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 Leppard - Pour Some Sugar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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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과 음악

Def Leppard - Pour Some Sugar O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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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 Leppard - Pour Some Sugar On Me

데프 레퍼드 (Def Leppard) : 1977년 영국 사우스요크셔주 셰필드(Sheffield)에서 결성

조 엘리엇 (Joe Elliott, 보컬) : 1959년 8월 1일 영국 셰필드 출생
스티브 클락 (Steve Clark, 기타) : 1960년 4월 23일 영국 셰필드 출생, 1991년 1월 8일 사망
필 콜렌 (Phil Collen, 기타) : 1957년 12월 8일 영국 그레이터런던 해크니(Hackney) 출생
릭 새비지 (Rick Savage, 베이스) : 1960년 12월 2일 영국 사우스요크셔주 셰필드(Sheffield) 출생
릭 앨런 (Rick Allen, 드럼) : 1963년 11월 1일 영국 더비셔(Derbyshire)주 드론필드(Dronfield) 출생

갈래 : 헤비메탈(Heavy Metal), 브리티시 메탈(British Metal), 헤어 메탈(Hair Metal)
공식 홈 페이지 : http://www.defleppard.com/
노래 감상하기 : http://youtu.be/0UIB9Y4OFPs


누구나 그렇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영화 같은' 혹은 '드라마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워서 표현해야 할 감동적인 순간들을 마주칠 때가 있다. 대개는 스포츠 경기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상황이기도 한데 서양의 팝 음악계에서도 실제로 드라마 같은 감동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던 적이 있었다. 영국 사우스요크셔(South Yorkshire)주 셰필드에서 1977년에 결성되어 뉴웨이브오브브리티시헤비메탈(New Wave of British Heavy Metal)을 선봉에서 이끌었던 헤비메탈 밴드 <데프 레퍼드>가 그 주인공이다.

많은 사람들이 뉴웨이브오브브리티시헤비메탈의 한 밴드로 포함시키길 원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이를 거부하며 헤비메탈 밴드로만 인식되길 원하고 있는 데프 레퍼드는 1983년 1월 20일에 발표한 세번째 음반 <Pyromania>의 큰 성공으로 뉴웨이브오브브리티시헤비메탈의 주역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당시 음반에 수록된 <Photograph(영국 66위, 미국 12위)>, <Rock of Ages(영국 41위, 미국 16위)>, <Foolin'(미국 28위)>, <Too Late for Love>등을 연속해서 히트 시키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2위 까지 진출하였었던 이 음반은 우리나라에서도 라이센스 엘피(LP)로 발매되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었다.

아울러 빌보드 메인스트림 록(Mainstream Rock)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었던(Foolin'과 Too Late for Love는 9위) 두 곡 <Photograph>와 <Rock of Ages>는 브리티시 헤비메탈의 새로운 열기를 증폭시키는 역할과 함께 팝 메탈의 유행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특히 싱글과 함께 공개된 <Photograph>의 뮤직비디오는 엠티비(MTV)에서 방영되고 있던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Beat It> 뮤직비디오 방송 횟수를 추월할 만큼 열광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었다.

이렇듯 열광적인 반응에 의해 뉴웨이브오브브리티시헤비메탈의 주역으로 급부상했었던 데프 레퍼드였지만 정작 세번째 음반 <Pyromania>는 앨범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지 못하고 2위에 그치고 마는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마이클 잭슨 때문이었다. 마이클 잭슨이 1982년 12월 1일에 발매했었던 세기의 명반 <Thriller>가 당시 정상의 자리에서 요지부동으로 데프 레퍼드의 정상 등극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간 앨범 차트 정상 등극에는 실패했지만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된 데프 레퍼드의 음반 활동은 미국 공연으로 이어져 새로운 영국 헤비메탈의 우수성을 미국인들에게 전파하기도 했었다. 한마디로 거칠 것이 없어 보였던 데프 레퍼드의 앞날에 먹구름이 찾아든 것은 1984년 12월이었다. <Pyromania> 음반 활동을 마감한 데프 레퍼드는 1984년 2월에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으로 거처를 옮긴 후 새 음반을 위한 곡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세번째 음반의 성공이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되었던 듯 데프 레퍼드의 곡 작업은 지지부진한 상태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드러머인 <릭 앨런>이 1984년 12월 31일에 교통사고를 당해 왼팔을 잃었다는 급보가 전해지게 된다. 충격에 빠진 데프 레퍼드는 곡 만드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외 활동을 자제하는 한편으로 향후 밴드의 진로에 대해서 심각한 논의를 거듭했으며 여기서 밴드의 해산 까지 언급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데프 레퍼드는 해산을 택하는 대신 릭 앨런의 재활을 기다리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게 된다.

하지만 어렵게 재활에 성공한 릭 앨런에게는 하나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다. 한쪽 팔만으로는 예전의 강력한 드러밍을 재현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 문제였다. 결국 데프 레퍼드 구성원들과 릭 앨런은 첨단 장비의 도움을 받아서 이를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마땅한 대응책으로 대두된 첨단 장비인 전자드럼(Electronic Drum)을 서둘러 도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예전의 강력한 드러밍이 전자드럼의 힘을 빌어 고스란히 재현된 것이다.

이는 릭 앨런의 부상으로 활동 중지에 들어갔던 데프 레퍼드가 1986년 8월 16일에 영국에서 펼쳐졌던 몬스터스오브록(Monsters of Rock) 페스티벌을 통해서 활동을 재개하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영화 보다 더, 드라마 보다 더 감동적인 장면이 이 날 데프 레퍼드의 무대에서 펼쳐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8월 3일에 지난 1984년 2월에 처음 시작되었으나 릭 앨런의 부상으로 중단되었다가 1987년 1월에 녹음이 모두 끝난 데프 레퍼드의 공식 네번째 음반인 <Hysteria>가 마침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 음반은 오랫동안 데프 레퍼드를 기다렸던 팬들에게 훌륭한 선물이 되어 주었다. 전자 드럼을 도입하긴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힘이 느껴지는 릭 앨런의 드럼 연주가 탄성을 불러 일으키는 이 음반에서 <Animal(영국 6위, 미국 19위)>, <Pour Some Sugar on Me(영국 18위, 미국 2위)>, <Hysteria(영국 26위, 미국 10위)>, <Armageddon It(영국 20위, 미국 3위)>, <Love Bites(영국 11위, 미국 1위)>, <Rocket(영국 15위, 미국 12위)>등이 싱글로 공개되어 사고 이전의 데프 레퍼드 보다 더 큰 만족을 팬들과 밴드 양쪽 모두에게 안겨주었던 것이다.

영국의 앨범 차트와 미국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모두 1위에 오르기도 했었던 이 음반의 인기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음반에 수록된 <Armageddon It>, <Love Bites>, <Pour Some Sugar on Me>는 헤비메탈 음악 애호가들 부터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었다. 특히 <Pour Some Sugar on Me>에서 릭 앨런의 강력한 전자 드럼이 발휘하는 출렁거리는 리듬감은 인상적인 기타 리프와 함께 강한 중독성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데프 레퍼드식 팝 메탈의 정점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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