔 음반은 실패로 마감되었지만 제임스 테일러는 미국으로 건너가 1969년 7월 20일에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Newport Folk Festival)'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게 된다. 수천명의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빗속에서 진행된 제임스 테일러의 무대를 관중들은 끝까지 지켜봐주었고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주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1969년 10월에 '워너 브라더스 음반사(Warner Bros. Records)'와 음반 계약에 성공한 제임스 테일러는 그해 12월에 캘리포니아에서 두번째 음반의 녹음에 들어가게 된다.

1970년 2월에 공개된 제임스 테일러의 두번째 음반은 'Sweet Baby James'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으며 싱글로 발매된 'Fire And Rain'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 진입하여 3위 까지 오르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8년 영화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에 삽입되기도 했던 히트 곡 'Fire And Rain'은 제임스 테일러가 런던에서 막 애플과 계약하고 데뷔 음반을 준비중이던 때에 미국에서 사망한 그의 여자 친구 '수잔(Suzanne)'을 추억하는 마음과 우울증과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들게 버텨왔던 자신의 심정을 담아 만든 노래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팝팬들이 사랑하는 곡이기도 하다.

한편 수잔의 비극적인 사고 소식이 제임스 테일러의 음반 작업에 지장을 줄까 우려한 친구들이 데뷔 음반 작업이 모두 끝날 때 까지 사고 소식을 알려주지 않아 제임스 테일러는 음반 녹음이 모두 끝난 뒤에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제임스 테일러 (James Taylor) : 1948년 3월 12일 미국 보스턴 출생

갈래 : 팝 록(Pop/Rock), 어덜트 컨템퍼러리(Adult Contemporary), 소프트 록(Soft Rock)
공식 웹 사이트 : http://www.jamestayl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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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까만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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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ark 2010.08.27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노래 잘듣고갑니다

  2. Park 2010.08.27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노래 잘듣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